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산성(南原山城), 둥개타령(둥개打令)
20세기 초반부터 〈까투리타령〉 등과 함께 불리던 남도민요
후렴구에 나오는 ‘둥가’ 또는 ‘둥개’라는 대목을 따서 둥가타령 또는 〈둥개타령〉이라 하며, 노랫말 첫 대목을 따서 일명 〈남원산성〉이라고도 한다. 함께 분류되는 남도잡가 중에서도 비교적 후대에 삽입된 신민요 계열의 악곡이다.
둥가타령이 언제부터 불렸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1930년대에 유성기음반과 경성방송국 국악방송곡목에 관련 곡명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20세기 초반부터 남도민요의 하나로 유행되었을 것이다.
둥가타령의 연행은 일제강점기 유성기음반과 경성방송국 방송목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성기음반에는 주로 1930년대 녹음된 자료가 주를 이루고, 경성방송국 방송에서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에 〈까투리타령〉이나 〈진도아리랑〉 등과 함께 불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성기음반에는 〈남원산성〉이나 〈둔가타령〉, 둥가타령이라는 곡명으로 발매되었는데, 〈남원산성〉은 단가로 분류되어 있으며 〈둔가타령〉이나 둥가타령은 남도민요로 분류되어 있다.
이창배에 의하면 〈까투리타령〉은 남도민요 둥가타령 뒤에 붙는다고도 하고, 둥가타령은 〈까투리타령〉 뒤에 붙는다고 하므로 이 둘은 짝이 되어 연곡으로 부르기도 했던 것 같다. 판소리 창자 박초월(朴初月, 1917~1983)에 의해 불린 〈흥보가〉 중 ‘놀보 박타령’에서는 둥가타령이 〈까투리타령〉과 함께 유랑집단 놀이장면에 삽입된 경우도 있다. 현재에도 남도잡가 또는 남도민요로 분류되는 〈농부가〉ㆍ〈진도아리랑〉ㆍ〈새타령〉ㆍ〈성주풀이〉ㆍ〈까투리타령〉 등의 악곡들과 함께 남도민요 가창자들에 의해 불리고 있으며, 가야금병창으로도 연주된다. 둥가타령은 현재 여러 가창자가 첫 번째 절의 후렴까지 함께 부른 후 다음 절부터는 개개인이 돌아가면서 메기고 다 함께 후렴을 받는 형식으로 부르고 있다. 제창과 메기고 받는 형식의 결합이다. 반주는 때에 따라 다르지만 대금ㆍ피리ㆍ아쟁 등의 선율 악기와 장구 장단을 수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음악적으로는 중중모리장단에 육자배기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남원산성으로 시작하는 것이 현재 전승되는 둥가타령의 일반적인 노랫말 유형으로 제창과 후렴은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불리지만 첫 번째 후렴 뒤에 이어지는 개인 소리들은 내용과 순서가 가창자에 따라 각각 달라진다. (제창)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떳다 봐라 저 종달새 석양은 늘어져 갈매기 울고 능수버들가지 휘늘어진데 꾀꼬리는 짝을 지어 이 산으로 가면 꾀꼬리 수리루 음음 어허야 (후렴)어허야 뒤여 둥가 허허 둥가 둥가 내 사랑이로구나 1. 옥양목 석자 없다고 집안 야단이 났는디 새 버선 신고 속없이 뭣하러 또 내 집에 왔나 음음 어허야 2. 앞 집 큰애기 시집을 가는디 속없는 노총각 생병 났다드라 음음 어허야 3. 네가 나를 볼라면 심양강 건너가 이 친구 저 친구 다정한 내 친구 설마 설마 설마 서설마 제일천하의 니가 내 사랑이지 남도민요 3집(신나라레코드, 2001) 중 ‘남원산성’ 음원 가사
둥가타령은 남도잡가 중에서도 후대에 삽입된 신민요 계열의 노래로 20세기 초반 대중매체를 통해 유행되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이창배, 『한국가창대계』, 홍인문화사, 197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민속원, 200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유성기음반총목록』, 민속원, 1998. 김혜정, 「남도잡가의 악곡구성 변화와 음악적 생성원리」, 『남도음악의 생성구조와 즉흥성』, 2008. 김혜정, 「판소리의 사당패소리 수용 양상」, 『남도민속연구』 12, 2006.
정서은(鄭諝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