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지곡(武寧之曲)
조선 후기 취고수(취타수) 혹은 취타내취(吹打內吹)가 취타 악기로 연주한 군영 음악이자 정재 반주음악
대취타는 조선 후기 군영의 취고수 혹은 궁중의 취타내취가 훈련이나 행진할 때 취타 악기로 연주한 악곡이다. 군영이 철폐된 이후 궁중의 취타내취를 통해 전승되었다. 현재도 연주자들은 궁중 내취와 같이 공작우(孔雀羽)를 꽂은 전립, 황철릭[天翼․帖裏], 남사대로 된 복식을 착용하고, 나각(螺角), 나발(螺叭), 태평소[號笛], 징[鉦], 자바라(啫哱囉), 용고(龍鼓) 등의 취타 악기를 연주한다.
임진왜란 후 취타 악기를 연주하는 취고수(취타수)라는 군영 악대가 연주하는 대취타 등의 악곡이 생겼다. 임진왜란 후에 형성된 군영의 취고수(취타수)가 《대취타》 등의 악곡을 연주하였다. 군영이 철폐되고 취고수가 없어짐에 따라 궁중의 취타내취가 《대취타》를 전승하였다.
○ 역사적 변천
대취타는 취타 악기를 연주하는 군영 소속 악대가 연주한 음악이다. 이후에 군영이 철폐되자 취고수 제도도 없어졌고, 《대취타》는 궁중의 취타내취가 연주하는 궁중음악이 되었다. 현재도 취타내취가 착용했던 복식과 악기편성으로 연주하고 있다. 한편, 대취타라는 용어는 악곡명ㆍ악대명ㆍ군영에서 사용된 신호명으로 쓰였으며, 현재는 악곡명으로만 사용된다.
○ 악기와 악기편성 대취타를 연주할 때 조선 후기에는 대각ㆍ나각ㆍ나발ㆍ호적(쇄납, 태평소)ㆍ발라(哱囉)ㆍ솔발(摔鈸)ㆍ자바라ㆍ점자ㆍ금(金)ㆍ정(鉦)ㆍ나(鑼)ㆍ고(鼓) 등의 열두 종류의 취타 악기를 사용했다. 이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한국악기와 임진왜란 이후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악기가 섞인 구성이다. 열 두 종류의 취타 악기 중 대각ㆍ발라ㆍ솔발ㆍ점자ㆍ나는 전승이 단절되거나 취타악 연주에 사용되지 않아, 나머지 일곱 종류의 악기만 대취타 연주에 사용되고 있다. 대각과 발라는 나발로 흡수되었고, 점자는 운라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금ㆍ정ㆍ나는 징으로 통합되어 사용하고 있다. 솔발은 그 전승이 완전히 단절되었다. 현재는 나각ㆍ나발ㆍ태평소ㆍ징ㆍ자바라ㆍ용고로만 편성하여 연주한다.
○ 복식 조선 시대 기록화에서 대취타 연주자의 복식은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아청색 소창의에 황호의를 걸치고 남전대를 띠고 전립을 쓴 군복 형태가 《원행을묘정리의궤》 <반차도>, 《평양감사향연도》 중 <월야선유도>ㆍ<안릉신영도>ㆍ<대한제국동가도>등에 일관되게 나타난다. <월야선유도>에는 붉은색 철릭을 입은 나발수와 나각수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 옷은 조선 시대 동가(動駕) 때 당하관 무사들이 입던 복식 중에도 있었다. 전립을 쓰고, 황철릭을 입고, 남사대를 띤 내취 복식은 대한제국 황실 연향을 그린 《임인진연도병》등에 보인다. 근래에는 대취타 연주 시 많은 경우에 황철릭을 입었다. 국립국악원은 2016년에 군복 형태 의상을 제작하여, <선유락> 등 정재 반주 시에는 내취 복장을 하고, 행악으로 연주할 때에는 주로 군대 복식을 입는다.
○ 장단과 형식, 연주의 시작과 마침 방법 대취타는 총 7장으로 구성되며, 12박 한 장단이다. 도드리 형식 악곡으로, 제7장 끝에서 제1장 제3박으로 돌아가 반복하는 구조를 지닌다.《대취타》를 시작할 때는 등채가 ‘명금일하 《대취타》(鳴金一下大吹打)’라는 구령을 외치는데 이것은 징을 한 번 친 후에 연주를 시작하라는 뜻이다. 마칠 때는 등채가 ‘허라금[喧譁禁]’이라는 구령을 외치는데, 요란한 소리를 멈추라는 뜻이다.
국가무형문화재(1971)
『춘관통고』
김영운, 『국악개론』, 음악세계, 2015.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의 형성과 전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3. 이숙희, 「불교취타악의 형성과 배경」, 『한국음악연구』 37, 2005.
이숙희(李淑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