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纏帶), 남전대(藍戰帶)
검무(劍舞)⋅검기무(劍器舞)를 공연하는 무용수가 괘자를 입고 가슴에 묶는 띠
검무⋅검기무 무용수들이 착용하는 남색 허리띠이다. 전복(戰服) 또는 괘자(掛子) 위에 가슴에 둘러 등 부분에 좌⋅우 고리를 내어 묶었다. 남색 견직물을 길이 1m, 너비 15∼20cm 정도의 직사각형으로 네 조각을 마름질하여 나선형으로 돌려 박아 좁고 긴 자루모양을 만들었기 때문에 양 끝이 제비부리처럼 뾰족한 형태가 된다.
검기무 여령은 머리에 전립을 쓰고, 홍초상에 괘자를 입고 전대를 두르고 초록혜를 신었다. 전대는 조선 전기 『악학궤범』에 둑제(纛祭)의 창검무(槍劍舞) 중 궁시무와 간척무의 공인이 사용한 흰 모시[白苧布] 전대(纏帶)와 색상은 다르지만 같은 형태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기축)진찬의궤』의 「품목」과 『(무신)진찬의궤』의 「악기풍물」에 기록된 검기무 전대의 재료는 남가기주(藍加只紬)ㆍ남인문갑사(藍鱗紋甲紗)를 사용한다고 하였으니 남색 전대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권수」 부분에 검기무 복식의 구성물로 전대 도상이 실려 있는데 1829년(순조 29) 『(기축)진찬의궤』의 도상에서만 ‘전대’로 기록되어 있고 그 이후 1848년(헌종 14) 『(무신)진찬의궤』부터는 ‘남전대’로 제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전대는 직선으로 길게 마름질하여 한 쪽 끝을 삼각형으로 접은 후 식서 부분이 맞닿게 같은 방법으로 접어 맞닿은 식서 부분을 돌려가며 박기 때문에 끝은 뾰족하게 되고 속이 빈 원통모양이 된다. 여령용 전대 유물로 전해지는 것은 없으나 군복용 전대 유물은 다수 확인된다. 거창박물관 소장의 정온(鄭蘊, 1569~1641) 가(家) 전대는 너비가 10.5㎝, 길이가 360㎝이고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20세기 초 전대 유물은 길이 234㎝, 너비 10㎝이다. 유물에 따라 치수는 다양한 편이다.
전대의 착용 방식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신진찬도병》(1848)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괘자를 입고 그 위에 긴 띠를 가슴에 돌려 감아 뒤에서 좌⋅우로 고리를 내는 방식이다.
전대는 검무ㆍ검기무를 추는 여령들이 군관들의 복장 일부를 차용하여 공연하면서 사용하게 되었다. 형태와 색상은 군복용 전대와 동일하며 현재까지 변화 없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군복과 착용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검기무용 전대의 특징이 있다. 검기무 여령들의 전대 착용법은 사대부가 여성들의 대대를 착용하는 방법과 동일하다. 즉 군복용 전대는 고리를 앞에서 만들어 착용하지만 검기무 여령의 전대는 뒤에서 고리 두 개를 만들어 맺는 방식으로 착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궁중행사도Ⅰ』(국립중앙박물관, 2010) 진덕순⋅이은주, 「『의궤』를 통해 본 궁중 검기무 복식」(『국악원논문집』 37, 국립국악원, 2018)
이은주(李恩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