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악원보』 「신편」 권6에는 “各絃擊挑之法”이라 하여 율명과 거문고, 가야금, 비파[玄琴, 伽倻琴, 琵琶]의 격도지법 3종이 수록되어 있으며, 『악장요람』에도 “此紅點玄琴伽倻琴譜擊挑之法”이라 하여, 율명, 악장과 함께 홍색으로 표시한 거문고, 가야금의 격도지법 2종이 실려 있다.
장사훈의 『국악대사전』에 따르면, “격(擊)은 줄을 내리치는 센박(强拍)으로 ‘ㄱ’표로 쓰고, 도(挑)는 줄을 뜯어내는 여린박(弱拍)으로 ‘ㅣ’표를 사용한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속악원보』 「신편」에는 격표(擊標)는 ‘ㅣ’표, 도표(挑標)는 ‘ㄱ’표라 하여 반대로 명기되어 있다. 반면, 『속악원보』 「신편」 거문고(玄琴)의 격도지법을 동일 악곡이 실린 『세조악보』, 『대악후보』, 『속악원보』 「인편」 등과 대조해 보면, 상대적으로 긴 박(센박)에 ‘ㄱ’표를, 짧은 박(여린박)에 ‘ㅣ’표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로써 『속악원보』 「신편」에 기록된 격도지법 설명은 그와는 달리 반대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전대(前代)의 관찬악보들과 거문고 격도지법을 대조해 보면, 격도지법은 엄밀한 규칙성을 가진 기보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관찬악보들에 기록된 3ㆍ2ㆍ3 정간보는 1정간 1박의 시가를 갖는 악보임을 뒷받침한다. 왜냐하면, 관찬악보들이 1정간 1박의 시가를 갖지 않으면, 격도지법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격도지법이 수록된 『속악원보』 「신편」은 『악장요람』처럼 정간이 없어도 기능하는 악보이므로, 정간보 양식 안에 기록한 것일 뿐, 이를 정간보(井間譜)나 대강보(大綱譜)로 볼 수 없다.
『악장요람』에는 용광(龍光)을 후대에 개찬한 열광(烈光)의 악장을 격도지법이 기록된 기존 악보에 첨지한 부분이 보이는데, 이러한 작업을 한 이유는 첨지한 당시까지도 현악기를 위한 격도지법이 유효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서정순(徐正淳, 1835~1908)이 1902년에 개찬한 무안왕묘(관왕묘) 제악의 악장은 격도지법이 없는 악보에 첨지한 형태로 수록했는데, 이는 무안왕묘 제악에는 격도지법이 불필요했기 때문으로, 이 곡에는 현악기가 편성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현악기 편성 유무는 대한제국기 『대한예전(大韓禮典)』의 종묘 악현과도 연동하고 있는데, 격도지법의 존재는 이 시기의 종묘악에 실제로 현악기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현행 종묘악은 일견 『속악원보』 「신편」 및 『악장요람』의 체제와 내용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 악보를 바탕으로 일신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이 악보들에 내재된 격도지법을 해석하지 않은 채, 재구성한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첫째, 격도지법이 수록된 악곡들은 전대의 악보들과 음길이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에도 현행 종묘악의 싯가에 반영되어 있지 않으며, 둘째, 격도지법이 현악기만을 위한 악보임에도 현악기가 현행 종묘악에는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재영(金宰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