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의 명칭과 용도가 확인되는 최초 기록은 『악학궤범』의 군기(軍旗)에 제사하는 둑제(纛祭) 항목이다. 초입배열도와 회선도, 진퇴도 및 해설에 중고의 배치와 쓰임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조선시대 둑제에 사용된 중고의 모양은 조선후기의 『춘관통고(春官通考)』(1788년경) 〈정대업지무 의물도〉 소고 편에 “소고는 지금 쓰지 않는다. 중고를 사용하는데 둑제의 것과 같다”는 설명과 함께 그림이 실려 있다. 그 모양은 『악학궤범』 소재 대고 및 소고와 같이 북통에 박힌 고리에 끈을 달아 메고 치는 형태이다. 북통에는 모란문양이, 북면에는 태극문이 그려져 있고, 가죽은 광두정을 한줄로 박아 고정시켰다. 중고의 규격은 분명치 않으나, 『악학궤범』에 기술된 소고(북면: 16.94cm, 북통 너비: 12.32cm)보다 큰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20세기 전반기 이왕직아악부 소장 중고는 북틀 위에 올려놓고 교방고처럼 연주하는 형태로, 『조선아악기사진첩(건)』의 해설에 따르면 중고의 북면의 지름은 2척 5치(75.7cm), 북통 길이는 2척 2치 5푼(63cm), 북통 둘레는 8척 8치(266cm), 받침대의 높이는 3척 6치 5푼(110cm), 너비는 3척 4치 5푼(104.5cm)이다.
중고는 1781년(정조 5)에 새롭게 제정된 관왕묘 제례에도 편성되었다. 〈관왕묘 제례악〉은 〈정대업지곡〉의 일부를 발췌하여 사용하였지만 악기 및 기물의 편성, 주악인의 복식은 종묘제례와 달랐다.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악공들이 다섯 방위에 기를 세우고 피리, 대금, 해금, 장구 외에 태평소와 대금(大金)과 소금(小金)과 함께 중고를 치며 악장을 불렀다. 한편, 『춘관통고(春官通考)』(1788년경) 〈정대업지무 의물도〉 소고 편에 “소고는 지금 쓰지 않는다. 중고를 사용하는데 둑제의 것과 같다”는 설명과 함께 그림이 실려 있어 그 모양을 알 수 있다.
송혜진(宋惠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