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 이후 장악원에서 궁중 음악을 체계화하기 위해 편찬하고 1892년에 중수된 7권 5책의 관찬 악보집.
조선 정조(正祖, 1776~1800) 이후 궁중 음악을 관장하는 장악원에서 편찬하고, 1892년(고종 29)에 중수된 7권 5책의 관찬 악보집이다. 이 악보는 인ㆍ의ㆍ예ㆍ지ㆍ신편의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악후보(大樂後譜)』 이후의 음악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동시에, 현행 한국 전통음악으로 이어지는 전승의 연결고리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특히 이 악보는 《종묘제례악》의 변화된 악곡 체계와 1음 1박의 새로운 기보 방식을 처음으로 보여 주는 자료로, 조선 후기 궁중음악이 변화ㆍ정착되는 과정을 실증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자연스러운 변화인지 혹은 의도적 개정이었는지를 두고 학계에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수록된 곡 중 《경모궁제례악(景慕宮祭禮樂)》과 《무안왕묘제악(武安王廟祭樂)》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선 정조 이후에 편찬된 악보로 추정된다. 악보는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의 다섯 덕목을 상징하는 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책 말미에 기록된 ‘광서십팔년임진삼월일중수(光緖十八年壬辰三月日重修)’ 기록을 통해 1892년(고종 29년)에 중수(重修)된 것으로 확인된다.
○ 자료 정체
① 편찬연대 및 편저자 사항
편찬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수록된 곡 가운데 1776년(정조 즉위년)에 제정된 《경모궁제례악(景慕宮祭禮樂)》과 1781년(정조 5)에 논의되어 1786년에 처음 연주된 《무안왕묘제악(武安王廟祭樂)》이 포함되어 있어, 조선 정조 이후에 편찬된 악보로 추정된다.
또한 각 책의 말미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광서십팔년임진삼월일중수(光緖十八年壬辰三月日重修)”라는 기록을 통해, 이 악보가 1892년(고종 29년) 3월에 장악원(掌樂院)에 의해 중수(重修)되었음을 알 수 있다.
② 소장처 및 소장번호
국립국악원. 소장품번호: 유물 000206
○ 서지사항/자료체제
사본 7권 5책. 각 책은 인(仁)ㆍ의(儀)ㆍ예(禮)ㆍ지(智)ㆍ신(信)으로 구성. 세로 41.5cm×가로 32.5cm
○ 구성과 내용
① 표지
② 권1 인편
③ 권2 의편
④ 권3 의편
⑤ 권4 예편
⑥ 권5 지편
⑦ 권6 신편
⑧ 권7 신편
『속악원보』의 7권에서는 다양한 기보법으로 음악을 기보했다. 권1∼4, 권6에서는 1행 3ㆍ2ㆍ3ㆍ3ㆍ2ㆍ3의 16정간 6대강의 정간보로 음의 시가를 기보했고, 권3의 《경모궁제례악》의 일부와 권5에서는 1행 4ㆍ2ㆍ4ㆍ4ㆍ2ㆍ4의 20정간 6대강의 정간보로 음의 시가를 기보했다. 음의 높낮이는 율자보(律字譜)와 오음약보(五音略譜)로 기보했다. 권7은 방향보로, 1행 9칸에 율자보로 기보했다.
『속악원보』의 7권 5책의 구성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표지
책의 앞표지에 악보명 ‘俗樂源譜’가 보인다.
