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 전국의 재인(才人)들이 호조에 올린 공문서.
『팔도재인등등장』은 1827년 전국의 재인들이 호조에 올린 공문서로, 청나라 사신 영접을 위한 인장과 시행 세칙의 운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작성된 연명 호소문이다. 조선달, 송흥록 등 판소리 명창 40여 명의 실명이 등장하며, 재인청의 전국 조직과 산대극 참여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서는 1824년 갑신완문과 함께 19세기 중엽 판소리사와 재인 활동을 증명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성성악연구회에 ‘팔폭’이라는 이름으로 소장되었으며, 이혜구에 의해 학계에 소개되었다.
『팔도재인등등장(八道才人等等狀)』은 1827년 팔도의 재인들이 호조에 올린 연명 호소문으로, 청나라 사신 영접을 위한 인장과 시행 세칙의 운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작성된 문서이다. 이 문서는 1824년 갑신년에 호조가 발급한 ‘갑신완문(甲申完文)’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완문’은 조선 시대 관청에서 특정 사실이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발급하던 공식 문서이다. 갑신완문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 사신이 올 때 산대극(山臺劇)을 거행하기 위해 전국에 설치된 재인청(才人廳)을 통합하고, 각 도의 책임자들이 한양에 모여 행방회(行房會)를 열어 조직을 재편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문서의 실물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성악연구회가 있던 한옥 대청 선반 위 상자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경성방송국 PD였던 만당 이혜구는 명창들이 매월 삭망에 그 상자를 향해 절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몰래 문서를 꺼내 사진을 찍은 뒤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이후 한국 전쟁 중 원본은 장서와 함께 소실되었고, 이혜구가 촬영한 사진만 김삼불을 통해 간신히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김종철의 연구에 따르면 이 문서는 가람 이병기 선생이 소장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가람은 김삼불의 지도 교수이기도 했다. 이러한 전승 경위는 문서의 사료적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며, 판소리사 연구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진은 김종철의 논문 “19세기 충청도 광대 도중(都中)의 존재와 그 권익 활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서지사항
문서명: 『팔도재인등등장(八道才人等等狀)』
문서 유형: 낱장 공문서. 여러 명이 이름을 연명하여 관청에 올리는 호소문 형식의 ‘등등장(等等狀)’에 해당함.
작성 시기: 1827년(정해년)
작성 주체: 팔도 재인 40여 명
문서 체제: 연명 형식으로 작성되었으며, 말미에 참여자들의 실명이 기재됨
소장처 : 미상
○ 내용
팔도재인등등장의 내용은 크게 작성 배경, 사건의 개요, 재인들의 대응, 참여자 순으로 나눌 수 있다.
작성 배경은 1824년(갑신년) 호조가 청나라 사신 영접을 위한 산대극을 준비하며 전국의 재인청을 통합하고, 인장 및 시행 세칙을 제정한 데서 비롯된다. 이후 세칙을 따르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갈등이 생겼고, 공주의 공인 박응선, 최성윤, 박영대, 박응철 등이 청양의 소임 송일문에게 통문을 보내 그가 보관하던 인장을 무단으로 빼앗아 사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팔도의 재인들은 뜻을 모아 호조에 소장(所志)을 제출하며 세 가지 요구를 제시하였다. 첫째는 사람을 속이고 물건을 빼앗은 죄를 엄벌할 것, 둘째는 인장을 본청에 올려 보내 돌려받게 할 것, 셋째는 향후 시행할 구체적인 내용을 먼저 보고하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문서 말미에는 조선달, 송흥록, 고수관 등 판소리 명창을 포함한 40여 명의 재인이 이름을 연명하여 참여하였다. 참여자 명단에는 조선달, 최계광, 조판길, 고소득, 염계달, 송흥록, 김계철, 성대욱, 고원득, 이성록, 한종욱, 임○○, 김난득, 손작춘, 정사벽, 하복득, 임춘학, 조봉국, 고수관, 방칠룡, 홍원득, 공성주, 방한종, 방응국, 정윤대, 이현이, 이흥록, 박순엽, 유관득, 최영담, 황만빈, 하종문, 김판종, 염수량, 우대, 전치달, 박득관, 문신원, 조덕순, 조덕황 등이 포함되어 있다.
팔도재인등등장은 조선 후기 재인들의 조직적 권익 활동을 보여주는 희귀한 사료로, 판소리 명창들의 실명이 기록되어 있기에 인적 계보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실물은 한국 전쟁 중 소실되었으나, 만당 이혜구가 일제 강점기 조선성악연구회에서 몰래 촬영한 사진을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 사진은 김삼불을 거쳐 학계에 전달되었고, 가람 이병기의 소장품이었다는 증언도 남아 있다. 문서의 전승 과정은 구술과 기록, 사진을 통해 이어졌으며, 판소리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혜구, 「송만재 관우희」, 『보정 한국음악연구』, 민속원, 1996.
김인숙, 「만당의 판소리 담론」, 『한국음악사학보』 55, 2015.
김종철, 「19세기 충청도 광대 도중(都中)」의 존재와 그 권익활동」, 『판소리연구』 36, 2015.
이용식(李庸植),송혜진(宋惠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