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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기별기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권71에 전한다. 이에 따르면, 1073년(문종 27) 11월 12일에 팔관회를 차리고 왕이 신봉루(神鳳樓)에 행차하여 악무(樂舞)를 관람하였는데, 교방 여제자 초영이 새로 전래한 〈포구락〉과 <구장기별기>를 공연하였다고 한다. 〈포구락〉은 여제자 13명이, 구장기별기는 여제자 10명이 공연하였다.
〈포구락〉은 『고려사』「악지」에 관련 내용이 전하나, 구장기별기는 더 이상의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어떤 형태와 내용을 가진 정재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남송 초기 도교학자 증조(曾慥, ?~?)가 집필한 『악부아사(樂府雅詞)』에 구장기가 두 편 실려 있다. 한 편은 전곡이 아홉 곡이고 또 한 편은 열한 곡인데, 부녀자가 실을 짜는 모습을 9장까지 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현재는 전승되지 않는다.
권혜경(權惠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