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내륙지방에서 정월 대보름에 연행해 온 노래와 놀이, 춤이 혼합된 여성들의 집단 민속 가무(歌舞) 놀이
놋다리밟기는 안동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내륙지방에서 정월 대보름에 연행해 온 노래와 놀이, 춤이 혼합된 여성들의 집단 민속 가무(歌舞) 놀이이다. 여러 놀이 중, 다른 지역의 기와밟기와 유사한 다리밟기 가 놀이의 중심이다. 노래는 3소박 4박을 놀이에 따라 느리게 부르기도 하고 자진모리장단의 빠르기로 경쾌하게 부른데 3~4음 구성의 단조로운 가락을 반복하여 부른다. 가창 방식은 묻고 답하는 교환창 방식이다.
놋다리밟기의 유래는 보통 공민왕의 몽진(蒙塵) 사건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족의 침입을 피해(1361) 안동으로 들어오던 중 소야천의 나루에 다다랐을 때 개천의 물이 불었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고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하는 상황에서 마을의 부녀자들이 나와 개울에 들어가 허리를 굽히고 다리처럼 만들어 왕후와 공주가 발을 적시지 않고 개천을 건너가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일이 있고 정월 보름 날 마을 부녀자들이 모여 놋다리밟기를 하게 되었다는 설과 공민왕의 안동 피난 시절 불편하게 지내는 노국공주를 위로하기 위해 놀이를 하였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보름날 달밤에 모여 춤을 추며 노는 놀이는 오래전부터 전국적으로 두루 연행되었던 일반적인 놀이이다. 따라서 놋다리밟기의 기원은 고려 공민왕 시기보다 훨씬 이전으로 보아야 한다. 오래전부터 그 지역에서 연행되던 놀이에 공민왕의 몽진(蒙塵)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결부시켜 의미를 부여하여 전승력을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역사적 변천 과정 놋다리밟기는 1910년경부터 쇠퇴하여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전승이 중단되었다. 놋다리밟기의 조사와 발굴은 일찍 시작되었다. 이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1회(1958)와 6회(1965)에 《안동놋다리》로 참가하고 4회(1963)와 5회(1964)엔 《안동놋다리밟기》로 참가하였다. 15회(1974) 때는 공로상을 수상하고 1975년 16회(1975) 《안동옹굴놋다리》로 참가하여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1984년 안동놋다리밟기 보존회가 설립되고 같은 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안동에서는 매년 안동민속축제가 열리는데 축제 기간에 놋다리밟기 시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안동민속축제 26회(1996)까지는 안동여자고등학교와 경안여자상업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번갈아 시연해오다 27회부터 놋다리밟기보존회 회원들이 시연하고 있다. 2007년부터 노국공주 선발대회가 별도로 이루어지며 동부와 서부의 공주를 선발하여 일 년 동안 보존회에서 진행하는 무형문화재 공개행사와 상설 공연에 참여하게 하고 있다. ○ 음악적 특징 박자 구조는 대부분 3소박 4박인데 놀이의 특성에 따라 빠르기에 차이가 난다. 주요 놀이인 옹굴놋다리와 줄놋다리 놀이에 부르는 〈놋다리밟기〉는 느리게 부른다. 놀이 참여자들이 손을 잡고 앉으면 선두가 잡은 손을 타 넘으며 원형으로 돌며 부르는 〈어화유리 둥둥대미〉는 굿거리장단 정도의 빠르기이고 〈실감기〉·〈청어장사〉는 자진모리장단의 빠르기로 부른다. 3~4음 구성의 2박 또는 4박의 단조로운 가락을 읊조리듯 반복하여 부른다. 가사는 4·4조의 율격을 기본으로 경상북도 여성 민요의 가사를 차용하여 부르기도 하며 가창 방식은 묻고 답하는 교환창 방식이다. 동부민요의 음악적 특징인 메나리토리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고 음 구성은 경토리에 가깝다. ○ 형식과 구성 《놋다리밟기》는 나선형 원무로 진행하는 〈어화유리 둥둥대미〉를 시작으로 〈실감기〉·〈청어장사〉·〈놋다리밟기〉·〈꼬깨싸움〉 등으로 구성된다. 〈놋다리밟기〉는 원 안을 향하여 둥근 모양의 다리를 만드는 옹굴놋다리를 먼저 하고 줄놋다리로 이어진다.
