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에 유교 예악론에 바탕으로 『악학궤범』을 저술한 성현(成俔 1439~1504)이 「장악원제명기(掌樂院題名記)」에서 장악원의 내력을 기록했다. 그중 “사람이 음악을 몰라서는 아니 되니…그러므로 선왕(先王)이 음악의 방법을 세우며…이에 구요(謳謠)와 가영(歌詠)으로서 내고, 종고(鐘鼓)와 관약(管籥)으로서 붙이며, 성곡(聲曲)과 음률(音律)로서 바로잡고, 질서(疾舒)와 철조(綴兆)로서 조절하여, 조정(朝廷)에 쓰면 상하가 모두 즐겨하고,교묘(郊廟)에 쓰면 귀신이 감응하고, 규문(閨門)이나 향당(鄕黨)에 쓰면 모두를 즐기고 분발하여, 문명(文明)을 고무하고 풍속을 옮길 것이다.(人不可不知樂也. … 是故先王立樂之方 … 於是謳謠歌詠以發之, 鍾鼓管籥以寓之, 聲曲音律以正之, 疾舒綴兆以節之, 用之朝廷則上下懌, 用之郊廟則鬼神感, 用之閨門用之鄕黨, 悉皆姁婾奮揚, 鼓舞文明而轉移風俗.)”라고 했다. 조선의 악정(樂政)을 바로 세우면서 노래와 악기와 음률과 질서(疾舒)와 철조(綴兆)를 바르게 행하면 왕실과 민간 모두에 문명을 높이는 풍속이 퍼질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질서는 춤을 빠르게 또는 느리게 추는 방식이며, 철조는 춤의 대형과 행렬을 말한 것으로, 질서철조는 춤 전반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조선 중기 문신이며 학자였던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에서 교육을 논하며 “철조와 서질의 무늬 … 서(舒)는 느림[徐]과 같으며, 질(疾)은 빠름[速]과 같다.[綴兆舒疾之文 … 舒猶徐也, 疾猶速也]”라고 했다. 서는 느리게, 질은 빠르게 동작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조선 후기에 문예를 부흥시킨 정조(正祖, 1776~1800)는 ‘악무(樂舞)’에 대해서도 논했다. 그중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를 중히 여기고 설명하기를 “행렬(行列)에 많고 적음이 있고, 대열에 길고 짧음이 있고, 변화하는 모양에 흩어짐과 합함이 있고, 진퇴에 빠르고 느림이 있으며, 빙빙 돌고 꺾어 움직이는 것이 법도에 맞는 것이 문무와 무무 두 춤의 절도(節度)이다.[至於佾列有隆殺, 綴兆有長短, 變態有離合, 進退有疾徐, 周旋中䂓, 折旋中矩, 則又二舞之節度]”라고 했다. 여기서 춤이 나아가고 물러나는 데 서질이 있다고 했으니, 이는 춤을 전개하는 방식으로서 느리고 빠르게 춤추는 서질을 말한 것이다.
또한 정조는 1800년 여름에 문신 서준보(徐俊輔, 1770 ~ 1856)와 『논어』에 대해 토론하며, “예(禮)와 악(樂)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은 성(性)과 정(情)이 본래 서로 분리되지 않는 것과 같다. … 예를 들면 제사(祭祀)와 조근(朝覲)은 예(禮)이지만, 악(樂)이 아니면 오르고 내리며 읍하고 사양하는 의식을 조화롭게 할 수 없다. 생황, 편경, 피리, 도(구슬 달린 북을 말함)는 악(樂)이지만, 예가 아니면 연주자의 행렬과 위치, 더디고 빠른 정도를 맞출 수 없다.[禮樂之不可相離, 如性情之元不相離 … 如祭祀朝覲是禮也, 而非樂則無以和其升降揖遜之儀. 笙磬管鼗是樂也, 而非禮則無以節其綴兆舒疾之容.]”라고 했다. 마지막 구절인 ‘예가 아니면 연주자의 행렬과 위치[철조], 더디고 빠른[서질] 정도를 맞출 수 없다.’에서 무원들의 철조와 서질에 규칙을 갖게 된다는 말로, 여기에서도 서질을 언급했다.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