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굿, 위만제, 위신제, 배신굿, 도선굿
통영과 거제를 중심으로 한 경상남도 남해안 일대에 전승되는 세습무 연행의 《마을굿》으로 마을의 안녕과 평안, 풍어 등을 기원하는 굿
남해안이라고 하면 부산에서부터 전라도 해남, 진도까지 이르는 영역이다. 다만 남해안굿이라 하면 경상남도 통영과 거제의 굿으로 한정된다. 이는 현재적 양상이며 과거에는 진해, 창원, 마산, 남해도 남해안굿의 무권역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남해안 별신굿은 바로 이 곳 마을들의 재수, 풍요, 안전 등을 기원하는 무속식 《마을굿》이다. 이 지역은 육자배기토리의 전라도와 메나리토리의 동해안 중간 지점에 있어 두 토리가 혼효된 양상을 보여주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남해안굿은 과거 통제영이 있어 그곳의 취고수청 악공들과 이 지역 세습무들이 연계 가능성이 말해지고 있다. 이 지역의 굿음악은 삼현육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꽤 여러 세습무 집안이 존재했으나 현재는 유일하게 정씨 집안만이 굿 전통을 잇고 있다. 198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현재는 정씨 집안 11대인 정영만(1956~)이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현재 남해안에서 《별신굿》을 하고 있는 마을은 통영 죽도, 거제 죽림 마을이 만 2년마다 해오고 있다. 통영 사량도 정량마을이 10년마다 하는 정도인데, 그마저도 인구소멸 지역이 되어 전승 환경이 어려운 상황이다.
《별신굿》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마을의 모듬살이 할 때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다만 현재 남해안굿의 유일한 세습무 집안인 정씨 집안에서는 그들이 11, 12대째 굿을 잇고 있다는 집안 내 구전을 간직하고 있다. 1대를 대략 25~30년으로 잡는다면 정씨 집안의 경우 300년 넘게 굿을 해왔다는 증언인 셈이다. 문헌으로 가장 첫 기록으로는 1932년인데,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 보유자인 정영만의 증조부와 증조모가 일본인 학자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의 현지조사에 제보자로 등장한다. 아키바가 거제의 민속 조사 특히 신대(神竿)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남해안 별신굿의 간단한 제의 절차가 소개된다. 주석에 제보자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거제 이운면 두모리(현재 거제시 장승포동)의 무부 정철주였다. 또 정철주의 아내가 섬 안에서 제일 가는 무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 연행 시기 및 장소 남해안 별신굿의 제일은 음력 정월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제 학동(1월 12일), 거제 수산(1월 1일), 거제 죽림(1월 4일), 거제 구조라(1월 9일), 거제 양화(1월 2일), 거제 도장포(1월 1-4일 사이), 통영 한산 비진 내항(1월 5일), 통영 사량도 양지리 능양동(1월 2일)이 그 마을들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정월에만 했던 것은 아니다. 통영 갈도(치리)는 음력 3월초에, 산양읍 곤리는 음력 10월 중에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기 때문이다. 날짜 또한 고정적이기 보다는 그 어름해서 택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굿의 주기는 기본적으로 3년, 즉 만 2년마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을 | 시기 | 현지명칭 | 현재 전승여부 |
거제 구조라 | 음력 1월 9일 | 《큰굿》(배선굿) | 전승단절 |
거제 도장포 | 음력 1월 1-4일 사이 | 일신(1년),〈배신굿〉(만2년) | 전승단절 |