○ 놋다리밟기 어느 윤에(사이에) 놋다리로(놋다리냐) 청계산에 놋다리로 공민왕의 놋다릴세 이 터전이 뉘 터이로 나라임에 옥터일세 이 기와가 뉘 기와로 나라임에 옥기왈세 기 어데서 손이 왔노 경상도로 손이 왔네 무슨 꼬개(고개) 싸아왔노(싸웠느냐) 예계(고개 이름) 꼬개 싸아왔네 멫대 칸을 밟아왔노 쉰대 칸을 밟아왔네 무슨 옷을 입고 왔노 철갑 옷을 입고 왔네 무슨 바질 입고 왔노 자죽 바질 입고 왔네 ○ 어화유리 둥둥대미 어화유리 둥둥데미대 둥둥대미 어화유리 저달봤나 난도봤다 어화유리 둥둥대미 둥둥대미 어화유리 저 달 봤나 난도 봤다 저 별 봤나 난도 봤다 저 길 봤나 난도 봤다 어화유리 둥둥대미 둥둥대미 어화유리 저 달 봤나 난도 봤다 저 별 봤나 난도 봤다 저 길 봤나 난도 봤다 어화유리 둥둥대미 둥둥대미 어화유리 저 달 봤나 난도 봤다 저 별 봤나 난도 봤다 저 길 봤나 난도 봤다 ○ 실감기 (선창) 집실(명주실)로 감아라 (후창) 당대실로 풀어라 (선창) 집실(명주실)로 감아라 (후창) 당대실로 풀어라 (선창) 집실(명주실)로 감아라 (후창) 당대실로 풀어라 (선창) 집실(명주실)로 감아라 (후창) 당대실로 풀어라
문화방송, 『한국민요대전-경상북도편』, 문화방송, 1995, 392~395쪽.
○ 청어장사(청애장사) (선창) 청어사소 청어사소 (후창) 청어값이 몇냥이냐 (선창) 돈도닷냥 은도닷냥 (후창) 돈도닷냥 은도닷냥 (선창) 청어사소 청어사소 (후창) 청어값이 몇냥이냐 (선창) 돈도닷냥 은도닷냥 (후창) 돈도닷냥 은도닷냥 (반복)
안동 놋다리밟기: 경상북도 무형문화재(1984)
노래·춤·놀이가 통합된 여성 중심의 집단 놀이인 놋다리밟기는 여러 놀이 중, 다른 지역에서도 전승되던 기와밟기(지애밟기)ㆍ다리밟기(답교놀이)와 유사한 밟기 놀이가 특화된 것이 특징적이다. 다른 지역의 집단 민속 가무 놀이인 《강강술래》와 《월월이청청》이 원무(圓舞)가 중심역할을 하는데 놀이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놋다리밟기》는 〈옹굴놋다리〉·〈줄놋다리〉와 같이 밟기 놀이가 놀이의 중심이 된다. 과거의 기록을 보면 성의 안과 밖에서 놀았던 밟기 놀이가 공간을 이동하며 이루어졌고 놀이 중 다른 팀과 다리에서 만나면 꼬깨싸움으로 승패를 겨루기도 하며 역동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놋다리밟기》는 고려 공민왕의 몽진이라는 안동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지어 다른 원무형 집단 가무 놀이와 차별화되며 안동 지역민의 애향심과 자부심을 높이는 민속놀이로 의의가 크다.
문화방송, 『한국민요대전-경상북도편』, 문화방송, 1995. 손진태, 「놋다리밟기와 강강술래, 무엇이 같고 다른가」, 『안동문화의 수수께끼』, 지식산업사, 1997. 한양명, 「안동놋다리밟기의 유형론 재고」, 『실천민속학연구』 34, 2019.
조경숙(趙慶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