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령이 단오절을 맞아 방자에게 나들이를 가자고 명하는 대목이다. 중국의 역대 문장가들이 명승지에 머물 듯 이도령 자신도 문장가이므로 중국의 산과 강을 언급한 후, 방자에게 이와 같은 곳에 나들이차 나가자며 재촉하는 장면이다.
앞서 방자가 “공부하시는 도련님이 승지를 찾아 뭐하려고 하느냐”며 힐난하자 이에 대한 대답 형식으로 부른 노래이다. 소부와 허유는 중국 고사에서 유래된 인물이다. 왕좌를 제의받고도 나랏일에 뜻이 없어 귀를 씻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그들이 귀를 씻었다는 물이 영수(潁水)이며, 산으로 들어간 곳이 기산(箕山)인데, 오늘날 중국 호남성에 위치한다. 이 대목은 ‘기산영수’라는 노랫말로 시작하기에 이름붙여진 것이다.
○ 역사적 변천과정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본춘향가』(1754)에는 이 대목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한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남창춘향가』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날 전승되는 판소리 중에서 김연수(金演洙, 1907~1974), 김세종(金世宗, 1830~?), 김소희(金素姬, 1917~1995)제 창본에 이 대목이 포함되어 있다. 판본에 따라 기산영수가 등장하는 순서나 장단에도 다소 차이가 있다. 춘향가 판본이 전승되는 작품 중 출생시기가 가장 이른 김세종이 활발하게 활동했을 시기는 약 19세기 중반이므로 대략 그 이후에 나타났을 것으로 보인다. ○ 음악적 특징 기산영수 대목은 극적인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은 평조로 표현하지만, 특정 음보의 끝을 끌어올리거나 종지음을 짧게 처리해 우조적인 성격도 나타내고 있으므로 평우조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연행되는 춘향가 중 성우향 명창의 바디를 제외한 대부분의 창자가 중중모리장단으로 노래하고 있다. ○ 형식과 구성 말을 놓아가는 형식은 3음절을 기본 한 묶음으로 하되, 한 박에 한 글자씩 놓아가는 방식이다. 즉, 다음과 같이 대마디대장단 위주의 말붙임새를 볼 수 있다. /기 사 ㄴ/영 – 수/별 – 건/곤 - - / /소 – 부/허 – 유/놀 - -/고 - - / /적 – 벽/가 – ㅇ/추 야 -/월 의 -/ /소 자 -/첨 – 도/놀 - -/고 - - /
중국 고사에 유래된 소부(巢父)와 허유(許由)의 고사(古事)를 비롯해 다양한 문장가들과 그들의 일화를 언급하고 있다. (중중모리) 기산영수(箕山潁水) 별건곤(別乾坤), 소부(巢父) 허유(許由) 놀고 적벽강1 추야월(秋夜月)2의 소자첨3도 놀고 채석강(採石江)4 명월야(明月夜)의 이적선5이도 놀았고 시상6오류촌7의 도연명이가 놀았으니 내 또한 호협사(豪俠士)8로 동원도리 편시춘9 낸들 어이 허송(虛送)10할거나 잔말 말고 일러라
1) 적벽부(赤壁賦)는 송(宋)의 소식(蘇軾)이 지은 시인데, 그 배경을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강(赤壁江)을 회상하며 썼다.
2) 소동파는 가을밤 적벽강에서 적벽부를 지었다 한다.
3) 소식(蘇軾, 1036~1101)의 자(字)는 자첨(子瞻)이며, 호는 동파(東坡)이다.
4)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李白, 701~762)이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할 때, 강물에 뜬 달 그림자를 보고 잡으려다 빠져 죽은 곳.
5) 당나라의 고관인 하지장이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이백에게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天上謫仙人)”이라 칭한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에 성(姓)을 붙여 이적선(李謫仙)으로 부른다.
6) 시상리(柴桑里)는 중국 강서성에 있는 도연명의 출생지이다.
7) 오류촌(五柳村)은 진나라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살던 곳이다.
8) 호걸스럽고 의협심이 있는 선비.
9) 당나라 왕발(王勃, 650~676)의 시 “임고대(臨高臺)”에 나오는 한 구절로, 동쪽 정원에 핀 복숭아 꽃(東園桃李)은 잠깐이면 지나간다(片時春)는 내용을 담고 있음.
10) 헛되이 보냄.
※ 가사는 김소희 창 《춘향가》 중 기산영수(브리태니커)에서 인용.
판소리 《춘향가》에서 시대 배경과 인물 소개에 이어 노래(창)로서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가 시작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상서로운 인물과 전설적인 문장가의 등장은 이도령의 품위와 신비로움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정정렬제에는 이 대목이 생략되어 있다. 김연수제 창본에는 〈성춘향과 이도령의 내력〉 및 〈이도령과 방자가 남원경치 문답하는데〉에 이어 세 번째 노래로서 등장하지만, 김세종제 및 김소희제에서는 첫 번째 노래이다. 노래의 길이는 짧지만 이 행차의 결심으로 인하여 춘향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극(劇)의 발단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김소희, 『판소리 다섯 마당: 춘향가』, 한국브리태니커, 1982. 최동현. 「명창 김세종의 생애와 판소리이론」, 『한국언어문학』 86, 한국언어문학회, 2013.
김유석(金裕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