거제 죽림 | 음력 1월 4일 | 〈위신제〉 | 전승유지 (2018년) |
거제 수산 | 음력 1월 1일 | 별신제, 별신 | 전승유지 |
거제 양화 | 음력 1월 2일 | 동네일신, 모곽제 | 2022년, 33년만 재개 |
거제 학동 | 음력 1월12일 | 배선굿, 《별신굿》 | 전승단절 |
통영 비진도 내항 | 음력 1월 5일 | 별신제 | 전승단절 |
통영 사량도 능양 | 음력 1월 2일 | 〈위민굿〉 | 전승유지, 10년단위 2020년 굿함 |
통영 갈도(치리) | 음력 3월초 | 〈위만제〉 | 전승단절 |
통영 산양 곤리 | 음력 10월 1-3일 사이 | 《별신굿》,〈도선굿〉 | 전승단절 | 통영 죽도 | 음력 1월 8-9일 경 | 《별신굿》,〈위신제〉 | 전승유지 (2019년) |
그러나 이 중 대부분의 《별신굿》들은 전승 단절되었다.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연행되는 곳은 통영 죽도마을, 거제 죽림마을 정도이다. 통영 욕지도에서는 매년 1시간 정도 ‘욕지도 섬문화축제’ 일환의 무대 공연을 진행된다. 한동안 굿을 안했던 10년 주기의 통영 사량도 양지리 능량마을에서는 2010년에 재개하였고, 2020년에도 굿을 하였다. 2022년 9월 11일에는 거제 양화마을 《별신굿》이 1989년 이후 33년만에 재개했다.
○ 연행 주체
남해안 별신굿을 하는 사제자들은 세습무들이다. 이들 세습무들은 집안 단위로 각자의 당골판에서 무업을 했다. 그러나 통영과 거제에는 신청(神廳)이 각기 있어 이들 세습무들의 통합 관청 겸 학습기관 등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가 거제 신청이 통영 신청으로 통합되면서 정영만의 정씨 집안도 거제에서 통영으로 이주하게 된다. 통영에는 정씨 집안 외에도 박씨, 고씨, 이씨 집안 등 다수의 세습무 집안들이 활동했었다. 이 지역에서는 남자 악사를 산이(사니), 고인수라고 부르는데 이중 가장 우두머리에 해당되는 이를 대사산이라 칭한다. 여자 무녀를 승방, 지모라고 부른다. 이중 가장 우두머리를 대모라 칭한다.
이 지역 세습무들은 신청을 중심으로 가무악희(歌舞樂戱)의 굿 전반을 학습한다. 아울러 신청에서는 역대 선생들의 제사를 지낸다. 통영의 신청은 근대기 통영예기조합, 악공조합, 이른바 권번과 겹친다. 악공조합의 회원들이 세습남무들이며 그들은 예기들을 가르치는 스승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통영의 마지막 조합장이 이갑조였는데, 이 또한 세습무계 출신이었다. 그가 1971년 작고하면서 신청도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다만 남해안별신굿이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면서 보존회가 그 신청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거제와 통영에서는 유일하게 정씨 집안만이 그 세습무계 전통을 잇고 있다. 11대인 정영만과 12대인 정은주, 정석진, 정승훈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굿을 전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외부에서 굿을 배우겠다는 대학생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이른바 ‘학습무’들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전승교육사인 대모 이선희와 산이 이현호가 학습무들이다. 이들 외에도 10여 명의 학습무들이 전승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 지역 세습무 남무들은 굿에서 음악을 담당한다. 통제영의 교방청이 해체된 후 민간에 예기조합과 악공조합이 결성되었는데, 이 악공조합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세습무 인물들이었다. 이들 집안의 구전으로는 과거 통제영 취고수청의 악사들도 이들 세습무들이 겸했었다고 하기도 한다. 다만 이 부분은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바는 아니다. 다만 현재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통영 충렬사의 제향 음악을 남해안별신굿 악사들이 해오고 있다.
