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산조의 한 유파로 제 2세대 가야금산조 명인인 강태홍(姜太弘, 1893~1957)이 짜서 연주, 전승된 기악독주곡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는 진양 – 중모리 – 중중모리 - 자진모리 - 휘모리 - 세산조시 그리고 중모리 장단으로 짜여 있어서 여느 가야금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휘모리는 자진 자진모리에, 세산조시는 단모리에 해당하며, 마지막의 중모리는 장단 전체를 끝내기 위한 두 장단의 짧은 가락이어서 장단 구성에 넣기는 그 역할이 크지 않다. 여느 산조는 대개 세산조시나 푸는 가락 또는 중모리 대신 짧은 엇모리 가락 등으로 끝내기도 한다.
본 가야금산조는 전체적으로 막는 주법을 많이 쓰고, 장단 틀과 어긋나게 엮어가는 특징이 있으며, 본 유파의 독특한 가락이 여러 장단에 걸쳐서 나타나기도 하여 마치 주제 선율이 변주되어 나오는 것 같은 특징도 있다. 현존 가야금산조 대부분이 제3세대의 음악에 기반하고 있어서 강태홍의 가야금산조 가락이나 연주법 등은 제2세대 가야금산조를 연구하는데 좋은 본보기가 된다.
강태홍은 전라남도 무안에서 명창 강용안(姜用安, 1863~1902)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어전광대로서 당대의 명창이면서 창극의 창시자였고, 그의 큰아버지, 형, 사촌 등이 모두 음악에 종사해 6대째 이어온 세습무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 하였다.
어려서 약 20여 년간 강태홍은 고향에서 살았는데 그의 음악적 기초는 이때 닦였을 것이며 세습음악인으로서 집안의 음악적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19세 이후로는 고향 땅을 등져 고향을 영원히 잊으려 하였고 전국을 다니며 음악 활동을 하였다.
어려서는 집안의 어려운 형편으로 귀동냥으로 가야금을 배우기도 하였으며, 본인의 가락을 만들기 위해서 팔도를 다니기도 했다. 계면조 가락을 위해서는 전국 초상집을 다니며 인간이 가장 슬플 때 내는 울음소리를 관찰했고,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자진모리장단에 활용했으며, 종이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새소리를 모방해 휘모리 가락으로 만들었고, 세산조시는 말발굽소리를 듣고서 산조가락을 구상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소리와 병창 공부를 거쳐 산조의 완성에 이르렀다. 한 때는 무용연구소를 차려 한국 춤을 가르치며 직접 피리반주도 하였고 해금, 양금도 잘 다루었다. 그의 산조가 휘모리까지 완성된 것은 1950년 즈음이며, 구음 악보를 정리하던 중 붓을 든 채 앉은 자세로 영면에 들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나에게는 선생이 없다고” 한 바도 있지만,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음악적 환경, 정남희나 여러 명인 명창과의 음악적 교류, 불심에 의지한 그의 내재적 감성 등이 그의 가야금산조를 완성하는데 든든한 힘이 되었다고 하겠다.
또 가야금산조의 틀 형성을 이룬 제1세대 명인 김창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하기는 어려운데, 다만 당시 남한에서 산조의 전승은 구전이어서 김창조의 원가락이 온전하게 후대에 전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터이다. 여러 산조 명인들처럼 강태홍 또한 기존 가락에 바탕하여 본인 나름의 창작 가락과 주법, 연주 스타일 등이 더해져서 본 유파가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광주권번이나 대구, 경주, 서울 등에서 음악인들과 교류하고 활동하면서 그의 음악을 성장시켰고 제자양성도 하였다. 동화사, 불국사, 서울의 봉원사, 부산의 범어사 등, 가는 곳마다 불심에 의지하며 음악을 다듬은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성악연구회의 발기인으로 참가하여(1934) 정남희 등과 창극 활동에도 참가하였고, 서울에서 열린 이동백 은퇴공연(1939)이나 조선일보사 독자위안 공연(1955)에서 가야금산조 독주를 맡았다. 명고수 김명환은 서울에서 강태홍을 처음 만나 까다롭게 짜여있는 그의 가야금산조를 빈틈없이 연주했다고 술회하기도 하였는데, 강태홍 가야금산조의 장단 엮음이 예사롭지 않았음이 당시의 명인들에게 널리 회자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는 영제 풍류를 구음보로 엮기도 하였고, 해방이후(1949) 작고하기까지 부산을 근거지로 제자양성과 본인의 음악정리에 전념하였다.
