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중건이나 경복궁 관련 사설을 주제로 한 경기민요.
경복궁타령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에 의해 가창되던 향토민요를 전문음악인들이 세련되게 다듬어 통속화시킨 경기민요이다. 이 곡은 ‘라(la)-도′(do′)-레′(re′)-미′(mi′)-솔′(sol′)’의 5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계의 최저음인 ‘라(la)’로 끝을 맺는 반경토리(베틀가조)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볶는타령이나 빠른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연주한다.
<경복궁타령>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경기잡가 및 선소리산타령의 보유자였던 이창배는 1976년 집필한 한국가창대계에서 <경복궁타령>은 ‘경복궁 중건 때 생긴 노래’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위해 많은 백성을 동원하여 노역하게 해서 그들의 원망이 당연히 발생하였고, 이것이 반영된 비판적인 노랫말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경복궁타령>은 서울・경기 지역의 음악 어법을 그대로 담고 있어, 노래 자체가 매우 밝고 경쾌하며 힘차므로 경복궁 중건을 위해 동원된 백성들의 괴로움이나 노동의 고단함을 표현하는 노래로 적합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경복궁타령>의 유래와 관련하여 여러 의견이 있지만, 어느 하나의 견해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 역사적 변천과 전승
<경복궁타령>은 경복궁 중건 당시, 고된 작업의 힘듦을 잊기 위하여 부르던 노동요이었다. 이 당시에는 부르는 창자에 따라 즉흥적인 가사를 붙여 불렀으며, 선율 또한 창자마다 차이를 지니고 있었다. 초기에는 경복궁 중건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과 노동의 애환 등을 가사에 반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불리면서 시대 상황에 맞는 새로운 가사가 추가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전문 음악인에 의해 불리면서 가사나 선율에 변화를 불러왔다. 전문 소리꾼들의 무대 공연 레퍼토리로 채택되면서 노동요에서 감상용의 음악으로 그 기능이 변화되었고, 예술적인 형태로 다듬어졌다. 20세기 초 이후에는 전문 음악인들이 유성기음반에 녹음하거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부르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형태로 편곡되거나 재해석되어 불리기도 하며, 학교나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기관 등의 교육자료로 활용되면서 전승되고 있다.
○ 연행 시기 및 장소
<경복궁타령>은 특정 시기나 장소에 국한되어 연행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역사적 변천 과정을 고려할 때, 초기인 경복궁 중건 시기에는 경복궁 공사 현장에서 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복궁 중건 이후에도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불렸을 것으로 보이며, 이때는 마을 행사라든가 민중들의 생활 공간 등 다양한 장소에서 연행되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가사가 추가되기도 하고, 전문 음악인들의 레퍼토리로 채택되면서 공연 무대로 그 연행 공간이 옮겨지기도 하였다. 현재는 축제나 행사 등 다양한 무대에서 공연되며,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민요로 자리 잡았다.
○ 음악적 특징
<경복궁타령>은 ‘라(la)-도′(do′)-레′(re′)-미′(mi′)-솔′(sol′)’의 5음음계이며, 음계의 최저음인 ‘라(la)’로 종지한다. 따라서 노래는 하행 선율로 끝을 맺으며, 다섯 음 중 특정한 음을 떠는 현상이 적고, 대부분의 선율은 순차 진행한다. 이 곡은 경기도의 〈창부타령〉이나 〈노랫가락〉ㆍ〈도라지타령〉과 달리 ‘라(la)’가 주음 즉 종지음이므로, 반경토리(베틀가조)에 해당한다. 박자 구조는 3분박 4박으로 되어 있으며, 장단은 빠른 자진모리나 볶는 타령을 친다. 본절 4장단을 부르면 4장단의 후렴이 붙는 유절형식인데, 본절과 후렴을 시작하면서 “에~”하는 입타령이 붙는다. 특히 후렴부분에서는 한 박()을 3소박(♪♪♪)으로 나누는 기본형에서 두 박()을 2소박(♩♩♩)으로 나누는 헤미올라의 리듬형을 자주 사용하며, 활달한 느낌을 준다.