○ 음악적 특징
남해안 별신굿 각 개별 굿거리의 시작과 끝은 대금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신을 청해 모시는 ‘〈청신악〉’, 신을 다시 보내드린다는 ‘〈송신악〉’이라 부른다. 굿에서 중요한 것은 무가를 부르는 장단이며, 이 장단의 앞뒤에 어떤 장단들과 연계되느냐는 것이다. 남해안 별신굿의 굿거리들을 ‘무가 장단’을 기준으로 유형하화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유형 | 해당굿거리 |
1) 무장단형 | 〈고금역대〉, 〈황천문답〉, 축문, 〈환생탄일〉, 〈시왕탄일〉, 방안오귀 |
2) 조너리형 | 〈부정굿〉, 〈가망굿〉, 〈제석굿〉, 군웅굿 |
3) 말 미 형 | 〈들맞이당산굿〉, 〈일월맞이〉칠성굿, 〈용왕굿〉, 손굿, 넋건지기굿, 당산굿, 문넘기 |
4) 동살풀이형 | 서낭(왕)굿, 손님굿(〈손님풀이〉+동살풀이), 길닦기 |
남해안굿에서는 무가를 무녀가 직접 장구 등을 불규칙적으로 두드리는 자장단에 부르지 않고서는, 즉 악사들의 반주를 받는 경우에는 세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다. 1) 조너리형, 2) 말미형, 3) 동살풀이형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무가 장단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앞뒤로 연계되는 일종의 소리 세트(set)구성이 존재한다. 이를 시각화하면 다음과 같다.
자장단으로 구성되는 굿거리가 아니고서는 위와 같이 3단계의 전환을 이룬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신을 모시는 음악과 춤이 연행된다. 두 번째 단계는 신을 모시는 청신무가를 부르는 단계이다. 이때의 장단으로 조너리, 말미, 동살풀이가 이용된다. 동살풀이는 〈서낭굿〉, 〈손님풀이〉 정도에만 사용하고, 결국 다시 조너리 또는 말미와 결합된다. 따라서 남해안의 무가 장단을 요약하면 조너리형과 말미형이라 할 수 있다.
이용식은 남해안별신굿의 음악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악기편성으로는 시나위권인 전라남도 굿가 같은 계통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음악 선율도 미(mi)-라(la)-시(si)-도(do')-레(re')의 음조직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중 라(la)가 중심음이며 미(mi)는 굵게 떨고 시(si)는 꺾는목으로 쓰이는 점에서 전라남도 음악어법인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다. 예전에는 메나리토리로 된 시나위도 연주하였다는데, 현재의 음악은 육자배기토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음악에 쓰이는 장단은 전라남도 굿과 전혀 다른 계통의 음악이다. 전라남도 굿이 현재 판소리의 근원이 되는 3분박 4박자 계통의 장단이 주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남해안 별신굿의 장단은 2분박 계통의 장단이 많고 5박자, 6박자, 7박자 등의 다양한 형태의 장단이 쓰인다.”라고 했다. 이처럼 남해안굿 음악은 인접한 전라남도와 동해안 남부지역인 부산 그 어느 쪽과 일치한 것이 아닌 독자적인 면모가 있다고 하겠다.
《마을굿》은 각 마을마다의 굿 전통을 준용하기 때문에 차이 나는 부분이 존재할 수 있다. 지금은 무인도가 되어버린 통영 갈도(치리)에서는 과거 《별신굿》을 겹굿으로 진행하였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통영 죽도, 거제 죽림 등의 《별신굿》은 크게 차이나지는 않는다. 거제 죽림의 경우 굿이 끝나면 띠배를 띄워보내는 것이 추가되는 정도이다. 현재 죽도마을과 죽림마을의 《별신굿》은 2일로 구성이 된다. 전날에는 굿하는 일행들이 마을에 들어가 마을 주신에게 알리는 ‘〈들맞이당산굿〉’만을 한다. 그리고 모든 굿거리들은 그 다음날 새벽부터 진행된다.
