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대전』에 의하면 품계에 따른 단령포의 색상으로 1품에서 정3품까지는 홍색, 종3품에서 6품까지는 청색, 7품에서 9품까지는 녹색으로 규정되어 있어 가자의 녹단령은 7~9품의 관원이 입는 녹단령의 색상을 적용했음을 알 수 있다. 녹단령은 관리의 공복(公服)인 단령에서 유래한 것으로 공적 행사인 연행에 참여하는 가자 역시 공복으로 단령포를 입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색상은 『경국대전(經國大典)』 공복 제도의 7~9품의 공복색상인 녹색을 적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연주복으로 사용된 녹단령은 『악학궤범』에 처음 보인다.
○ 용도
『악학궤범(樂學軌範)』의 관복도설(冠服圖說)에 의하면 녹주(綠紬) 단령은 가동이 예복(禮服)으로 착용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가동(歌童)은 머리에 자주두건(紫紬頭巾)을 쓰고 허리에 홍진사광다회대(紅眞絲廣多繪帶)를 매었으며 신발로 흑피화(黑皮靴)를 착용하였다. 『(기해)진연의궤』와 『(갑자)진연의궤』에는 가동의 복식으로 자적두건(紫的頭巾), 녹주의(綠紬衣), 자적대(紫的帶)의 명칭이 등장하고, 『(신축)진연의궤』에 가자의 복식은 자적두건(紫的頭巾, 녹단령(綠團領), 자적광대(紫的廣帶), 흑화(黑靴)로 구성되어 있다.

정조 때 전악은 복두를 쓰고 녹단령의에 오정대(烏鞓帶)를 띠고 흑피화(黑皮靴)를 신었으며, 순조 이후에 전악은 복두를 쓰고 녹초삼에 오정대를 띠고 흑피화를 신었다. 홍ㆍ녹주의는 문소전ㆍ연은전ㆍ소경전에서 친행ㆍ섭행한 전상악ㆍ전정악의 차비(差備) 공인들이 입었던 홍색 또는 녹색 비단으로 만든 단령포로 가슴과 등에 모란꽃을 흉배처럼 그려 넣고, 모시로 만든 꽃을 앞에 꽂은 오관(烏冠)과 함께 착용했다.

○ 형태
『악학궤범』의 가동이 착용하는 녹주단령은 깃이 둥글고[團領], 소매가 좁으며[窄袖], 겨드랑이 밑으로 무가 나와 있는 형태이다. 조선 후기 『진연의궤(進宴儀軌)』, 『진찬의궤(進饌儀軌)』에 나타난 가자의 녹단령은 소매가 넓은 광수(廣袖)이다. 이는 조선 초기 연행에서 사용되던 여러 형태의 단령 제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넓은 소매의 단령제로 일반화되는 현상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단령의 형태는 좁은 소매에서 넓은 소매로 변하였지만 자주색 두건과 자주색 또는 홍색 광다회, 흑피화의 복식구성은 조선 초기부터 국말까지 이어졌다.
○ 재질 및 재료
『악학궤범』에 가동의 단령은 녹색 명주로 만들고 그 제도는 흑단령과 같다고 되어있다. 『(을축)진작의궤』의 가동 복식 제작에 필요한 물품 목록에 단령을 위한 초록주(草綠紬)와 자적광다회대, 자적주(紫的紬) 두건 등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임진)진연의궤』에는 가자의 단령 제작에 필요한 옷감으로 초록은조사(草綠銀條紗)의 기록이 남아 있다. 단령, 두건, 광다회는 명주와 은조사 등의 무늬가 없는 비단으로 만들어져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악공이나 악사보다도 고급의 재료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 역사적 변천
가동은 조선전기부터 나타나지만, 가자는 조선후기에 나타난다. 그러나 가동과 가자는 녹주단령 혹은 녹단령과 같이 녹색의 옷을 착용하고, 자주색의 두건, 홍색 혹은 자주색의 광대(廣帶)를 착용하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만 녹단령의 형태는 조선전기에는 착수(窄袖)였지만, 조선후기에는 광수(廣袖)로 바뀌었다.
박민재(朴民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