〈모족회의(毛族會議)〉
판소리 《수궁가》 중 한 대목으로, 온갖 짐승들이 상좌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대목
《수궁가》 중 상좌다툼은 별주부가 토끼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처음 대면하는 사건이다. 온갖 짐승들이 상좌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대목으로, 〈날짐승 상좌다툼〉과 〈길짐승 상좌다툼〉으로 나뉘며, 〈날짐승 상좌다툼〉은 유파에 따라 포함하지 않기도 한다. 〈길짐승 상좌다툼의 끝부분에는 호랑이가 등장하여 상좌를 차지하면서 마무리된다.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 다양한 장단을 사용하여 흥미롭게 구성된다.
1913년 이전의 자료로 추정되고 있는 경상대학교 소장본 「별춘향전」에는 변사또의 잔치에서 소리꾼들이 판소리를 부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그 중 송흥록이 〈호랑이 내려오는 대목〉을 부르는 장면도 포함되어 있다. 〈호랑이 내려오는 대목〉은 길짐승 상좌다툼에 이어지는 대목으로, 이에 근거해 보자면, 송흥록이 살았던 19세기 전반 무렵 수궁가에 〈길짐승 상좌다툼〉 대목이 존재하였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날짐승 상좌다툼〉 대목은 가람본 〈별토가〉나, 비교적 초기본에 해당하는 신재효본과, 심정순, 이선유 창본에는 나타나지 않으므로, 〈길짐승 상좌다툼〉 대목보다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별주부가 토끼를 잡아가기 위해 육지에 당도하여 사면 경개를 살펴보던 그때, 온갖 짐승들이 모여들며 상좌다툼을 한다. 상좌다툼은 크게 〈날짐승 상좌다툼〉과 〈길짐승 상좌다툼〉으로 구성되는데, 〈날짐승 상좌다툼〉과 〈길짐승 상좌다툼〉은 전개 양상이 유사하고 의미상 중복된다. 그럼에도 후대에 첨가된 것은 흥미로운 장면의 확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길짐승 상좌다툼〉은 현전하는 모든 수궁가 바디에 포함되어 있으되, 구체적인 구성은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정광수 창본: 길짐승 모여듬(중모리) - 노루(중모리) - 너구리(진양조) - 멧돼지(중모리) - 토끼(중중 모리) - 호랑이(중모리) 박초월 창본: 길짐승 모여듬(중모리) - 노루, 너구리(중모리) - 토끼(중중모리) - 멧돼지(중모리) 임방울 창본: 길짐승 모여듬(중모리) - 노루, 너구리(중모리) - 멧돼지(중모리) - 토끼(중중모리) 박봉술 창본: 길짐승 모여듬(중모리) - 너구리(중모리) - 노루(진양조) - 멧돼지(중중모리) - 토끼(중중모리) - 호랑이(중모리) 강도근 창본: 길짐승 모여듬(중모리) - 노루, 너구리(중모리) - 멧돼지(중모리) - 토끼(자진모리) 김연수 창본: 길짐승 모여듬(중모리) - 노루, 너구리, 멧돼지(중모리) - 토끼(중중모리) - 호랑이(중모리) 정권진 창본: 길짐승 모여듬(중모리) - 노루(중모리) - 너구리(진양조) - 멧돼지(중중모리) - 토끼(자진모리) - 호랑이(중모리)
모든 바디에서 상좌다툼의 시작은 중모리장단으로 짐승들이 모여드는 대목부터 시작한다. 모인 짐승들은 ‘연년이 모여 노는 놀음에 상좌가 없어 못 쓰겠으니 연치 차례로 상좌를 정하자’ 하는데, 이때 한 짐승씩 나서며 각자의 내력을 말한다. 주로 등장하는 짐승은 노루, 너구리, 멧돼지, 토끼로, 노루가 가장 먼저 나서는 경우가 많되, 박봉술 창본에서는 너구리가 가장 먼저 나선다. 상좌다툼의 끝은 호랑이가 등장하여 상좌를 차지하며 마무리 되는데, 유파에 따라 호랑이 또한 내력을 밝히기도 하고, 단지 위력으로 짐승들에게 겁을 주어 상좌를 차지하기도 한다. 오늘날 전승되지는 않으나, 중고제 심정순 바디에는 ‘고슴도치–노루–너구리–멧돼지–사슴–토끼–오소리–여우–호랑이–두꺼비’로 보다 많은 짐승이 나서고, 최종 상좌를 호랑이가 아닌 두꺼비가 차지한다. 〈날짐승 상좌다툼〉 대목은 〈길짐승 상좌다툼〉 앞부분에 놓이는데, “한 곳을 바라보니 왼갓 날짐생들이 모다 모아들어 저희끼리 상좌에 앉겠다고 상좌 다툼을 허는디”로 시작된다. 길짐승 상좌다툼이 유파에 따라 조금씩 다른 구성을 띠었던 것과 달리, 〈날짐승 상좌다툼〉은 유파에 관계없이 동일한 구성을 보여, ‘봉황새(중모리)-까마귀(엇중모리)-부엉이(자진모리)’의 순서로 전개된다.
