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의 유래는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므로, 특정하여 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문헌 상으로는 『예기(禮記)』 「악기(樂記)」에서 ' 사물에 감동하여 마음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소리로 형상화된다. 소리가 서로 응하여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가 일정한 형식을 이루면 ‘음(音)’이라 한다. 그 음을 서로 조화롭게 배열하고, 거기다 방패와 도끼, 깃발과 깃털 장식을 더하면 ‘악(樂)’이라 한다(感於物而動,故形於聲.聲相應.故生變.變成方,謂之音.” “比音而樂之,及干戚羽旄.謂之樂.)라고 하여, 음과 악기의 관계를 정의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악기의 개념은 동북아시아에서 공유되었으며 조선전기 예악정비과정에도 반영되었다. 악기 중 한국음악에 사용되어 온 악기는 주로 국악기로 통칭되며, 그 범주에 속하는 악기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제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장 기간에 걸쳐 한국음악사에 수용되어 왔다. 한반도에 연원을 둔 악기부터 외래에서 수용된 악기들이 민간과 궁중에서 지속적으로 전승되면서 현재 한국음악 분야에서 국악기, 전통악기, 한국악기로 인지되는 한국의 악기의 개념과 범주가 형성되었다.
○ 종류와 분류
의물류를 제외한 문헌에 등재되어 전해오는 국악기는 약 60종이며, 민간의 일상에서 사용되는 생활 악기까지 포함하면 종류가 더 늘어난다. 일반적으로 악기의 분류는 소리내는 발음체와 소리내는 방법에 따라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전자악기로 나뉘며, 공기진동원리에 따라 줄 진동악기(絃鳴樂器, Chordophones), 공기 진동악기(氣鳴樂器, Aerophones), 몸체 진동악기(體鳴樂器, Idophones), 막 진동악기(膜鳴樂器, Membranophone)로 구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심국사기』에서 신라악ㆍ고구려악ㆍ백제악 등 국가별로 구분한 예가 있고, 『고려사』 「악지」와 조선전기 『악학궤범』(1493)에서는 음악의 연원에 따른 아악ㆍ당악ㆍ속악(향악) 분류를 따랐다.
한편, 조선 후기 문헌 『시악화성(詩樂和聲)』(1780) 과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1908)에서는 악기의 재료를 여덟 가지로 구분한 팔음 분류가 시행되었다. 이와 같은 팔음 체계 분류법은 일제강점기 20세기 초반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음악인들에 의한 국악기 분류 및 현대의 국악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 용도
국악기는 용도에 따라 일반적으로 궁중 악기ㆍ선비 풍류 악기ㆍ민속악기ㆍ불교의 법구ㆍ무속의 무구ㆍ민속생활 악기로 불린다. 궁중 악기는 궁중의 제례와 연향, 군례에 사용되는 악기로, 악곡별로 취사선택 되었다. 제례와 연향에서는 용도 및 악곡별로 아악기ㆍ당악기ㆍ향악기가 사용되었으며, 군례에서는 향악기 외에 금(金)ㆍ고(鼓)ㆍ각(角)류의 악기와 태평소가 사용되었다. 선비 풍류방에서는 거문고ㆍ가야금ㆍ비파 등의 현악기가 주로 사용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퉁소․ 칠현금ㆍ생황ㆍ양금ㆍ경(磬) 등의 악기류가 새롭게 선비 풍류방 악기로 수용되었다. 또한 선비 풍류방에서는 장구 대신 ‘죽장고’라는 생활 악기가 사용되기도 했다. 민속에서는 향악기에 속하는 관악기, 현악기, 북, 장구 등이 사용되었고, 민속의 축제와 놀이에서는 궁중 음악과 형태가 다른 북, 장구, 꽹과리, 소고류의 악기 들이 사용되었다. 한편, 19세기 말, 산조의 탄생 이후, 기존의 악기들을 산조 연주에 적합하게 변형시킨 산조가야금, 산조거문고, 산조대금 등의 악기들이 생겼으며, 20세기 초반에는 궁중의 아쟁과 가야금을 응용한 산조아쟁이 새롭게 탄생되기도 했다. 불교 의례에서는 법구(法具)를 이용해 주악하였는데, 범종ㆍ법고ㆍ경쇠ㆍ반자 ㆍ목탁ㆍ태징(太鉦)ㆍ자바라ㆍ요령(鐃鈴)ㆍ죽비(竹篦) 외에 큰 의례에서는 삼현육각 편성의 악대와 태평소, 나발ㆍ나각, 북ㆍ장구ㆍ징ㆍ자바라로 구성된 취타 악대가 동반되었다. 이밖에 사찰의 범종각에 비치된 범종ㆍ법고ㆍ목어ㆍ운판도 넓은 의미의 법구에 속한다. 무속 의례에 사용되는 무구는 장구ㆍ징ㆍ북 등의 타악기와 피리, 대금 등의 현악기들이 있는데, 지역에 따라 종류와 형태, 무구의 명칭들이 차이가 있다.