○ 형식과 구성 <경복궁타령>은 메기고 받는 선후창의 가창 방식을 지닌 유절형식의 노래다. 본절의 가사를 부르기에 앞서 ‘에~’ 라는 음절을 두 장단에 걸쳐 높은 음으로 질러서 낸 이후에 본절에 해당하는 가사를 네 장단에 얹어 부른다. 받는소리인 후렴 역시 시작 부분에 본절과 마찬가지로 ‘에 ~’ 라는 음절을 두 장단 질러 부른 이후에 가사를 붙이는데, 가사는 세 장단의 길이로 이루어져 있다.
<경복궁타령>의 노랫말은 경복궁을 짓는 일이나 경복궁과 관련된 여러 가지가 있다. 현재의 노랫말 역시 경복궁과 관련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유성기 음반 중 1929년에 발매된, 지용구(池龍九, 1857~1938) 장구 반주에 맞춰 박춘재(朴春載, 1883~1950)와 문영수(文永洙, 1867~1930)가 노래한 경복궁타령은 경복궁 재건과 관련된 내용과, 신문물과 관련한 시대의 세태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외 다른 음반들은 청중들을 위한 감상용 음악으로 만들어져 연주되는 것으로,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내용도 상당수 있다. 현재 부르는 <경복궁타령>의 노랫말은 이창배가 엮은 한국가창대계에 의하면 경복궁 중건 때의 상황이나 경복궁과 관련된 여러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Victor49049-B 경기민요 길진홍(독창), 박춘재(장고)
(후렴) 에-에헤헤헤 에헤야 얼널널널이구 방애로구나 (에) 1. 간다네 간다네 네가 도라간다 ᄯᅥᄭᅥᆯ거리구 내가 도라간다 2. 졍들엇다 네가 통졍마라 리별이 되며는 후회 막급이라 3. 인생한번 도라가면 다시난 오기가 만무로다 4. 인생이 일장춘몽이라 아니나 노지는 못하리라 5. 하날가치 놉흔봉에 아니나 노지는 못하리로다 6. 정들엇다 네가 통졍마라 리별이 되며는 후회 막급이라 7. 동창밧게 국화를 심어 국화밋헤다 술을 비저 8. 졍들엇다 네가 통졍마라 리별이 되며는 후회 막급이라
이창배, 『한국가창대계』, 홍인문화사, 1976. 807쪽.
(후렴) 에 - 에헤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1. 남문(南門)을 열고 파루(罷漏)를 치니 계명산천(鷄鳴山川)이 밝아 온다 2. 을축사월(乙丑四月) 갑자일(甲子日)에 경복궁을 이룩하세 3. 도편수의 거동을 봐라 먹통을 들고서 갈팡질팡한다 4. 단산봉황(丹山鳳凰)은 죽실(竹實)을 물고 벽오동(碧梧桐) 속으로 넘나든다 5. 남산(南山)하고 십이봉(十二峯)에 오작(烏鵲) 한 쌍이 훨훨 날아든다 6. 왜철쭉[倭척촉] 진달화[杜鵑花] 노간죽하니 맨드라미 봉선화가 영산홍(暎山紅)이로다 7. 우광꿍꽝 소리가 웬 소리냐. 경복궁 짓는 데 회(灰)방아 찧는 소리라 8. 조선 여덟 도(道) 유명탄 돌은 경북궁 짓는 데 주춧돌 감이로다 9. 우리나라 좋은 나무는 경복궁 중건(重建)에 다 들어간다 10. 근정전(勤政殿)을 드높게 짓고 만조백관(滿朝百官)이 조하(朝賀)를 드리네 (후략)
<경복궁타령>의 유래나 발생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경복궁을 다시 짓는 과정에서 불린 노래로, 경기도 지역의 음악 어법이 잘 나타나 있는 악곡이다. <경복궁타령> 가사 중에 ‘전차는 덜커덩 전등은 번쩍’ 등의 내용이 들어갈 때도 있는데, 이러한 구절에서 근대 문물의 등장을 통하여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이행하는 시기의 변화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이창배, 『한국가창대계』, 홍인문화사, 1976. 임정란 편저, 『경기소리대전집 (下)』, 도서출판 무송, 2001.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단 엮음, 『한국유성기음반』, 한걸음더, 2011. 이소라, 「경복궁타령 고」, 『민속학연구』 제9집, 국립민속박물관, 2001.
이윤정(李侖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