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는 화(靴)의 일종이기도 하고, 화(靴)의 별칭이기도 하다. 화는 발볼을 덮는 신울 위쪽에 발목과 종아리를 감싸는 신목이 있는 형태의 신이다. 신목이 세워져 있는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발목 부분의 안쪽에 나무를 덧대어 ‘목화’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근현대 이후로는 대체로 ‘목화’로 용어가 통일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악무복의 화가 확인되고, 조선시대 이래 아악과 속악의 악무복과 가자(歌者), 무동(舞童)의 복식에서 흑화, 흑피화, 오화 등으로 확인된다. 20세기 초반인 1920년대 이후에는 아악과 속악의 악인과 무인(舞人)이 오피리(烏皮履)를 대체해 착용하였다.
유래
화(靴)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 일반 관원들의 관복(官服), 악공인과 무인(舞人)의 복식에서부터 확인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관원들은 관(冠), 포(袍), 대(帶), 화(靴)를 갖췄으므로, 품급이 낮은 관원인 악인(樂人)도 같은 차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목화’라는 명칭이 나타나지 않고 ‘화’라고만 했다. ‘목화’ 명칭은 근현대 이후 확인되고, 이 경우 대체로 ‘화’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악무복으로는 조선 전기에 흑화, 흑피화의 명칭으로 규정되었다. 즉 세조 때 전악(典樂)의 흑화(黑靴)가 정해졌고, 성종 때 7품 관원의 공복(公服)과 속악 악사 복식에서 흑피화가 정해졌다.
조선 후기에는 악사ㆍ악공ㆍ가자[가동] 복식에 목화가 계속 착용되었다. 전기에 확인되지 않았던 악공의 화는 1615년 『공성왕후부묘도감의궤』 <반차도>에서 확인된다. 이후 말기까지 다양한 자료에서 악공의 화가 확인되지만, 순조 9년(1809)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악공 도상에서는 예외적으로 백색 리(履)가 확인되기도 한다. 이 외, 숙종 36년(1710) <숭정전진연도>의 악공과 가자, 숙종 46년(1720) <경현당사연도>의 가동, 같은 해 <어첩봉안도>의 고취 도상에서 화 착용이 확인된다.
연향의궤에서는 순조 28년(1828) 무자진작부터 광무 6년(1902) 임인진연까지 악사와 악공의 화 도식이 나타나는데, 신분과 시기에 따른 형태적 차이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순조 29년(1829) 기축진찬, 고종 29년(1892) 임진진찬, 광무 6년(1902) 임인진연에는 가자의 화 도식이 있고, 이 역시 형태는 큰 차이가 없다. 명칭은 모두 ‘흑피화’나 ‘흑화’로 나타나지만, 순조 28년 『(무자)진작의궤』의 악공복에서는 ‘오화’라 하였다. 한편, 『(무자)진작의궤』는 효명세자 주관으로 모후인 순조비 순원왕후의 4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2월에 국가적 차원에서 거행된 자경전 진작례와 생일을 맞아 6월에 거행된 연경당 진작례 두 건의 연향이 기록되어 있는데, 자경전 진작례 때의 전악ㆍ악공ㆍ각 차비의 신은 ‘흑피화’ 도설이 그려져 있고 연경당 진작례 때의 전악ㆍ악공ㆍ무동의 신은 ‘오화’ 도설이 그려져 있다. 그 흑피화는 신울 양쪽이 총 여섯 조각으로 된 육합화(六合靴)의 형태이고, 오화는 양쪽이 총 두 조각으로 된 단순한 이합화(離合靴)의 형태이다. 따라서 흑피화와 오화는 모두 목화의 일종이지만, 후기 연향례의 악무복에서 형태가 구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국가 의례로 거행된 자경전 진작례에 좀 더 정교한 구조로 이루어진 ‘흑피화’를 착용하고, 사(私)적인 의미의 왕실 의례로 거행된 연경당 진작례에 단순한 구조의 ‘오화’를 착용한 것을 근거로 보면, 흑피화가 등급이 높고 오화가 그보다 등급이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례의 아악의 전체 악무복과 속악의 일부 악무복에서 오피리(烏皮履)로 규정되었던 신은 1920년대 이후 모두 목화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교적 예(禮)의 실행에서 악무와 복식은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예의 구현을 위해 유가에서 고례(古禮)에 기본으로 정한 신은 신울만 있는 리(履)의 형태였다. 그러므로 특히 제례악에서 목화가 아닌 오피리를 규정했다. 화는 북방 유목민족으로부터 유입되었기 때문에 본래 유교적 의례의 예복에 포함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 여겼던 듯하다. 그런데 의례 거행을 위해 오랫동안 실외에 있을 때 온도ㆍ습기ㆍ착용감 등을 고려하면 리보다 화가 더 적합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오래전부터 악무복에 도입되었고 근대에는 오피리마저 모두 목화로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대인들이 유념한 ‘예의 구현’을 생각하면 화의 사용은 적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착용 편의’를 위한 선택이라 이해할 수 있다.
고문헌
『삼국사기』
『고려사』
『세조실록』
『국조오례의』
『경국대전』
『악학궤범』
참고문헌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靴․鞋․履』, 2004.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전통 신의 모양새와 짜임새』, 2020.
정영란, 「『受爵儀軌』에 나타난 儀禮와 服飾 연구-佾舞服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집필자
최연우(崔然宇)
검색태그
국악사전의 모든 원고는 공공누리 제2유형입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외에는 출처 표기 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국악사전의 모든 복합매체자료(사진・도판・음원・영상)은 공공누리 제4유형입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외에는 출처 표기 후 사용할 수 있으나,
내용을 변형하거나 재가공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