악기 중에는 연주용 악기와 구분되는 무구(舞具)도 있다. 궁중 정재 중 아박무(牙拍舞)에 사용되는 아박(牙拍), 무고(舞鼓) 정재의 무고(舞鼓), 향발무(響鈸舞)에 사용되는 향발(響鈸) 등은 각각 박, 교방고, 바라의 변형으로 연주에는 쓰이지 않고 춤을 출 때만 사용된다. 또 농악놀이에 사용되는 소고는 춤의 소도구에 가깝고, 불교의 작법 중 바라춤을 출 때 사용되는 바라는 취타대가 연주하는 바라보다 크며, 장구춤을 출 때 사용되는 장구는 연주용 장구보다 작다. 형태는 같지만 춤의 용도에 맞게 변형되었다.
민간의 일상에서 사용되어온 생활 악기는 토속 악기라고도 한다. 주로 호드기와 엽적(葉笛) 등을 아우르는 초적(草笛)류 악기와 타악기처럼 사용하는 물허벅, 물장구 종류, 목각류 등이 춤과 노래, 놀이에 동반되는데, 일정한 형태나 악기로서의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다.
○ 편성
연주에 적용되는 국악의 악기 편성은 음악의 연주형태에 따라 1) 향피리 중심의 관현합주, 2) 거문고 중심의 관현합주(줄풍류), 3) 향피리 중심의 관악합주(대풍류, 삼현육각). 4) 당피리 중심의 관악합주, 5) 제례악, 6) 대취타, 7) 취타, 8) 병주, 9) 독주, 10) 민속악합주, 11) 농악, 12) 불교음악, 13) 무속음악, 14) 성악곡 반주 등으로 구분해서 살필 수 있다.
○ 제작
조선시대 이전의 악기 제작에 관한 역사 기록은 매우 드물다. 『삼국사기』에 고구려의 제 이상(第二相) 왕산악(王山岳)이 거문고를 만들고 가야의 가실왕(嘉悉王)이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 기록에도 거문고와 가야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현재 일본 정창원에 소장되어 있는 가야금 관련 유물(신라금)의 형태가 조선시대의 『악학궤범』에 도설(圖說)된 내용과 거의 같은 점으로 미루어, 당시 가야금 제작 기술이 동시대 최고 수준이었으며 대를 이어 면면이 전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 기술의 전승 이면은 전혀 알 수 없다. 국악기 제작에 관하여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은 조선시대의 실록 기록 및 『악학궤범』, 수종의 악기 제작 관련 의궤 및 연향 의궤류들이 있다. 이 내용을 종합하면 악기 제작에는 국가의 여러 기관에 배치된 공장들이 참여하고, 음악 기구였던 장악원(掌樂院)이 전체를 관장했는데, 세부적으로는 황엽장(簧葉匠), 고장(鼓匠), 쟁장(錚匠), 조현장(造絃匠), 태평소장(太平簫匠), 피장(皮匠), 통장(桶匠)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그밖에 필요한 여러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장악원에서 최종적인 조율과 감수를 책임졌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타악기의 가죽을 다루는 북 메우기 기술과 현악기 제작, 편종ㆍ편경 제작 기능을 '악기장'으로 통합하여 국가 무형유산의 한 종목으로 전승하고 있다.
○ 역사적 변천
국악기의 범주는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되었다. 문헌이나 벽화 그림 등의 주악 도상(奏樂 圖像) 자료를 통해 그 연원이 추적 가능한 악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동북아시아의 문명권 안에서 이웃나라와 지속적으로 음악문화를 주고받으며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국악기 중에는 가야금·거문고·대금 등의 고유 악기도 있고, 피리나 장구·해금처럼 중앙아시아와 중국대륙으로부터 전래되어 국악기로 완전히 동화된 외래 악기도 있다. 그런가 하면 12세기, 아악(雅樂)의 수용과 함께 국악기 반열에 든 아악기의 경우, 중국에서 보내주지 않으면 구비할 수 조차 없는 낮선 악기였지만 조선 세종 때에 대대적인 연구를 통해 국내제작이 이루어짐으로써 아악의 본거지인 중국보다 더욱 고전적인 형태의 아악기의 전통을 잇고 있다. 또한 18세기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양의 옛 현악기 양금(洋琴)은 비록 악기 이름에 서양을 뜻하는 ‘양(洋)’ 자를 붙이고는 있으나, 서양음악과는 거리가 먼 선비 풍류 음악의 악기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저마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제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악기들이 한국음악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궁중과 민속에서 다양한 음악문화를 일궈왔다. 20세기 이전에 형성되어 오늘에 전하는 악기들은 현재 국악기, 또는 전통악기, 한국악기로 불린다.
송혜진(宋惠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