(아니리) “자, 우리가 연년이 노는 좌석에 석양쯤 되면 어른 존장 몰라보고, 서로 물고, 차고, 싸움판이 벌어져 수라장이 되니, 오늘은 연치를 따져 한 분은 상좌로 모시고, 즉차로 수상수하를 가려 좀 규모 있게 놀다 갈림이 어떠허오?” “그말 잘 나왔소. 그러면 저기 계시는 장도감 언제 났소?” 노루가 나앉더니마는 (중모리) “나의 연세 들어보소. 기경선자 이태백이 날과 둘이 동접하야 광산 십년 글을 짓다, 태백은 인재로서 옥경으로 승천허고, 나는 미물 짐승으로 이리 미천허게 되었으나, 태백과 나와 연갑이니 내가 상좌를 못 하겠나?” (아니리) 달파총 너구리가 썩 나앉으며 “그렇다면 내 큰아들하고도 벗 못하겠네” “달파총은 언제 났소?” (진양조) “이 내 나이 들어보소. 동작대 높은 집이 좌편은 옥룡각이요, 우편은 금봉루라. 이교녀에 뜻을 품고 조자건의 글을 빌어 동작대부 운허던 조맹덕 조부와 연갑이니, 내가 상좌를 못 하겄나?” (아니리) 멧돝이 꺼시럭눈을 끔적끔적, 나발 같은 주둥이를 이리저리 두르고, 입맛을 쩍쩍 다시며 나오더니마는, “자네 나이 들어보니 내 큰손자하고도 벗 못하겄다” “아니 그럼 저낭청은 언제 나셨소?” 멧돝이 나앉으며 하는 말이 (중중모리) “이 내 나이 들어봐라. 이 내 나이 들어보소. 한나라 사람으로 흉노국에 사신 갔다, 위국충절 십구 년에 수발이 진백하여 고국산천 험한 길 허유허유 돌아오던 소중랑과 연갑이 되니, 내가 상좌를 못 하겠나?” 토끼 듣고 나앉으며, “저낭청도 내 아랠세” (자진모리) “한 광무 시절에 간의대부를 마다허고, 부운으로 차일 삼고, 동강의 칠리탄 낚싯줄을 던져 놓고 고기 낚기 힘써 허든 엄자릉의 시조와 연갑이 되니, 내가 상좌를 못 하겄나?” (아니리) 서로 연치를 찾어 상좌를 앉을라고 야단인디, 그때에 여러 날 굶은 호랑이가 먹을 것을 찾으랴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이놈들을 보고 어찌 반갑든지 쏜살 들어가듯 ‘으르르’하고 달려드니, 좌우 짐생들이 똥오줌을 벌벌 싸며, “아이고 장군님 어디 갔다 인제 오시오?” “너 이놈들, 어찌 내 배를 이리 굶겼으며 지금 무엇을 허고 노느냐?” “예, 상좌다툼을 허고 놉니다” “너 이놈들. 차산 중의 어른은 나 하나밖에 없는디, 너희들끼리 상좌이니, 하좌이니 헌단 말이냐?” 토끼 허는 말이 “이이고, 장군님. 장군님은 어제 나셨드라도 상좌로 앉으시오” 토끼가 나서더니, “장군님, 상좌로 앉으십시오마는, 속이나 알게, 언제 나셨소?” 호랑이 이말 듣고 호령성으로 말을 허는디, “그래라” (중모리) “이놈들 내 나이를 들어봐라. 너희들 내 나이를 들어보아라. 혼돈미분태극초에 사정없이 너룬 하늘 한편 짝이 모자라서 광석 다듬어 하늘을 때우시던 여왜씨 연갑이 되니 내가 어른이 아니시냐? 으르으르어헝” 허고 달려드니, 좌우 짐승들이 깜짝 놀래어, “장군님, 상좌로 앉으시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구전무형유산걸작(2003)
별주부가 토끼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짐승들의 상좌다툼은 수궁가 전체 사건 전개에 있어 핵심적인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상좌다툼은 짐승들이 다툼을 한다는 그 자체에서 흥미로운 소재로 판소리의 오락적인 특징을 부각시킨다. 한편, 호랑이의 횡포를 통해 지배층의 억압과 수탈의 모습을 보여주며, 수직적인 관계에서의 다툼은 지배층과의 정면 대결로 이해할 수 있어, 판소리의 풍자적 성격 및 조선 후기에 성장한 서민 의식의 일면을 보여준다.
소리 정회석, 채보감수 백대웅, 『수궁가』, 민속원, 2003 최동현 외, 『한영대역 수궁가 바디별전집1~4』,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 2010. 김동건, 「수궁가 모족회의 대목의 존재양상과 의미」, 『국어국문학』 122, 1998. 배연형, 「별춘향전(경상대 본) 소리책 연구」, 『한국국악학회』 38, 2005. 이진오, 「19세기 수궁가의 더늠 형성에 관한 연구」, 『공연문화연구』 36, 2018. 최혜진, 「논쟁과 설득으로 본 수궁가 담화의 원리」, 『구비문학연구』 46, 2017. 정선양, 「판소리 수궁가 상좌다툼에 대한 연구: 정광수, 박초월, 송순섭 명창을 중심으로」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1.
신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