② 권1 인편 종묘(宗廟)와 영녕전(永寧殿)의 제례악인 《보태평(保太平)》ㆍ《정대업(定大業)》이 실려 있다. 《보태평》은 〈영신 희문(迎神熙文)〉ㆍ〈전폐 희문(尊幣熙文)〉ㆍ〈진찬 풍안지악(進饌 豊安之樂)〉ㆍ〈초헌 희문(初獻 熙文)〉ㆍ〈기명(基命)〉ㆍ〈귀인(歸仁)〉ㆍ〈형가(亨嘉)〉ㆍ〈집녕(輯寧)〉ㆍ〈융화(隆化)〉ㆍ〈현미(顯美)〉ㆍ〈용광정명(龍光貞明)〉ㆍ〈중광(重光)〉ㆍ〈대유(大猷)〉ㆍ〈역성(繹成)〉으로 구성되고, 《정대업》은 〈아헌 소무(亞獻 昭武)〉ㆍ〈독경(篤慶)〉ㆍ〈탁정(濯征)〉ㆍ〈선위(宣威)〉ㆍ〈신정(神定)〉ㆍ〈분웅(奮雄)〉ㆍ〈순응(順應)〉ㆍ〈총유(寵綏)〉ㆍ〈정세(靖世)〉ㆍ〈혁정(赫整)〉ㆍ〈영관(永觀)〉ㆍ〈철변두 옹안지악(徹籩豆 雍安之樂)〉ㆍ〈송신 흥안지악(送神 興安之樂)〉으로 구성된다. 권1에 수록된 《보태평》과 《정대업》은 『대악후보』 권2의 「시용보태평보(時用保太平譜)」와 「시용정대업보(時用定大業譜)」에 실린 악보와 선율이 완전히 일치한다. 이 가운데 《정대업》의 11곡과 《보태평》의 〈희문〉ㆍ〈기명〉ㆍ〈현미〉ㆍ〈대유〉는 선율뿐만 아니라 장고 장단, 박절 역시 『대악후보』와 동일하게 나타난다. 반면 《보태평》의 〈귀인〉ㆍ〈형가〉ㆍ〈집녕〉ㆍ〈융화〉ㆍ〈용광정명〉ㆍ〈중광〉ㆍ〈역성〉 등 일곱 곡은 가사와 장고, 박의 위치가 『대악후보』와 다소 다르게 기보되어 있다. ③ 권2 의편 관운장을 모신 사당인 관왕묘(關王廟)의 제악인 《무안왕묘제악》이 실려 있다. 《무안왕묘제악》은 〈영신 왕재곡(迎神 王在曲)〉ㆍ〈전폐 힐향곡(奠幣 肹蠁曲)〉ㆍ〈철변두 석하곡(撤籩豆 錫蝦曲)〉ㆍ〈송신(送神)〉으로 구성된다. 《무안왕묘제악》은 《종묘제례악》 중 《정대업》의 악곡을 발췌하여 만든 곡이다. ④ 권3 의편 《경모궁제례악》인 《계희운(啓熙運)》ㆍ《보융은(報隆恩)》이 실려 있다. 《계희운》은 〈영신 어휴곡(迎神 於休曲)〉ㆍ〈전폐 제명곡(奠幣 齊明曲)〉ㆍ〈진찬 혁우곡(進饌 赫佑曲)〉ㆍ〈초헌 제권곡(初獻 帝眷曲)〉ㆍ〈진색곡(震索曲)〉ㆍ〈유길곡(維吉曲)〉으로 구성되고, 《보융은》은 〈아헌 독경곡(亞獻 篤慶曲)〉ㆍ〈휴운곡(休運曲)〉ㆍ〈휘유곡(徽柔曲)〉ㆍ〈철변두 유분곡(徹籩豆 有芬曲)〉ㆍ〈송신 아례곡(送神 我禮曲)〉으로 구성된다. 《계희운》과 《보융은》은 각각 《종묘제례악》 중 《보태평》과 《정대업》의 악곡을 발췌하여 만든 곡이다. ⑤ 권4 예편 〈여민락만(與民樂慢)〉ㆍ〈낙양춘(洛陽春)〉이 실려 있다. 〈여민락만〉은 1행 32정간보로 된 『세종실록악보(世宗實錄樂譜)』의 〈여민락〉과 기보법이 다르지만 출현음과 시가가 완전하게 같은 악곡이다. 〈낙양춘〉은 이 악보가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악보이다. ⑥ 권5 지편 〈여민락 관보(管譜)〉10장ㆍ〈보허자〉와 《영산회상(靈山會相)》과 〈여민락 현보(絃譜)〉7장ㆍ〈보허자〉가 실려 있다. 기록 위치상 〈여민락 관보〉 뒤의 〈보허자〉는 관보로, 〈여민락 현보〉 뒤의 〈보허자〉는 현보로 보이는데, 관보와 현보로 구분된 〈여민락〉과 〈보허자〉의 악보는 이전 시기에 없었던 처음 보이는 형태이고, 1행 20정간으로 된 〈여민락〉과 〈보허자〉도 처음 나온다. 기록된 위치로 봤을 때 관보로 추정되는 《영산회상》은 1행 20정간으로 되어 있는데 1행 20정간으로 된 《영산회상》은 『대악후보(大樂後譜)』에서도 보인다. ⑦ 권6 신편 현금ㆍ가야금ㆍ비파의 연주법인 ‘각현격도지법(各絃擊挑之法)’이 부기된 《종묘제례악》과 《경모궁제례악》, 〈낙양춘(洛陽春)〉과 〈만(慢)〉5장이 실려 있다.
