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조질림[羽調叱音]
칠언율시(七言律詩)에 우리말 토(吐)를 달아 높은 음으로 질러 내며 꿋꿋한 우조격(羽調格)으로 부르는 시조
우조지름시조는 ‘우조격의 지름시조’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초장만 질러 부르는 〈지름시조〉 및 〈여창지름시조〉와 달리 중장과 종장에도 높은 음으로 지르는 곳이 있고 선율형도 많이 다르다. 한시(漢詩) 칠언율시에 우리말 토를 단 것을 노랫말로 쓴다.
우조지름시조는 서울의 ‘우대’, 즉 누각골(지금의 누상동과 누하동) 일대의 가객들 사이에서 부르기 시작한 창제이다. 〈우조시조〉와 함께 조선 고종(高宗) 때 가무별감(歌舞別監)을 지낸 최상욱(崔相旭, 1875~1951)에게서 비롯되었다.
○ 전승 현황 우조지름시조는 홍원기(洪元基, 1922~1997)와 김태영(金兌英) 등에게 전승되었다. 서울 일원에서는 “석인(昔人)이 이승(已乘)”으로 시작하는 당(唐)나라 시인 최호(崔顥, 704~754)의 시 「황학루(黃鶴樓)」를 즐겨 불렀다. 홍원기의 창제와 김태영의 창제로 구분되는데, 중장의 ‘청천역력한양수(晴川歷歷漢陽樹)여늘’ 부분에서 가사 붙임새가 다르다. 김태영의 창제는 이양교(李良敎, 1928~2019)에게 전승되었다. 한편, 정경태(鄭坰兌, 1916~2003)의 석암제(石菴制) 우조질림[叱音]은 「황학루(黃鶴樓)」 외에 “등왕고각(滕王高閣)이”로 시작하는 작자 미상의 칠언율시도 얹어 부른다. ○ 음악적 특징 우조지름시조의 선율형은 같은 우조격의 평시조인 〈우조시조〉와 선율형이 전혀 다르다. 같은 지름 계열의 시조 중 〈지름시조〉와 〈여창지름시조〉는 초장만 높은 음으로 지르고 중장과 종장은 평시조와 같으나, 우조지름시조는 중장과 종장에도 높은 음들이 출현한다. 황(黃:E♭4)ㆍ태(太:F4)ㆍ중(仲:A♭4)ㆍ임(林:B♭4)ㆍ남(南:C5)의 5음이 고루 출현하며, 최고음은 청태(汰:F5)이다.
⋅우조지름시조 “석인이 이승”(최호 한시) (초장) 석인(昔人)이 이승(已乘) 황학거(黃鶴去)하니 차지(此地)에 공여(空餘) 황학루(黃鶴樓)ㅣ로다 (중장) 황학(黃鶴)이 일거(一去) 불부반(不復返)하니 백운천재공유유(白雲千載空悠悠)라 청천역력한양수(晴川歷歷漢陽樹)여늘 방초처처앵무주(芳草萋萋鸚鵡洲)ㅣ로다 (종장) 일모향관(日暮鄕關)이 하처시(何處是)요 연파강상(烟波江上)에 사인수(使人愁)를. ⋅우조질림 “등왕고각이”(석암제) (초장) 등왕고각(滕王高閣)이 임강저(臨江渚)하여 패옥명란파가무(佩玉鳴鑾罷歌舞)라 (중장) 화동조비남포운(畵棟朝飛南浦雲)이요 주렴모권서산우(珠簾暮捲西山雨)ㅣ라 한운담영일유유(閑雲潭影日悠悠)하니 물환성이도기추(物換星移度幾秋)오 (종장) 각중제자금하재(閣中帝子今何在)오 함외장강공자류(檻外長江空自流)ㅣ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