〇 역사적 변천 과정
강태홍은 어려서 조씨 라고 하는 가야금 타는 남자의 연주를 귀동냥해서 집에 와서 가야금으로 타보는 방법으로 가야금을 익혔고 그의 산조가 완성되기까지 소리, 병창, 한국 춤 등 전통예술 전반에 걸친 폭넓은 수학이 그의 음악을 성장시켰다고 하겠다. 김창조에게 직접적인 사사를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당시 세습음악인끼리의 교류와 연주는 바로 음악 성장의 간접적 선생 역할이 되었기 때문에 이미 가야금산조의 틀을 짰던 김창조의 음악적 영향이 그의 산조 형성에 기반이 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처음에는 약 17분 정도의 짧은 가락이었고 이중 반 정도는 정남희류와 같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창극 활동을 함께하기도 해서 음악적 교류가 밀접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가락의 시작이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후배인 정남희가 강태홍의 가락에 영향받은 것으로 보는 것이 순리적인 발상이다. 새로운 가락에의 집념으로 자진모리나 휘모리 등의 가락이 더해져 1950년 무렵 45분 정도 산조 한바탕의 완성이 이루어졌다.
〇음악적 특징
다스름: 자유스러운 박자 구조에 크게 다섯 단락으로 나뉘며, 진양조 앞 대목이 예시되는 가락들이 듬성듬성 진행된다. 제1,2 단락은 옥타아브 관계로 음양의 대비를 이루며 세 번째 단락은 제1단락의 반복, 마지막 단락은 평조 선율로 풀어낸다.
진양조: ‘우조-돌장-평조-계면조’의 큰 네 단락 외에 마지막에 평조단락이 들어가 있는 점이 다른 유파의 산조와 다르며, 중모리로 넘어가는 돌장 역할을 한다. 진양조 전체는 94장단으로 여느 산조보다 가락 수가 많은 편이고 앞 대목은 4장단을 단위로 짜인 가락들이 나타나서 진양조 24박 한 장단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①우조 대목은 a 본청과 e'본청으로 5도 간격의 계면 길로 짜이는 가운데, c본청 우조길로 종지구 선율을 이룬다. 우조 대목의 19각은 2박 단위로 선율리듬이 짜이고 이 선율 형은 다른 장단에서 주제나 변주처럼 활용되어 강태홍류의 특징을 보여준다.
②돌장은 우조대목보다 장2도 아랫 조로 내려온 평조길로 선율이 바뀌며, 종지선율은 계면길로 마무리되어 여느 산조와 공통된다. 이는 김창조산조 원가락에서부터 이어지는 선율틀이다.
③평조대목은 평조길로 시작해서 종지구는 계면조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음구조의 짜임은 돌장의 구조와도 같다, 전체적인 선율진행구도는 김창조대의 원가락과 공통되어 1세대의 음악적 영향이 전해진 것임이 추론되며, 최옥삼류에 비해서 평조대목의 단락 수는 적다.
④계면조대목은 유파마다 가장 다양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큰 단락 6개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음 구조는 g본청 계면길이 주를 이루며, 아주 짧게 b♭본청 우조길로 조바꿈하거나 끝단락(90-94장단)은 g본청 평조길로 짜여있다.
중모리: 우조로 시작해서 경조, 계면조, 강산제, 계면조 대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조와 경조가 연이어 있어서 계면조의 양이 많은 진양조의 분위기와는 대조를 이룬다. 3연부를 쓰는 대목의 가락(14-15, 20-21장단)은 김병호류와 공통된다. 계면조 대목은 반복 선율이 많이 나타나고 특히 상 하청에서 같은 선율로의 반복이 나타난다. 강산제 대목에서는 강태홍 특유의 가락을 반복하여 주제와 변주같은 선율진행을 한다.