새벽의 가장 첫 굿거리는 해뜨기전 당산에 올라가 ‘〈일월맞이〉’를 하는 것이다. 굿거리 명칭이 의미하듯 해와 달, 이른바 천신(天神)에 대한 의례이다. 아울러 당산에 올라가서 진행하는 만큼 당산신령을 굿당에 청해오는 의미를 아울러 담고 있다. 〈일월맞이〉를 한 뒤에 마을로 돌아오면서 마을의 중요 의례적 공간들을 두루두루 돌아다닌다. 장승, 우물, 선창가 등이 그러한 곳들인데 이를 〈골맥이(골매기)굿〉이라 한다. 동해안에서는 ‘골매기’가 마을 주신이지만 남해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남해안에서의 마을 주신은 ‘동태부신령’이라 부르며 마을을 태동시킨, 이른바 마을 시조를 의미한다. 사실 동해안에서의 골매기 또한 보통 마을을 처음으로 터를 잡고 점차 마을로 번성시킨 마을 시조를 의미한다. 따라서 신격의 명칭만 다를뿐 대상의 성격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골맥이굿〉이 끝나면 선창가로 가서 〈용왕맞이〉, 다른 말로 ‘〈게먹이기〉’를 한다. 바닷가의 굿이라면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굿〉’이 클 것이라 예상할 수 있지만 남해안의 굿에서는 ‘풍어’보다 중요한 것이 마을의 안녕과 각 가정 조상들의 위무에 놓여 있기에 상대적으로 ‘용왕’을 크게 다루지는 않는다. 여기까지가 아침 식사 이전에 진행되며, 아침 식사 이후 본격적으로 〈부정굿〉부터 마지막 잡귀잡신을 먹이는 시석까지 마을 공터의 가설굿당에서 진행된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본격적인 남해안 별신굿의 시작은 〈부정굿〉부터이다. 〈부정굿〉은 신을 청해 모시는 공간을 정화시키는 굿거리이다. 부정 다음의 굿거리는 〈가망굿〉과 〈제석굿〉이다. 시간이 없으면 이를 묶어서 같이 하기도 하고, 따로 따로 연행하기도 한다. 〈가망굿〉은 다소 불분명한 신격 명칭인데 ‘조상’으로 관념한다. 다만 집안 조상이 아닌 동네 조상을 의미하는데 정확히 어떤 이들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제석굿〉은 풍신(風神) 영등이다. 다만 이 신격은 인접한 부산 등의 사례에 비추어 유추한 것인데, 동해안 중 울산 부산에서는 세존과 제석을 분리해서 관념한다. 세존은 다른 지역에서 〈제석본풀이〉 또는 〈당금애기본풀이〉를 부르는 불교적으로 윤색된 삼신(三神)을 의미하지만, 제석은 바람의 신 영등으로 구분한다. 울산 위쪽 경상북도와 강원도에서는 이를 구별하지 않고 같은 동의어로 사용되면서 ‘영등신’에 해당되는 굿거리가 사라진다. 거제와 통영은 인접한 전라남도 부산의 굿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다. 남해안굿에서 제석은 중의 복색을 하지도, 신화가 구연되지 않고 있어 아마도 인접지역처럼 영등신일 것이라 유추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서낭굿〉이다. 워낙 서낭은 고개, 마루마다 존재하는 서낭, 성황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남해안에서는 선왕(船王)이라는 개념과 혼효되었다. 음이 유사하고, 배에도 ‘배서낭’을 모시기에 이 두 가지가 통합된 것이라 추측된다. 그래서 이 굿거리에서는 서낭과 배들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한다. 다른 굿거리와 달리 선왕굿 때는 악사가 먼저 ‘선왕풀이’를 징을 불규칙적으로 치며 구송하고, 그것이 끝나면 무녀의 굿으로 이어진다.
