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모리 잡가 중 한 곡으로, 기생들의 일상생활을 엮어 노래한 성악곡
서울지역 삼패(三牌) 기생과 잡가꾼들 사이에서 불리던 소리로, 기생의 행색과 지조 등을 자화자찬식으로 미화하는 내용을 표현한 곡이다. 노래의 사설 자수에 따라 가변적으로 연주하며, ‘솔(sol)-라(la)-도(do′)-레(re′)-미(mi′)‘의 5음 음계이다.
《휘모리잡가》는 해학적 내용으로 사설을 촘촘히 엮어서 빠르고 경쾌하게 부르던 노래이다. 삼패와 소리꾼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던 소리이며, 먼저 《경기잡가》를 부른 연후에 선소리를 부르고 제일 마지막에 《휘모리잡가》를 불렀다고 한다. 《휘모리 잡가》 중에서도 기생타령은 사설 내용에서 권번, 가무선생(歌舞先生) 등의 용어가 나오는 것으로 볼 때, 기생권번(妓生券番)이 처음으로 설립된 1910년 이후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 연행시기 및 장소 기생타령은 사설 내용에서 양산 또는 가무선생 등의 용어가 사설에 등장하는 것으로 짐작하여 보았을 때, 적어도 기생타령은 기생권번이 처음으로 설립된 1910년 이후의 노래라고 볼 수 있다. 삼패 기생과 소리꾼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던 소리이며, 먼저 《경기잡가》를 부른 연후에 선소리를 부르고 제일 마지막에 《휘모리잡가》를 불렀다고 한다. ○ 음악적 특징 기생타령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장단을 갖고 있지 않고, 3박ㆍ4박ㆍ5박ㆍ6박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노래의 사설 자수에 따라 가변적으로 연주한다. 기생타령은 ‘솔(sol)-라(la)-도(do′)-레(re′)-미(mi′)‘의 5음 음계로 되어 있으며, 종지 형태는 순차적으로 하행하거나 혹은 4도 하행하여 맺는다. ○ 형식과 구성 기생의 행색과 지조 등을 자화자찬식으로 미화하는 사설 내용을 가진 곡이다. 봄날 한 기생이 산에 올라가 장안을 내려다보면서 자기의 나이ㆍ문필ㆍ색태ㆍ충의ㆍ기술ㆍ가무 등을 고인에 비겨 자랑하는 것이다. 기생타령은 통절형식으로 되어 있고, 원사(原詞)는 알 수 없지만 세 장의 악곡 구조로 이루어졌다. 노랫말의 내용에 따라 구조는 화자(話者)인 여성이 지나가던 기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내용과 자신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서 자신도 기생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권번에 전해 달라는 내용과 자신도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어 전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내용이다. 각 악장의 맺음 부분을 볼 때 사설시조와 연관성을 갖고 있는 곡임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사설시조와 같이 ‘들어를 보소’ 혹은 ‘전하여주오’와 ‘전할지 말지’ 등의 5음절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양산 (洋傘) 받은 교태 (嬌態)한 여인 금비녀 보석반지 손가방 곁들여 들고 어여쁜 태도 (態度)로 춘일 (春日)이 화창 (和暢)한데 초목군생지물 (草木群生之物)이 개유이자락 (皆有而自樂)이라 이 몸이 여자로서 완보서행 (緩步徐行)으로 남산공원 찾아가니 백화 (百花)는 만발 (滿發)하고 화향 (花香)은 습의 (襲衣)한데 부감장안 (俯瞰長安)도 하고 유정 (有情)히 섰노라니 유두분면 (油頭粉面) 일미인 (一美人)이 자동차 타고 가는 모양 정녕 기생 (妓生)이라 연보 (硏步)를 바삐하여 손을 들어 부르면서 저기 가는 저 기생은 차를 잠깐 머무르고 이내 신원 (身元)이나 들어를 보소 우리도 방년 (芳年) 이팔 (二八)에 옥빈홍안 (玉빈紅顔) 이라 절개 (節槪)는 아황여영 (娥皇女英) 같고 문필 (文筆)은 소약난 (蘇若蘭)을 압두 (壓頭)하고 색태 (色態)는 당명황 (唐明皇)의 양귀비 (楊貴妃)요 항우 (項羽)의 우미인 (虞美人)과 여포 (呂布)의 초선 (貂蟬)이라 충의 (忠義)는 논개 (論介) 월선 (月仙)에 지나가고 태도는 석교상 (石橋上) 봄 바람에 난양공주 (蘭楊公主) 영양공주 (英陽公主) 진채봉 (秦彩鳳) 가춘운 (賈春雲) 적경홍 (狄警鴻) 계섬월 (桂蟾月) 심요연 (沈요烟) 백능파 (白凌波)라 팔선녀 (八仙女)에 지나가고 기술 (奇術)은 벽성선 (碧城仙) 일지연 (一枝蓮) 강남홍 (江南紅)을 압두 (壓頭)하고 나도 반개화소 (半開花笑) 미개화 (未開花)라 기생기술 (妓生奇術)에 지나가니 귀권번 (貴券番)에 가거들랑 가무선생 (歌舞先生) 계신 곳에 얼른 냉큼 수이 빨리 찾아가서 이 내 몸이 기생 (妓生)되기 평생의 원 (願)이라고 부디 한 말 잊지 말고 전 (傳)하여 주오 그 기생 대답하는 말이 나도 상당한 허감맡은 기생의 몸이 되어 밤이면 요리점 (料理店)에 가 노래 가사 (歌辭) 시조 (時調) 풍류 (風流) 손님의 수의대로 흥취있게 놀아주고 낮이면 동서사방 (東西四方) 문 밖 놀이 한강의 뱃놀이요 경치 (景致) 따라 산 (山) 놀이라 신흥 약사 청암사 (靑巖寺)며 영도사 (永導寺) 청량사 (淸凉寺)와 경퇴 (傾頹) 새 절 화계사 (華溪寺)에 쉴 새없이 불려가고 집에 돌아와 의복개착 (衣服改着) 한 연후에 백년 낭군 목적으로 침선 (針線)공부 물려놓고 오는 손님 희담 (戱談)으로 접객 (接客) 하고 주하로 내려 가 취반갱탕 (炊飯羹湯) 갖추어서 정든 낭군 공경하는 몸뚱이라 사무원 더러
기생타령은 기생들의 일상생활을 엮어 노래한 것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경기잡가》를 부르던 서울의 소리꾼들에게 성창되었다. 기생은 원래 조선시대 궁중의 관기로서 약방과 상방으로 각기 맡은 직무를 담당하다가 행사가 있을 때 노래와 춤을 추는 것이 소임이었다. 이러한 제도는 구한말까지 지속되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모두 없어졌다. 당시 가무와 예절을 올바르게 배우고 지켜 예기의 칭호를 받아 무예와 예능을 겸비하고 교양을 갖춘 예능인들의 소임은 상실되었다. 개화기의 변화 속에 권번이 생기면서 제도가 바뀌었고, 차차 세태의 변천에 따라 예기와 삼패三牌의 구별이 없어졌다. 기생타령의 내용은 주연석의 풍류부터 각처의 놀음놀이까지 일상생활과 행동을 엮어 노래한 것이다
김영운,『국악개론』, 음악세계, 2015. 황용주 편저,『한국경서도창악대계』, 선소리산타령보존회, 1993. 강희진, 「휘모리잡가의 전승양상과 음악적 구조의 고찰」, 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송은도, 「휘모리잡가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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