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의 저자와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현재 전하는 것은 장사훈이 1938년 가을에 전사하여 소장하였던 거문고 악보이다. 장사훈은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이왕직아악부의 연주자로 근무하며, 고악보의 필사에 참여하였는데, 이 기간에 『초학금서』를 전사하였다. 악보의 내표지(원래 표지로 보임) 하단에 숫자 ‘253371’이 찍혀있어, 처음에는 기관에서 소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〇 자료 정체
『초학금서』는 거문고(琴)를 처음 배우고자 하는 사람(본인 또는 타인)을 위해 편찬된 입문용 악보로, 편찬자와 편찬 연대는 미상이다. 유사한 의도로 편찬된 악보로 『초입문금보』와 『금학입문』이 있다. 악보의 내용과 용지, 서체 등을 근거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본의 소재는 알려지지 않았고, 현재 전하는 필사본은 장사훈(張師勳, 1900~1976)이 1938년 가을에 전사한 것으로, 그가 이왕직아악부 재직 시기에 필사한 자료로 알려져 있다. 장사훈은 이 악보를 1990년 3월 2일 청주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기증하였으며, 현재는 청주대학교 민족음악자료관에 소장되어 있다. 도서 분류번호는 JS 679.72 초298이다.
〇 서지사항 / 자료체제
『초학금서』는 세로 24.3㎝×가로 17㎝의 1책 36면으로 구성된 필사 악보이다. 오늘날 사무용 괘지(약 250×174㎜)와 유사한 크기의 용지를 사용하였으며, 제책은 5개의 구멍을 실로 묶은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을 적용하였다. 외표지와 내표지의 ‘초학금서’ 서체와 내용을 적은 서체는 상이하며, 장차(張次)가 앞 내표지 다음부터 시작되는 점으로 보아, 내표지가 원래의 표지였고 외표지는 후대에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장사훈의 전사한 부분은 내용에 한정되고, 표지의 서체는 다른 사람의 것으로 보인다. 용지는 붉은 세로줄이 인쇄된 양면 괘지(兩面罫紙)로, 판심(版心)에 어미(魚尾)와 ‘李王職(이왕직)’이라는 기관명이 새겨져 있어, 이왕직(구 궁내부) 소속 기관의 공용문서 용지를 전용한 것으로 보인다. 3면(내 표지)에 이 악보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내 표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책명인 ‘初學琴書 其一’과 금규(琴圭)가 써 있고, 아래에 장사훈의 타원형 도장이, 우측에 운초(云初) 양각 도장이과 장사훈 음각 도장이 찍혀있다. 우측에 ‘戊寅 晩秋 寫之’와 ‘一九三八年 晩秋’라 쓴 것은 해방 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전사 당시에는 ‘소화 13년’을 사용했을 것임) 하단 중앙에 관리(분류)번호로 보이는 ‘253371’의 숫자가 찍혀있다. 셋째 면 상단 오른쪽에 양각으로 ‘琴圭藏書’ 도장이 찍혀있다.
〇 구성과 내용
이 악보의 내용에 따라 〈이론편〉과 〈악보편〉으로 대별할 수 있고, 악보는 거문고와 단소로 구분할 수 있다. 〈이론편〉 중 「현금도해」와 「현금」은 저자가 초학자를 위해 그림으로 설명을 추가한 부분이고, 「현한금보략」 이후는 『학포금보』의 해당 부분과 유사하다. 『초학금서』의 〈우조장처해음(羽調長處解音)〉과 〈계면처사음(界面處辭音)〉은 『학포금보』에 〈우조장다사음(羽調長多辭音)〉과 〈계면다사음(界面多辭音)〉으로 기록된 점, 〈우삼중대엽〉이 포함된 점 등에서 차이가 있다. 〈이론편〉 중 이 악보의 독창적인 부분은 「현금도해」 부분이다. 세부 내용은 ‘전면’과 ‘후면’의 그림과 부분 명칭이 있는데, 그 중 ‘軫棵 或云 馬乳 俗稱 돌괘’라 하여, 현재 사용하는 ‘돌괘’가 속칭이고, ‘진괘’가 본 명칭이며, 현재 사용하지 않는 ‘마유’라는 명칭도 소개되어 있다. 이어서 오른손의 술대 잡는 그림과 왼손 소지로 문현을 막고 있는 그림, 괘와 안족 등도 그림으로 제시되어 있다. 