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률랑은 궁중 의례의 진행에 따라 주악의 시작과 정지를 신호하고 의례 음악 전반을 관장하던 책임 관원이다. 주로 장악원의 정3품 이하 당하관(堂下官)이 맡았으나, 의례의 성격에 따라 무신(武臣)이나 궁녀가 대행하기도 했다. 신호 도구로는 휘가 기본이었으나, 밤에는 조촉(照燭)을, 상황에 따라 금고기(金鼓旗)와 같은 깃발을 활용하였다. 주악이 수반된 의례 절차에서 예와 악의 조화를 돕는 직분으로서 의의가 있다.

○ 신분 및 위상
협률랑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악인 중 가장 높은 직급인 전악과 협업하며 장악원의 원활한 운영을 도왔다 주로 장악원의 정(정3품), 첨정(종4품), 주부(종6품) 등이 이 역할을 수행했는데, 모두 정책 결정에 참여하지 않는 실무자급 당하관이었다. 이는 협률랑의 위상이 높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다만 의례의 성격에 따라 예외도 있었다.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당시 화성 행차에서는 계라선전관이, 무신 제사인 관왕묘제례에서는 무신겸선전관이 대행했다. 또한 궁중 내부 연회(내연)에서는 여집사, 즉 궁녀가 이 일을 맡기도 했다.
○ 역할
협률랑은 제례나 연향 같은 궁중 의례에서 음악의 시작과 정지를 조절하는 역할을 맡았다. 의례진행에서 집사가 홀기에 따라 ‘드오’라고 외치면 협률랑은 지시에 따라 휘를 들어 올리고집사가 ‘지오’라고 외치면 지시에 따라 휘를 눕힌다. 이것을 한자로 드는 것은 ‘거휘(擧麾)’, 눕히는 것은 ‘언휘(偃麾)’라고 한다. 의례가 밤중에 진행될 때는 휘 대신 조촉(횃불)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협률랑을 다른 이름으로 '거휘차비'나 '조촉차비'라고도 한다. 협률랑은 의례 주악에서의 신호 역할 외에도, 행사를 대비한 예행 연습(습악)이나 악대 배치, 연주 속도 조절, 악곡의 누락여부 등을 살피는 일을 맡고 있었다.
○ 역사적 변천
협률랑의 소속과 품계는 시대에 따라 변했다. 고려시대에는 태상시(太常寺)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 초기에는 봉상시(奉常寺) 소속의 정7품 관직이었다. 이후 세조 대에 잠시 전악이 그 직무를 대행하기도 했으나, 성종 대에 이르러 장악원(掌樂院) 관원이 맡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이는 협률랑의 임무가 단순한 신호를 넘어, 의례 절차와 음악을 동시에 파악하는 전문성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고려사(高麗史)』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의(五禮儀)」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악학궤범(樂學軌範)』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종묘의궤(宗廟儀軌)』
『춘관통고(春官通考)』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進饌儀軌)』
이정희(李丁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