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조선에서 아악과 속악의 악인(樂人)과 무인(舞人)이 착용한 신이다. 검은색[烏; 黑] 가죽[皮]으로 만들고, 신목 없이 발볼을 감싸는 신울만 있는 형태[履]이다. 앞에 구름무늬 장식이 있으며, 끈이 달려있다. 현재는 악무인의 오피리가 검은색 목화(木靴)로 대체되었다.
신은 신울만 있는 형태와 신울에 신목이 붙은 형태로 양분된다. 전자는 리(履)나 혜(鞋)로 통칭하고, 후자는 화(靴)로 통칭한다. 리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확인되는데, 신분에 따라 사용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리의 재료에 대한 제도를 정하고 있다. 또 백제악(百濟樂)에서 무자(舞者)가 사용한 피리(皮履)가 확인된다. 고려 예종 11년(1116) 송에서 아악을 사여하면서 보낸 악무복 중에 오피리가 있다. 『세조실록』에 처음으로 속악(종묘제례악) 연주에 악공이 오피리를 착용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국조오례의서례』에 처음으로 아부(雅部) 제례악 연주에 악생이 오피리를 착용한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 쓰임 및 용도
중국 당과 송에서는 악인과 무인이 착용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무인이 자색(紫色)의 옷과 함께 피리(皮履)를 썼다. 고려시대에 송으로부터 전해진 아악에서는 인무무(引武舞)가 비색(緋色: 붉은색)의 옷과 함께 오피리를 신었고, 일무(佾舞)의 일부 공인이 조색(皂色)의 옷과 함께 신었다. 조선시대 궁중 제례악은 아악(雅樂)이었으나, 1463년(세조 9) <보태평>과 <정대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하면서 종묘제례악은 아악이 아닌 속악으로 분류되었다. 속악인 종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과 일무를 추는 악공은 오피리에 백포말을 착용했다. 다만 종묘제례악의 악사는 흑피화를 착용했다. 아부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생과 일무 악생도 오피리에 백포말을 착용했다.
○ 형태 및 구조
『악학궤범』 오피리 도설에 의하면, 형태는 신울만 있는데 앞코에 구름 장식이 있고, 끈[纓]이 있어 발등에서 묶게 되어 있다.
○ 재질 및 재료
재료는 흑피(黑皮: 검은색 가죽)를 썼다. 1783년 『경모궁의궤』에는 좀 더 상세한 재료가 나온다. 흑마피로 신울을 만들고, 백마피ㆍ백구피(白狗皮)ㆍ자칠피(紫漆皮)를 부재료로 하며, 장피(獐皮: 노루가죽)로 끈을 하였다. 1800년대 이후의 자료에는 세부 재료가 나타나지 않고 구매할 경우의 비용이 나타난다. 따라서 1800년대 이후에는 주로 시전을 통해 구매해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 역사적 변천 오피리가 악무복에 사용된 것은 당(唐)의 제도부터 확인된다. 당하의 고인(鼓人)ㆍ고취(鼓吹)ㆍ안공(按工)이 오피를 신었고, 교제(郊祭)와 종묘 제례의 문무와 무무 공인이 오피리를 신었다. 송(宋)에서는 악정(樂正)과 인이무(引二舞: 문무와 무무)가 황제 친사(親祀)와 대조회(大朝會) 등에 착용했다. 송의 제도는 고려 예종 11년(1116) 송에서 아악을 사여했을 때 고려에 전해졌다. 당시 사여된 악무복 중 오피리는 인무무(引武舞)가 무변관(武弁冠)ㆍ비시수난삼(緋絁繡鸞衫: 붉은색 견직물에 난봉을 수놓은 큰 옷)ㆍ백견말대(白絹袜帶: 백색 견직물로 만든 말대)ㆍ동혁대(銅革帶)와 함께 착용하고, 문무와 무무에서 정(旌)과 둑(纛)을 잡는 사람이 평면관(平冕冠), 조시수난삼(早(皂)絁繡鸞衫: 검은색 견직물에 난봉을 수놓은 큰 옷), 동혁대와 함께 착용했다. 조선에서는 세종 12년~15년에 논의를 거쳐 당송의 제도를 참조해 악무복을 정비하는데, 신의 문제점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 제정된 사항에 대한 상세 기록이 없다. <보태평>과 <정대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함에 따라 종묘제례악의 악무복은 사직, 우사, 선농, 선감, 문묘에서 연주하는 아부(雅部) 제례악 악무복과 달라졌다. 그러나 종묘제례악의 악사를 제외한 제례악(일무 포함)을 연주하는 모든 악생과 악공은 오피리를 착용했다. 종묘제례악 악무복에 대해서는 세조실록에 처음 나타나고, 아부 제레악 연주복식에 대해서는 국조오례의서례에 맨 처음 나타난다. 이렇게 조선 전기에 아악과 속악(종묘제례악)의 악무복으로 제정된 오피리는 후기까지 착용되었다. 기록에서 오피리는 1898년 향수조사책(享需調査冊)까지 확인되고, 시각 자료는 1912년 이후 촬영된 사진에서 확인된다. 1935년의 『조선아악기사진첩』에서는 목화가 확인되므로, 1912~1935년 사이에 오피리에서 목화로 대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피리는 아악과 속악의 악무복으로 사용된 복식 중 비교적 보수적 성향을 보인 특징이 나타난다. 고려와 조선에서 제정 및 사용된 역사가 길고, 조선 후기에 다른 악무복의 품목이 변화를 보일때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근대에 목화로 바뀐 시기도 비교적 늦다는 특징이 있다.
『고려사』 『고금도서집성』 『세종실록』 『세조실록』 『국조오례의』
고유정, 「조선시대 궁중악인 복식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정영란, 「受爵儀軌에 나타난 儀禮와 服飾 연구-佾舞服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최연우(崔然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