「현금」 부분의 설명은 『악학궤범』의 내용을 전사하였고, 「현학금보략」 이후는 『학포금보』의 뒷부분(63前~71前)과 같으나, 『학포금보』와 비교해 보면, 다음의 오류를 찾을 수 있다. 『초학금서』의 〈界面處辭音〉은 전 곡이 순서대로 전사되었으나, 『학보금보』의 〈界面多辭音〉은 66後(한국음악학자료총서 영인본) 다음에 65前과 65後로 연결되어야 한다. 편찬자의 잘못 또는 영인 과정의 오류로 보인다. 『초학금서』 〈우초중대엽〉은 ‘제19면(8張次 前, 341쪽)’에서, 〈우삼중대엽〉은 ‘제21면(9張次 前, 영인본 343쪽)’에서 각각 시작되는데, 곡목과 수파형 악보 없이 초장 선율부터 기록하였다. 〈우삼중대엽〉의 끝 ‘五流’ 부분은 『초학금서』에서 판독할 수 있다. 『초학금서』의 〈계이중엽〉(제23면, 345쪽)은 『학포금보』에 〈羽中界二中葉 - 界二數葉爲大音〉에 해당하는데, 역시 곡목과 수파형 악보 없이 ‘초장’ 선율부터 기록하고 있다. 『초학금서』 제28면(11張次 後, 348쪽)에 단소 〈세환입〉의 선율 2행이 있고, 그 다음에 ‘一旨’가 거문고 제4괘법으로 시작하는데, 이 악곡은 『학포금보』의 〈북전〉에 해당한다. 이 부분을 「매화점 장단고」에서는 단소보로 해석하였고, 김세종의 「초학금서(해제)」에서는 거문고보로 정정하였다. 〈二後庭花〉(제28면, 350쪽) 한 줄 악보 끝 ‘餘皆上同’(나머지 선율은 위 곡의 해당부분과 동일함)이란 글귀 다음에 ‘초장’이 기록되었는데, 이는 〈우삼중대엽〉을 한 번 더 전사한 것이다. 〈다스름〉 악보에 사용된 기보법은 육보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夕’(무명지), ‘レ’(장지) 지법과 ‘四’, ‘五’ 등의 괘차(棵次)를 기록하였는데, 좌측과 우측의 일정한 기보 원칙이 없다. 〈중대엽〉 계와 〈북전〉 악보에는 육보를 주로 기보하고, 지법은 없고 ‘四’, ‘六’, ‘七’, ‘大七’, ‘大四’ 등의 괘차만 우측에 간간이 쓰여 있다. ‘괘법’ 지시는 악곡의 시작과 중간에 ‘夕四レ’ 또는 ‘夕五レ’, ‘夕七二[レ]’, ‘二レ’으로 기록하는데, ‘무명지와 장지를 ○괘에 위치’하라는 지시를 하고 있다. 또 육보가 기록되는 위치(중간)에 ‘四’, ‘三’ 등의 숫자를 기록하여 괘법을 표시하기도 하였다(숫자의 위치가 중요함). 이와 같이 미세하지만 기보법에 차이를 보이는데, 〈다스름〉은 상대적으로 고형의 기보법 『오희상금보』(제2기 제2소군)에 가깝고, 〈중대엽〉은 『학포금보』(제3기 제1소군)에 가깝다. 즉, 동일 악보에 전사된 악곡이지만, 두 계열 악곡은 기록된 시기가 서로 다르다고 하겠다. 수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론편〉 현금도해(玄琴圖解), 현금(玄琴), 현학금보략(玄鶴琴譜略), 현금식(玄琴式), 고금범례(鼓琴凡例), 안법(按法), 양식척(量息尺), 아악 속악조(雅樂俗樂調), 평조범10체(平調凡十體). 〈악보편〉 우조장처해음(羽調長處解音, 현 다스름), 계면처사음(界面處辭音, 현 다스름), 우초중대엽(羽初中大葉), 우삼중대엽(羽三中大葉), 계이중엽(界二中葉), 격양두고법(擊兩頭鼓法, 장고연주법), 단소보(短簫譜) 세환입(細還入)(도두리) 초장(初章), 북전(北殿), 이후정화(二後庭花), 우삼중대엽(羽三中大葉). 이 악보에서 주목되는 점은 「擊兩頭鼓法」으로 기록된 장고 연주법인데, 장고를 ‘양두고’라 부른 점이 주목된다. 장고의 채편과 북편을 두 개의 머리(면)로 해석하였다. 이 금보와 관련된 중요한 연구 성과는 매화점의 연구로 가곡 장단이 5점 8박 또는 5점 5박의 구조임이 밝혀졌고, 제3장과 제5장의 중간에 나타나는 반각의 운용에 대한 해결 실마리를 제공하였다는데 있다. 단소보 설명에서는 지공이 앞에 6개, 뒤에 1개라 기록하였는데, 1960년대 ‘국악사양성소 중등부’ 1학년 과정에 적이라 불리는 악기를 가르쳤는데, 그와 유사한 악기이거나 현재의 단소 이전의 악기일 가능성도 있다. 악기의 역사 변천 등을 연구할 귀중한 내용으로 보인다. 『초학금서』의 수록 악곡이 〈다스름〉과 〈중대엽〉 계 악곡인데, 『양금신보』의 〈다스름(조음)〉에서 설명하였듯이 ‘초학자에게는 어려운 곡’이다. 입문 과정에서 어려운 곡을 주로 사용한 것은 이 악보의 제명(題名)에 사용된 ‘초학(初學)’과 어울리지 않는다.
김우진(金宇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