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규일이 1926년 조선권번에서 기생들의 가창 교재로 발행한 가집이다. 이 가집에는 여창가곡ㆍ가사ㆍ시조의 노랫말이 수록되었다. 소책자로 간편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게 제작해, 항시 휴대하며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권번은 1923년에 경화권번(京和券番)과 대정권번(大正券番)에서 탈퇴한 기생들이 하규일을 앞세워 세운 권번이다. 하규일은 이곳 권번 기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던 중, 가기(歌妓)들을 위한 노래 교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그 결과 조선권번 창립 4년 만에 이 가집을 출판했다.
○ 서지 및 편찬 정보
『가인필휴』는 1926년 조선권번에서 발행했다. 형태는 수첩 같은 작은 소책자였다. 제명 『가인필휴』에서 ‘가인(歌人)’은 ‘노래하는 사람’, ‘필휴(必携)’는 ‘반드시 휴대해야 함’이라는 뜻이다. 즉 노래하는 사람의 필수 휴대용 가집이란 의미이다. 현재 이 책의 소장처나 소장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가집은 실제 조선권번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출간되었다. 조선권번 기생 김진향(金眞香, 1916~1999)의 증언에 의하면, 노래방에 들어가게 되면 제일 먼저 이 작은 『가인필휴』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교재를 받았어도 노래는 전부 구전으로 외워가며 배웠기 때문에 펼쳐본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때까지도 가곡, 가사, 시조의 교습은 여전히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전통적 방식으로 이뤄졌던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전통적인 여창의 교습 방식을 알려줄 뿐 아니라, 그 이전 시기 여창 가집의 존재가 남창 가집에 비해 매우 적었던 이유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창용 가집 혹은 교재의 부재가 하규일로 하여금 여창 전용 가집을 만들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 구성과 체재
책의 구성은 서문과 본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은 1926년 12월에 하규일이 썼다. 서문에 의하며, 장악원과 교방을 통해 음악이 전래되기는 했지만 대부분 넓게 교수(敎授)되지 못하고 악원(樂員)에게만 전래됐다고 말한다. 이후로 기생에게는 나라의 연례(宴禮)를 위한 노래와 춤이 전습(傳習)될 뿐 나머지는 감추어져 화류계에 전래되던 것도 끊어질 지경이 되었다고 개탄한다. 이에 흔히 부르는 노래에서 여창만 약간 뽑아서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하였다.
본문은 가곡, 가사, 시조의 세 항목으로 되어 있다.
첫째 항목은 가곡 16개 악곡의 노랫말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노래는 모두 여창가곡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우조 〈첫치〉ㆍ〈중허리〉ㆍ〈막내는 자진한잎〉ㆍ〈존 자즌한잎〉ㆍ〈반엽〉
계면 〈첫치〉ㆍ〈중허리〉ㆍ〈막내는 자진한잎〉ㆍ〈존 자진한잎〉
〈롱가〉ㆍ〈우락〉ㆍ〈환계락〉ㆍ〈계락〉ㆍ〈편〉ㆍ〈태평가〉ㆍ〈장진주〉
둘째 항목은 8개 가사이다. 이들 가사는 십이가사 중 하규일 전창 8개 가사 목록과 일치한다. 임기준이 전한 〈수양산가〉ㆍ〈양양가〉ㆍ〈처사가〉ㆍ〈매화타령〉 4개 가사는 실리지 않았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권주가〉ㆍ〈상사별곡〉ㆍ〈춘면곡〉ㆍ〈황계타령〉ㆍ〈백구사〉ㆍ〈길군악〉ㆍ〈건곤가〉ㆍ〈어부사〉
셋째 항목은 「시조약취(時調略取)」로, 이는 시조 약간을 뽑았다는 뜻이다. 「시조약취」에는 7개 내용별 분류항에 각각 시조를 실었다. 분류항은 다음과 같다.
〈전춘(餞春)〉ㆍ〈녹음(綠陰)〉ㆍ〈추(秋)〉ㆍ〈동(冬)〉ㆍ〈권주(勸酒)〉ㆍ〈님시조〉ㆍ〈축하시조〉
『가인필휴』는 기생들이 항시 휴대하며 배워야 할 가곡ㆍ가사ㆍ시조 노랫말을 하규일이 직접 정리한 것이다. 하규일은 일찍이 1910년대부터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와 권번에서 십여 년 동안 가곡 노래선생을 해왔다. 즉 하규일은 풍류방을 드나드는 고객들이 여창에서 듣기 원하는 노래를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인물이다. 그에 의해 여성가객인 가기들을 위한 여창가곡과 가사와 시조 목록들이 수집되었으니, 『가인필휴』에 실린 노래들이야말로 당대 풍류계의 노래문화 실상을 가장 담아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인필휴』
김진향 편, 『선가 하규일선생 약전』, 예음, 1993. 권도희, 「20세기 기생의 가무와 조직-근대기생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연구』 45, 2009.
신경숙(愼慶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