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3년의 인조반정에 이어 1624년(인조 2)에 일어난 이괄(李适)의 난을 겪은 후에 제기, 악기 등 궁중 의례에 쓰이는 많은 물건들이 유실되거나 손상되었다. 이에 따라 같은 해인 1624년(인조 2)에 이들을 새롭게 만들기 위한 임시 기구인 제기악기도감을 두어 손실된 악기를 복구, 제작하였고, 제기악기도감의궤에 그 과정의 전모를 기록했다. 제기악기도감의궤는 계사(啓辭)ㆍ좌목(座目)ㆍ감결(甘結)ㆍ일방(一房)ㆍ이방(二房)ㆍ삼방(三房)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1624년(인조 2) 4월에 제기악기도감을 설치했고, 동년 11월에 제기악기도감의궤가 완성되었다.
○ 체재 및 규격
1책 92장. 46.4cm×34.3cm
○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편찬 연대 및 편저자 사항
1624년(인조 2)에 의정부에서 편찬하였다.
○ 구성 및 내용
『제기악기도감의궤(祭器樂器都監儀軌)』의 구성은 목차 없이 크게 계사(啓辭)ㆍ좌목(座目)ㆍ감결(甘結)ㆍ일방(一房)ㆍ이방(二房)ㆍ삼방(三房)의 순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구성은 이후 제작되는 의궤와 큰 틀에서 유사하다. 목차가 없으므로 맨 앞장부터 곧바로 계사의 내용이 나온다. 『제기악기도감의궤』의 구성과 체재를 살펴보면, 계사는 1624년 3월 13일부터 11월 29일까지 날짜별로 수록하였다. 날짜별 순서로 계사를 기록하는 것은 모든 의궤가 공통된다. 계사에는 본 도감 담당관의 명단을 적은 좌목과 제기악기조성 도감사목(都監事目)이 포함되어 있다. 또 『제기악기도감의궤』는 악기만이 아닌 제기ㆍ제복ㆍ의장ㆍ의물 등 여러 품목을 제작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기 때문에 그 업무에 따라 일방ㆍ이방ㆍ삼방으로 나누어 놓았다.
-계사: 목차가 없으므로 맨 앞장부터 곧바로 계사의 내용이 나온다. 『제기악기도감의궤』의 구성과 체재를 살펴보면, 계사는 1624년 3월 13일부터 11월 29일까지 날짜별로 수록하였다. 날짜별 순서로 계사를 기록하는 것은 모든 의궤가 공통된다. 계사에는 본 도감 담당관의 명단을 적은 좌목과 제기악기조성 도감사목(都監事目)이 포함되어 있다.
- 일방: 일방의궤(一房儀軌)는 ‘일방소장(一房所掌)’이라는 제목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방’은 제기(祭器)와 주종(鑄鐘)을 담당하였다. 영조 대 이후 의궤에서 ‘일방소장’이라는 의미는 일방에서 담당한 물품의 목록을 의미하지만, 『제기악기도감의궤』에서는 ‘일방의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방소장’의 구성은 감결(甘結), 품목(稟目), 수본(手本)을 내용에 따라 섞어 놓는 방식이고 이어 별단(別單)에 장소별로 제작하는 물품의 목록을 ‘신조질(新造秩)’과 ‘수보질(修補秩)’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사직(社稷) 상의 신조질에는 주로 제기와 나무로 만든 가자(架子), 상(床), 안판(案板) 등의 별단이, 영녕전(永寧殿)과 종묘(宗廟)의 신조질에는 종묘와 영녕전에서 쓰이는 제기, 가자(架子) 등의 별단이, 사직의 신조질에도 제기 별단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여기에는 사직제(社稷祭)에서 쓰일 편종 제작의 별단이 ‘주종질(鑄鐘秩)’이라는 제목으로 별도로 기록되어 있고, 편종의 음높이에 따라 필요한 각각의 종의 숫자를 밝히고 각 종의 무게까지 적는 방식으로 기록하였다. 종이 필요한 갯수와 종의 제작에 들어간 금속의 양을 기록하여 각각의 음높이에 해당하는 종이 어느 정도 무게인지 알 수 없는 이후의 의궤 기록 방식과는 달리, 종의 무게 각각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는 실용적인 기록 방식이라 할 만하다. 