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악서는 고려 말에 설치되었으며, 조선 개국(1392) 후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전악서는 아악을 전담한
아악서와 달리, 조회와 연향의 향악과 당악, 조선 초 선왕(先王)의 사당인 문소전과 세종의 비(妃) 소헌 왕후의 혼전(魂殿)인 휘덕전 제례에서 속악 제례악, 전정(殿庭)의 전정고취, 임금의 행차 시 어가(御駕) 앞뒤에 위치하는 전부고취 및 후부고취, 문무(文舞)와 무무(武舞), 노래, 잡기(雜技) 등을 담당했다. 1457년(세조 3) 아악서와 통합되어 장악서(掌樂署)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