《종묘제례악》은 〈희문〉ㆍ〈기명〉ㆍ〈귀인〉ㆍ〈형가〉ㆍ〈집녕〉ㆍ〈융화〉ㆍ〈현미〉ㆍ〈용광정명〉ㆍ〈대유〉ㆍ〈역성〉ㆍ〈진찬〉ㆍ〈소무〉ㆍ〈독경〉ㆍ〈탁정〉ㆍ〈선위〉ㆍ〈신정〉ㆍ〈분웅〉ㆍ〈순응〉ㆍ〈총유〉ㆍ〈정세〉ㆍ〈혁정〉ㆍ〈영관〉으로 구성된다. 《경모궁제례악》은 〈어휴곡〉ㆍ〈진색곡〉ㆍ〈유길곡〉ㆍ〈혁우곡〉ㆍ〈독경곡〉ㆍ〈휴운곡〉ㆍ〈휘유곡〉만으로 구성된다. 권6 신편의 악곡은 이미 앞에 수록된 바 있지만 여기에 기록된 음악은 모두 그 전통적 시가를 잃어버린 것으로 1음1박의 리듬을 갖는다. ⑧ 권7 신편 방향보로 된 〈영(令)〉5장과 〈방향 보허자〉가 실려 있다. 방향보로 된 〈영〉은 〈여민락령〉이다. 권7 신편의 악곡도 모두 1음1박의 현전 악곡과 거의 동일한 리듬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상 『속악원보』는 특유의 불규칙한 리듬을 18세기까지 간직하고 있던 《종묘제례악》의 변화된 모습을 처음 보여 주며 1음 1박으로 변한 궁중음악의 변화의 근거를 제시해 주는 중요한 악보로 주목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자연스러운 변화인지 의도적인 변화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어 소개한다. 『속악원보』에 대한 일부 학설은 이 악보의 편찬이 우리 음악의 ‘1음 1박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적 작업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속악원보』 신편의 악보는 음의 길이가 표시되지 않은 『악장요람(樂章要覽)』(1809년경)의 선율을 정간보에 옮겨 적은 것으로, 모든 음의 길이가 균등하게 1박으로 고정된 형태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기 위해 『대악후보』의 4ㆍ2ㆍ4 정간보 형식을 차용해 《영산회상(靈山會相)》을 새롭게 구성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속악원보』의 지편은 이전 악보들이 사용하던 3ㆍ2ㆍ3 정간 구조와 달리 4ㆍ2ㆍ4 정간보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1음 1박화가 자연스러운 음악적 변천인지, 혹은 의도적 개정인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역사적 변천 악보의 편찬과 중수는 궁중 음악을 관장하던 장악원(掌樂院)에서 주도하였으며, 조선 후기 궁중음악의 체계를 정비하고 전통 악곡의 변화를 정리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음악 편찬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원본은 국립국악원에 소장되어 있다. 영인본은 1983년 국립국악원에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11집으로 간행되었다.
『속악원보』는 『대악후보』와 현행 한국 전통음악을 연결하는중요한 악보로, 조선 후기 궁중음악의 변화와 정착 과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이 악보에는 정조 즉위년(1776)의 《경모궁제례악》부터, 정조 10년(1786)에 처음 연주된 《무안왕묘제악》까지 정조대의 음악 정책 아래 새로 제작된 악곡이 수록되어 있어, 당대의 음악 개혁과 의례악의 변모 양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속악원보』에는 오늘날 《종묘제례악》 편성에서 제외된 거문고ㆍ가야금ㆍ비파 등의 악보가 함께 전해져, 18세기 이후 궁중 음악의 실제 편성 및 연주 관행을 복원하는 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현재 『속악원보』의 영인본은 국립국악원 홈페이지 ‘연구/자료-학술연구-영인ㆍ번역’ 섹션에서 원문 DB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대악후보(大樂後譜)』 『세종실록악보(世宗實錄樂譜)』 『속악원보(俗樂源譜)』 『악장요람(樂章要覽)』
강명관 외, 『역주 고악보』 2, 민속원, 2021. 김영운, 「낭옹신보 소재 평조삭대엽 및 평조계면조 삭대엽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5. 이혜구, 「현존 거문고보의 연대고」, 『국악원논문집』 1, 국립국악원, 1989; 「현존 거문고보의 연대고」, 『한국음악논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5 재수록. 장사훈, 「7. 낭옹신보(浪翁新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14, 국립국악원, 1989. 최선아, 「조선후기 금론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조선후기 금론연구』, 민속원, 2017 재수록.
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