또 제기 또는 악기를 제작할 때 소용된 물품을 기록하는 경우 실입(實入)과 환하(還下), 즉 실제 들어간 것과 쓰고 다시 돌려준 것의 목록을 한꺼번에 볼 수 있게 적어 놓았다는 점도 이후 의궤와 다르다. 영조 대 이후의 의궤는 실입질(實入秩)과 환하질(還下秩)을 별도의 항목으로 기록하는 사례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방: 이방의궤(二房儀軌)는 ‘이방소장(二房所掌)’이라는 제목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방은 제복과 의장의 제작을 담당하였는데 감결(甘結)을 주로 기록하였고 별단(別單)에는 이방에서 제작한 물품에 대해 그것이 쓰이는 장소별로 각각 나눈 후 그 목록을 신조질과 수보질(修補秩)로 구분하여 적었다. 소용 장소별 구분은 영녕전과 종묘 상(上)의 신조질, 남별전(南別殿)의 수보질과 신조용입질(新造容入秩) 등으로 기록했는데, 이방 역시 실입과 환하(還下)를 같이 기록하였다. 삼방의궤(三房儀軌)는 ‘삼방소장(三房所掌)’이라는 제목으로 기록하였다.
- 삼방: 삼방은 악기와 궁중정재(宮中呈才)용 의물(儀物) 제작을 주로 담당했는데, 계사가 먼저 나오고 소용 목적별 악기와 의물의 내용을 구분하여 적었다. 계사에 이어 별단(別單)이 나오는데, 진풍정시소용(進豊呈時所用) 신조질(新造秩), 영녕전과 종묘 상(上), 전정헌가(殿庭軒架), 영녕전(永寧殿)‧종묘잉수보질(宗廟仍修補秩), 제단악기잉수보질(諸壇樂器仍修補秩), 풍물유역질(風物貿易秩), 종묘양전(宗廟兩殿) 상(上), 장악원(掌樂院) 상(上) 등의 방식으로 구분하여 기록한 후 뒷부분에 담당 관원의 명단과 장인(匠人)의 종류와 명단을 적었고 가장 끝에는 삼방소장 물품을 도설(圖說)로 제시하였다.
○ 역사적 변천
제기악기도감은 1623년의 인조반정 때 광해군에 의해 취해진 폐모(廢母) 조처로 인해 오랜 기간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던 인목대비를 위한 잔치인 풍정(豊呈)에서 쓰일 악기를 만들기 위한 것과 더불어 종묘제례와 사직제례를 위한 제기와 악기를 제작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기구이다. 『제기악기도감의궤』의 계사에 의하면 1624년 3월 13일 상의원 관원이 “장악원에 올린 각양 풍물(風物)과 여러 기구들이 적난(賊難), 즉 이괄의 난을 만나 백성들이 훔쳐 가고 없어져 남은 것이 없고 미비하니 중국의 조사(詔使)들이 왔을 때 베풀 연향을 위한 풍물은 장악원에 별도로 악기청을 설치해서 만들어야 한다”라는 계사를 올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624년 4월 23일 도감의 일을 담당할 담당자들이 정해졌고, 4월 25일 도감사목(都監事目: 주요업무)이 정해졌다. 11월 20일 도감의궤의 분상에 대한 내용이 있고, 11월 29일 도감의궤의 표지, 장정 등에 대한 감결이 있다.
『제기악기도감의궤』는 여타의 『악기조성청의궤』와는 다르게 도설(圖說)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도설은 각 방(房)의 말미에 각방소장(各房所掌)을 한꺼번에 묶어 기록해 놓았다. 도설이 포함된 이유는 『제기악기도감의궤』가 전란을 치른 즈음에 제작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란으로 인해 제기, 또는 악기, 의물, 의장 등이 손실되고 피폐해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새롭게 제작해야 했으므로 제작한 물품을 일일이 도설로 기록해 남겨 둠으로써 시각적으로도 그 내용을 갖추어 기록하고자 하는 태도가 반영된 것이다.
『제기악기도감의궤(祭器樂器都監儀軌)』
송지원(宋芝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