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고는 북송(北宋)의 진양(陳暘, 1068~1128)이 저술한 『악서(樂書)』에서 『예기(禮記)』를 인용하여 “현고(縣鼓)는 서쪽에 있고 응고는 동쪽에 있다.”라고 하였고, 『시경(詩經)』을 인용하여 “응고ㆍ전고(田鼓)ㆍ현고(縣鼓)를 연주한다.”라고 하였으며, 『이아(爾雅)』를 인용하여 “작은 북을 응(應)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응비와 삭비 두 북의 소리는 모두 크고 요란하며, 건고 옆에 둘 때는 항상 그 왼쪽에 진설한다. 옛날에는 음악을 연주할 때 먼저 서쪽의 삭비를 치면 동쪽의 응비가 응하였으니, 삭비는 연주의 시작을 알리고, 응비는 화답하여 그 마침을 알리는 북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당하악에서 관악기를 기본으로 삼은 이유는 악기 중에서도 아주 작기 때문인데, 응고는 비(鼙) 중에서도 아주 작은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즉 응고는 응비라고도 불린 작은 북이었고, 음악을 시작할 때 함께 진설되는 삭고를 먼저 치고 다음에 응고를 쳐서 두 악기가 화답하듯이 했다고 한다. 이어서 축을 두드리고 건고를 쳤다.
보통은 전정헌가의 북쪽 중앙에 남향 또는 북향으로 설치하였는데, 북쪽을 바라보았을 때 건고를 가운데 두고 왼쪽(서쪽)에 삭고, 오른쪽(동쪽)에 응고를 함께 배치하였다. 건고ㆍ삭고ㆍ응고가 한 짝을 이루게 되는데 『세종실록』 「오례」에서는 세 짝이 북쪽에 배치되었다. 일부 문헌에서는 건고ㆍ삭고ㆍ응고의 배치를 다르게 기록하기도 한다. 『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1827) 「외보계헌가도(外補階軒架圖)」에서는 건고ㆍ삭고ㆍ응고를 북쪽에 북향으로 설치하여 건고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동쪽)에 삭고, 왼쪽(서쪽)에 응고를 배치하였다.
한편 『대한예전(大韓禮典)』(1898년경) 「전정궁가도설(殿庭宮架圖說)」에서는 전정궁가의 북쪽에 북향으로 설치되었는데, 북쪽을 바라보았을 때 삭고와 응고가 모두 건고의 왼편(서쪽)에 편성되었다. 두 악기는 왼쪽(서쪽)에 삭고 오른쪽(동쪽)에 응고가 배치되었다. 건고ㆍ응고ㆍ삭고 순서로의 배치는 1921년 다나베 히사오[田辺尚雄]가 촬영한 <궁중연례전정헌가악(宮中讌禮殿庭軒架樂)> 사진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대한제국기 고종 신축년(1901) 『진연의궤(進宴儀軌)』와 『진찬의궤(進饌儀軌)』, 임인년(1902) 『진연의궤』에서는 북쪽을 바라보았을 때 여전히 건고를 가운데 두고 왼쪽(서쪽)에 삭고, 오른쪽(동쪽)에 응고를 배치한 형태가 확인된다. 현재 악기는 전하나, 실제 연주에 사용되지는 않는다.
응고는 건고에 부속된 북이다. 건고는 왕실의 영화를 상징하는 가장 화려한 북이다. 삭고ㆍ응고는 궁중 의례인 조회나 연향에서 항상 건고와 함께 전정헌가에서 울렸으며, 이 세 종류의 북이 한데 모여 있을 때 비로소 음악적인 의미를 완성할 수 있다. 응고는 봉황ㆍ호랑이 등의 동물 형상과 용ㆍ태극 등의 다양한 문양 장식에 종교적ㆍ주술적 의미를 담은 채 오랜 세월 동안 궁중 악기로서 제자리를 지켜왔으나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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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