중중모리: 계면조로의 음 구조 짜임 없이 평조 길로 진행된다. 구전된 조명은 우조로 되어 있어 악상을 지시하고 있다. 첫대목에는 당김음이 자주 나와 장단의 첫 박을 보내놓고 연주하며, 두 장단 단위로 문답 형태로의 선율진행은 선율내용의 이해를 수월하게 한다.
자진모리: 경조 우조, 계면조로 단락 구분이 되어 있다. 첫대목 경조부분은 중중모리에서 처럼 당김음을 많이 쓰고 장단을 걸고 가는 것처럼 선율 시작은 장단과 어긋나게 짜여있어 강태홍 가야금산조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우조 대목은 음구조상으로는 평조 길이다. 후반 22장단부터의 선율은 김병호류 김죽파류 등에도 변주되어 등장한다.
30장단에서 땅 본청의 계면 길로 음구조가 바뀌어 징 본청보다 장 2도 윗 조의 계면길 선율이 진행되며, 칭이나 동 본청의 임시적인 조바꿈도 나타나(32, 39장단) 음 구조의 변화가 다양하다. 43장단부터는 땅 본청의 계면 길로 안착 되어 2분박 리듬 꼴로 진행되며 55장단에서 일단락을 짓는다. 55-67장단까지 소단락으로 진행된 뒤 68장단부터는 평조길로 바뀌어 77장단에서 맺는다. 78장단부터 계면길로 바뀌며 여러 개의 소단락 중심으로 선율 전개가 이루어진다.
휘모리: 여느 산조의 자진 자진모리에 해당하는 가락이다. g 본청의 계면길로 길게 진행된 뒤 도섭(장단 박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연주하는 대목)을 거쳐 다시 본디 장단 틀에 맞추어서 연주하는 대목으로 돌아온다. 강산제로 되어 끝 대목은 땅 본청 계면길로 잠시 청 바꿈 된 뒤 종지가락으로 맺어진다.
세산조시: 빠른 4박으로 바뀌어 계면길의 음구조로 일관되고 중모리 두 장단으로 마무리된다.
그간 가야금산조 연구는 제3세대 연주자 음악분석에 바탕하여 세대를 역으로 추적해봄으로써 1, 2세대에 걸쳐 구전으로 이어진 산조음악 형성과정을 추론해 왔다. 그 배경에는 제2세대 가야금산조 명인으로 거론되는 한성기(韓成基, 1889~1950), 강태홍, 안기옥(安基玉, 1894~1974) 중, 앞 두 사람은 50년대에 작고했고, 또 안기옥은 월북했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 실재를 연구하는데 한계와 제한이 있었다. 또 가야금산조의 전승이 구전이고 유파마다 모방 표절 답습 등의 방법으로 세대 간 가락이 이어져 온 음악환경 때문에 본인의 창작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강태홍의 가야금산조 가락 구성에서도 김창조의 직접적인 영향이 어디까지인지, 동료나 후배, 주변 명인 명창간의 음악적 교류와 영향이 그의 음악에 미친 실제 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강태홍의 초기 짧은 산조 가락이 정남희 것과 반 정도나 겹친다고 하므로 유파간 밀접함이 있었을 것으로 추론될 뿐이다. 강태홍이 생전에 연주한 음원이 전해지고 있어서 이에 대한 세심한 연구가 필요하다. 제2세대 가야금산조의 가락 구성이나 전개, 독특한 연주법 등을 드러낼 필요가 있고 그럼으로써 산조 발전과정에서 제1세대, 2세대의 음악적 역할을 언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해숙, 「가야금산조의 유파별 비교」, 『산조연구』, 세광출판사, 1987. 김해숙·백대웅·최태현 공저, 『전통음악개론』, 도서출판 어울림, 1995. 백혜숙, 「한국근현대사의 음악가 열전Ⅴ -효산 강태홍의 생애와 음악-」, 『한국음악사학보』 8, 1992. 최문진 채보,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영남대학교출판부, 1988.
김해숙(金海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