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 개수
두 팔을 양 옆으로 나란히 펴 드는 춤사위.
무작은 <포구락>ㆍ<춘앵전>ㆍ<보상무>ㆍ<첨수무>ㆍ<초무>ㆍ<박접무>ㆍ<무산향>ㆍ<만수무>ㆍ<고구려무>ㆍ<경풍도>ㆍ<검기무>ㆍ<하황은>ㆍ<가인전목단>ㆍ<최화무>ㆍ<연백복지무>ㆍ<장생보연지무>ㆍ<봉래의>ㆍ<무고무>ㆍ<육화대>ㆍ<연화대>ㆍ<사선무>ㆍ<첨수무>ㆍ<헌천화>등 당악정재와 향악정재에서 추는 춤동작이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전승되어 왔고, 조선후기 궁중춤이 기록된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현대에는 한국전쟁 후 국립국악원 주도하에 김천흥(金千興, 1909~2007)과 이흥구(李興九, 1940~ )가 〈춘앵전〉을 재현할 때 안무하여 지금까지 추어진다.
무작은 ‘춤을 춘다’ 또는 ‘춤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된 무작은 정재마다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무용수 전체가 앞으로 걸어 나올 때[무진]와 물러날 때[무퇴], 특정 대형을 만들 때, 공간을 이동할 때, 회무를 돌 때, 특정한 춤을 출 때이다. 『궁중무용무보』2집에는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 아악사장인 김영제(金寧濟, 1883~1954)가 〈춘앵전〉의 무작에 대하여 ‘팔을 한일자 모양[일자형(一字形)]으로 펴드는 것’으로 풀이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현재 추어지는 무작은 작품마다 여러 가지 장단을 사용하고, 다음 세 가지 방식으로 추어진다. 무작①은 양손을 아래 모은 상태에서 두 팔을 양옆으로 펼쳐 나란히 펴든다.
무작②는 양손을 아래 모은 상태에서 그대로 위로 올려 미간[눈썹] 위치에서 두 팔을 양옆으로 펼쳐 나란히 펴든다. 무작③은 양손을 눈썹 위치에 모은 상태에서[공읍] 두 팔을 양옆으로 펼쳐 나란히 펴든다.
무작의 무구는 정재마다 다르다. 〈포구락〉에서 죽간자ㆍ포구문ㆍ공[채구]를, 〈춘앵전〉에서는 돗자리[화문석]를, 〈보상무〉에서는 보상반ㆍ공을, 〈검기무〉ㆍ〈첨수무〉는 검[칼]을, 〈무산향〉에서는 대모반을, 〈만수무〉에서는 족자ㆍ탁자ㆍ선도반을, 〈고구려무〉ㆍ〈경풍도〉에서는 경풍도[족자]를, 〈하황은〉에서는 죽간자ㆍ족자를, 〈가인전목단〉에서는 화준을, 〈최화무〉ㆍ〈연백복지무〉ㆍ〈장생보연지무〉ㆍ〈봉래의〉에서는 죽간자를, 〈무고〉에서는는 북[고(鼓)]과 북채[퇴(槌)]를, 〈육화대〉ㆍ〈사선무〉에서는 꽃을, 〈연화대무〉에서는 죽간자ㆍ연화관을, 〈헌천화〉에서는 탁자ㆍ당(幢)ㆍ화병(花甁)을 사용한다.
용어 자체로 볼 때, 무작은 ‘두 팔을 옆으로 펴 드는 동작’보다는 ‘춤을 춘다’ 혹은 ‘춤을 시작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두 팔을 양옆으로 펴드는 동작을 무작이라고 하게 된 것은 춤을 추기 전에 양손을 앞으로 모으는 염수(斂手)를 하고, 그 다음에 무작으로 본격적인 춤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무작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도 여러 정재 작품에서 나오는 동작이고, 정재 작품마다 다양한 형태로 춘다.
『時用舞譜(全)呈才舞圖笏記』, 국립국악원, 1989. 『궁중무용무보제2집』, 국립국악원, 1987. 『건원1400년 개원50년 국립국악원사』, 국립국악원, 2001. 『呈才舞圖笏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손선숙, 『궁중정재 용어연구』, 민속원, 2008. 손선숙, 『한국 궁중무용사』, 보고사, 2017. 송방송ㆍ손선숙, 『정재홀기 속의 우리 춤과 음악찾기』, 보고사, 2009. 이혜구 역주,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79. 김영희, 「이왕직아악부의 궁중무 전승」 , 『무용역사기록학』 42, 2016. 국립국악원아카이브(https://archive.gugak.go.kr)
손선숙(孫善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