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律)의 음높이를 정하기 위해 사용한 원통형의 관.
○ 설명
율관(律管)은 율의 음높이를 정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율관(律管)의 길이이다.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 등의 옛 문헌을 보면, 율관(律管)의 길이를 정하는 방법에는 이서정률법(以黍定律法)과 후기지법(候氣之法)의 두 가지가 있다. 이서정률법(以黍定律法)이란 길이를 재기 위해 썼던 곡식인 기장 알을 세로로 쌓아 만든 종서척(縱黍尺)과 가로로 쌓아 만든 횡서척(橫黍尺)으로 구분하고, 이를 기준 삼아 율관(律管)의 길이를 산출하는 방법이다. 다음으로 후기지법(候氣之法)이란 계절의 변화로 율관(律管)이 잘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우선 만들어진 율관(律管) 여러 개에 불에 타고 남은 재를 넣어 땅속에 묻는다. 그리고 동지(冬至)에 묻어두었던 율관(律管) 중에서 땅 밖으로 재가 드러나는 것을 황종 율관(律管)으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후기지법(候氣之法)은 자연적 조건이 다양한 이유로 이후 많은 비판이 있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세종 시기의 박연(朴堧, 1378~1458)이 율관(律管)을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1차 율관(律管) 제작은 1425년(세종 7) 해주의 기장을 기준으로 황종 율관(律管)을 만들고, 이를 중국 아악기와 비교하였는데 서로 음률이 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1427년(세종 9)에 중국 편경의 황종에 맞추어 밀랍을 거서(秬黍) 모양으로 만들어 2차 율관(律管)을 제작하였고, 이 율관(律管)을 기준 삼아 아악기 중 하나인 석경(石磬)을 제작하고 왕께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박연은 1차 율관(律管) 제작이 중국 아악기와 맞지 않은 이유가 가뭄으로 인해 기장이 작았던 까닭이라고 하면서, 3차 율관(律管) 제작을 요청하는 상소문을 올렸지만, 이후 3차 율관(律管)을 제작하였다는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악학궤범(樂學軌範)』의 「십이율위장도설」에는 율관(律管)의 길이와 제작 방법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남상숙(南相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