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帶)로 쓰는 납작하고 폭넓은 직조 끈목.
광다회대는 비단실로 엮어 폭이 넓고 납작하게 짠 끈목으로, 복식에 대(帶)로 사용되어 포를 정돈할 뿐만 아니라 장식적 효과, 신분 표시의 효과가 있었다. 주로 엮음직의 기법으로 제작되었으며, 끝부분은 망(網)으로 섬세하게 장식하였다.
광다회대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에 처음 등장하므로 마한 시기에 해당하며, 우리나라에서는 4세기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와 6~7세기 반가사유상에서 광다회대를 확인할 수 있다.
○ 용도
광다회대는 조직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허리띠의 용도로 이용하는 광다회대와 매듭장이 사용하는 광다회가 있다. 허리띠로 사용하는 광다회대는 끈목의 중심에 빈 공간이 없는 모양이며, 문무관이 융복인 첩리(帖裏)에 띠었다. 당상관이 입는 남첩리에는 홍색 광다회대를 띠고 당하관 이하는 청색이나 녹색 광다회대를 띠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가동(歌童)의 녹주단령(綠紬團領) 예복에 홍색 명주실[大紅眞絲]로 짠 광다회대(廣多繪帶)를 두른다고 쓰여 있어, 전통악무에서 공연복식 소품으로 광다회대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매듭장이 사용하는 광다회는 중앙에 심지가 있어 끈목 중심에 빈 공간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주로 매듭[流蘇]에 사용되었다.

○ 형태와 구조
광다회대의 형태는 폭이 3cm 내외로 넓고 납작한 모양이며, 비단실을 2~4가닥 등으로 엮어서 짰고, 술 머리에는 금전지(金箋紙) 위에 망을 떠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여러 가닥의 실이나 천을 엮어서 끈이나 줄을 만드는 것을 끈목이라고 하는데, 끈목은 단면의 형태에 따라 환조(丸絛)와 편조(扁絛)로 나눌 수 있다. 광다회대는 단면의 형태가 평편한 편조(扁絛)로 제작하는데, 편조(扁絛)는 조직에 따라 사선으로 엮어 짜 한 가닥이 두 가닥이나 세 가닥을 건너 엮은 모양인 사선엮음직과 경사와 위사를 엮어 짠 모양인 경사상하교차조직으로 나뉜다. 광다회대의 구조는 다회 끈목의 양쪽 끝에 망술이 달려있는데 망술은 술머리에 합사한 실을 걸어 엮어가며 다양한 문양으로 망을 만들어 장식한 망장식이 포함된다. 망장식은 망 안쪽에 운모(雲母), 석영(石英), 금편(金片) 등을 넣어 반짝이도록 장식했고, 이러한 망술은 연대가 이른 유물일수록 망장식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졌다.

○ 제작 재료와 제작 방법
광다회대의 재료는 기본적으로 견사를 사용하여 강도를 높이고, 장식성을 가미하기 위해 끈으로 짜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광다회대의 제작방법은 12사(絲)가 기본직이며, 6가닥은 바로 꼬고 나머지 6가닥은 외로 꼬아 끈틀의 앞과 뒤에 4가닥씩, 양 옆에 각각 2가닥씩 걸어 놓고 끈을 짠다. 간조(間組)는 다회를 엮을 때 건너뛰는 간수(間數)를 뜻하는데, 광다회대의 간조 특성은 같은 양의 실로 같은 조수(組數)를 사용하여 짰을 때 건너 넘는 간수가 적어지면 두께가 얇아지고 폭은 넓어진다. 복식의 대로 사용하는 광다회대는 신체에 압박감을 분산하기 위해 비교적 폭이 넓고 신축성과 유연성이 있는 일간조(一間組)와 이간조(二間組)를 사용한다.
○ 역사적 변천
광다회대는 명주실이 재료가 되는 사대(絲帶)에 속하며 다회가 순수우리말이므로 한자를 차용하여 다회(多繪)라 표기하였는데, 그중에서 단면이 넓은 형태인 넙다회, 너븐다회의 차자표기가 광다회이다. 『역어유해(譯語類解)』에는 편조(匾絛)를 한글인 너븐다회로 주음하고 있어, 편조는 광다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광다회대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에 처음 등장하므로 마한시기에 해당하며, 우리나라에서는 4세기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와 6~7세기 반가사유상에서 광다회대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1540년(중종 35)의 기록에서 옥대의 장식용으로서 대홍광다회(大紅廣多繪)가 언급되어 있다. 또한 『명안공주가례등록(明安公主嘉禮謄錄)』과 『가례등록(嘉禮謄錄)』등에는 토환(吐環)에 소용되는 홍사광다회(紅絲廣多繪)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토환은 허리띠 장식 고리로 광다회대를 고리에 끼워서 허리띠로 사용했고, 홍사광다회는 붉은 실로 짠 광다회라는 의미로 해석되므로 직기에서 직조한 넓은 끈목으로 추정된다. 광다회대 출토유물 중 가장 이른 유물인〈변수(邊脩, 1447~1524) 묘〉 출토 광다회대와 〈심수륜(沈秀崙, 1534∼1589) 묘〉 출토 광다회대는 약 60년 정도의 시기 차이가 있지만 형태는 매우 비슷하다.

길이는 400cm 내외이며, 촘촘하게 짠 끈 아래에 화려한 금편을 넣어 꾸민 장식과 풍성한 술이 달려 있다. 이러한 광다회대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전반의 출토 유물에서 종종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 유행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광다회대는 주로 왕실용품이나 상류층의 허리끈 등으로 쓰였고, 그 기법이 복잡해서 현재는 전승되지 않고 사실상 단절되었다. 유물이나 초상화 등의 자료로 재현을 통해 여러 기법이 복원되었지만 실제 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광다회는 주로 선추나 안경집, 노리개 등 방울술 형태로 쓰이고 있다. 현재 궁중의례 재현복식이나 가면극과 같은 민속극 복식, 전통연희에서 착용하는 공연복식에서 장식요소이자 신분을 나타내는 품목으로 다양한 포 위에 착용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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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리(馬兪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