〈부정굿〉부터 〈서낭굿〉까지를 남해안에서는 ‘《잔삭다리》’라 부른다. 풀이해보면 ‘작은 굿거리’라는 의미다. 흔히 《잔삭다리》에 해당되는 굿거리는 조너리라는 장단으로 무가를 풀며, 무녀는 큰머리를 얹지 않는다. 〈서낭굿〉 이후에 〈지동굿〉부터 〈시왕탄일〉까지 일곱 개의 굿거리를 합쳐서 남해안에서는 ‘《큰굿》’이라 지칭한다. 《큰굿》의 가장 처음은 마을의 중요 문서를 보관한 지동궤를 내어놓고 굿을 하며, 이 때의 신격이 바로 마을을 최초로 조성한 ‘동태부신령’이다. 특이하게 이것이 천연두신 손님굿과 모호하게 결합되어 있다. 〈지동굿〉이 끝나면 손님신의 내력을 읊는 〈손님풀이〉가 구송된다.
손굿이 끝나면 여러 교술과 서정이 엇섞여있는 무가들이 불린다. 〈고금역대〉, 〈황천문답〉, 〈열두축문〉, 〈환생탄일〉, 〈시왕탄일〉이 그것들이다. 이를 불경으로 착각하여 초창기 연구에서는 ‘연불굿’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지만 전혀 불경은 아니고 하나하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무가들이다. 다만 〈시왕탄일〉의 경우는 불교 시왕신앙의 영향을 받았고, 인접된 전라남도 희설 무가, 그리고 동해안의 지옥가 무가와 유사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큰굿》에서 〈지동굿〉 부분은 제거한 나머지는 망자를 천도하는 ‘《오귀새남굿》’에서도 동일하게 연행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별신굿》과 《오구굿》이 굿거리 구성이 공통성보다 차이점이 많은데 반해 남해안에서는 《큰굿》 세트를 공통적으로 이용하고 있어 《별신굿》과 《오구굿》이 많이 닮아 있다. 〈고금역대〉, 〈황천문답〉, 〈열두축문〉, 〈환생탄일〉, 〈시왕탄일〉 이 모든 무가가 죽은 망자, 영가들을 위무하는 굿거리이므로 《오구굿》에서나 어울린다. 그럼에도 남해안에서는 이 굿거리들을 《별신굿》에 사용함으로써 다른 지역과 다른 ‘《별신굿》’의 목적 내지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마을의 잔치, 축제로서의 《마을굿》이기 보다는 마을의 안녕과 평안은 물론, 각 가정의 조상들을 위로함으로써 가정의 재수와 안녕을 함께 바라는 행사인 것이다. 더욱이 가정 형편상 《오구굿》을 하지 못하는 이들은 마을 《별신굿》을 빌미삼아 자신들의 조상 《오구굿》을 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남해안 별신굿은 경상남도 거제와 통영을 중심으로 한 굿이며, 과거에는 인접된 남해, 고성, 마산, 창원 등을 포함했다. 다만 빠르게 그 전승소멸이 이루어져 1990년 후반으로 넘어가면 거제 죽림, 통영 죽도 등 3-4개 마을만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남해안 별신굿 음악은 삼현육각 반주를 한다. 이것은 통영에 자리잡은 통제영과의 연관성 때문으로 보고 있으며, 더 나아가 통제영 취고수청의 악사(세악수)들과 세습무집단들이 겹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현재의 남해안굿 악사들은 이순신장군의 제향 음악도 연주하고 있다.
남해안 별신굿은 전라남도 육자배기토리와 경상도 메나리토리가 혼효된 음악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로 육자배기토리를 사용한다. 그러나 장단이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고 그 굿법의 양상이 전라남도와 동일하지 않다. 그런 점에 있어서 전라남도굿, 그리고 동해안 남부인 부산굿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무권역이라 할 수 있다.
남해안별신굿은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한다는 목적에 있어 다른 지역의 《마을굿》과 다르지 않다. 다만 망자를 천도하는 《오귀새남굿》과 함께 절반 정도의 굿거리를 공유하고 있음이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는 동네 잔치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남해안 별신굿은 동네 잔치이면서 집안 조상 해원을 겸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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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金亨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