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궁중 악공취재와 습악 및 악(樂) 담당 기관의 행정을 종합적으로 관장한 장악기관.
조선 1457년(세조 3) 악학과 관습도감을 통합하여 설치한 기관이다. 악학과 관습도감의 업무를 계승하고 악무(樂舞) 담당 기관인 전악서와 아악서를 통합한 장악서 관련 행정을 담당했다. 1466년(세조 12)에 장악기관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조치로 장악서로 흡수되었다.
○ 설립 목적
조선은 성리학을 국시로 삼고 이에 따라 예와 악을 중시했다. 이에 개국 초부터 악학을 중시하고, 궁중에는 음악의 종류에 따라 전문 악인(樂人)을 달리 두고 취재(取才)와 교육을 통해 아악과 향악, 당악 전승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점차 악인의 수가 많아지고 관원이 증가하면서 비대해진 장악 업무를 재편하기 위해 악학과 관습도감을 합쳐 악학도감을 설치했다.
○ 조직의 체계와 구성원
악학도감의 관리들은 악인이 아닌 과거 출신 문관들이었다. 관습도감과 악학이 통합될 때에 관원도 합쳐졌다. 악학도감의 직제는 관습도감의 직제와 비슷했다. 관습도감 직제를 그대로 가져오고, 여기에 본래 악학에 존재했던 별좌 2명도 포함했다. 즉 실안제조(實按提調) 2명, 실안부제조 1명, 제조 3명, 사(使) 1명, 부사(副使) 1명, 판관(判官) 2명, 악학별좌 2명으로 구성되었다. 실안제조란 일반 제조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는데, 이전 관습도감에도 실안제조가 있었다. 악학도감에서 실안제조는 병조판서와 대사헌이, 부제조는 도승지(都承旨)가 맡았다. 사, 부사, 판관을 포함한 낭청은 악학도감제조낭청(樂學都監提調郞廳)이라 칭하도록 했다.
○ 역사적 변천
1457년(세조 3) 아악과 향악, 당악의 근본 원리가 같다는 논리로 전악서와 아악서를 합하여 장악서라고 칭하고 장악서를 악학도감에 예속시켰다. 도감이란 고려 광종조(949~975)에 궁궐도감이 설치된 이래 사역이 생길 때 임시로 설치하는 관서에 붙인 명칭이다. 1458년(세조 4) 실록 기사에 의하면, 악학과 관습도감이 합쳐져서 악학도감이 되고 나서 제조가 4명 줄고, 부제조가 1명이 새로 생겼고, 악학 별좌가 제외되었다. 이러한 인원 감소의 이유는 국초부터 진행된 악(樂)의 제정과 정비 사업이 대체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460년(세조 6)에는 음악 행정의 전문성 유지를 위해 악학도감의 사(史) 1인은 구임(久任)하도록 했다. 악학도감은 1466년(세조 12) 장악서에 흡수되었다.
○ 활동
악학도감은 악학과 관습도감이 하던 악공의 취재와 습악, 각종 궁중 의례에서 가(歌)ㆍ무(舞)ㆍ 악(樂)의 연행 및 악곡, 악기 제작과 관리, 그리고 악무 담당 기관인 전악서와 아악서를 통합한 장악서의 각종 궁중 공연예술에 대한 행정 업무를 종합적으로 맡았다.
서인화(徐仁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