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이왕직아악부가 간행한 조선음악 해설서.
이 책 『조선아악요람』은 『조선악개요』(1917), 『조선악대요』(1934), 『이왕가악기』(1939)와 더불어 이왕직아악부에서 제작한 조선음악 관련 문헌 중 하나이다. 이 책에는 편찬 연도가 명기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책 내용 중 「아악부연혁」에 ‘대정(大正) 15년(1926)’까지의 내용이 쓰여 있고 이어서 「현(現)아악부원표」가 수록되어 있는 점, 그리고 「조선아악약력」 중 방향의 설명에 "지금부터 812년 전 고려 예종 9년(1114)에 송에서 이입"이라고 쓰여 있어 현재 시점에서 812년 이전이 1114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의 편찬 연도는 1926년으로 추정될 수 있다.
○ 체재 및 규격
1책 38장, 25.7 × 18.3 cm, 영인본(복사본)
○ 소장처
국립국악원
○ 편찬 연대 및 편저자 사항
『조선아악요람』에는 편찬 연도와 저자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다만 「현(現) 아악부원표」가 1926년까지의 내용이 쓰여 있는 점에 의해 이 책이 쓰여진 현재 시기를 1926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저자에 관해서는 다나베 히사오(田邊尙雄)로 보는 견해와 이왕직아악부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의 항목 중 「조선아악대요」에는 “1921년 궁내성아악강습소 강사 이학사 다나베 히사오 씨가 이왕가아악을 연구하고 학술적으로 이 귀중한 것을 세상에 알렸다. 다나베 씨에 의하면 (후략)”라고 하여 다나베 히사오의 언설을 인용하고 있어 이 책의 저자가 다나베가 아님을 알게 한다. 실제 다나베 히사오는 자신의 『동양음악사(東洋音樂史)』에서 이 책에 관해 이왕직아악대에서 편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저자는 이왕직아악부로 추정된다.
○ 구성 및 내용
『조선아악요람』은 음악사, 악기, 의물, 악곡, 정재, 《문묘제례악》, 《종묘제례악》, 아악부 연혁, 아악부원의 현황 등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조선아악요람』의 목차
조선아악대요
조선악기약력
의물부
조선악곡약력
조선정재약력
가부(歌部)
종묘제례악기진열도
종묘제례육일무도
종묘사향제례주악순서
문묘제례악기진열도
문묘춘추석전제례주악순서
종묘악장문
문묘악장문
아악부연혁
「조선아악대요」는 조선 아악에 관해 역사, 악기, 당시 아악 전승의 상황 등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전승 상황에 관해서는 노련한 악사들이 고령으로 사망하고 있어 1920년(대정 8)부터 악생을 수용하여 후계자를 양성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악기의 약력」에는 편종, 특종, 방향, 양금, 대금, 소금, 자바라, 나발, 정, 나, 편경, 특경, 금, 슬, 현금, 가야금, 당비파, 향비파, 아쟁, 대쟁, 월금, 해금, 대금, 당적, 당피리, 향피리, 세피리, 퉁소, 단소, 약, 적, 지, 소, 생황, 부, 훈, 나각, 건고, 진고, 응고, 삭고, 중고, 절고, 교방고, 좌고, 용고, 장고, 갈고, 노고, 노도, 축, 어, 박, 태평소 총 54종의 악기를 재료에 의해 금부, 석부, 사부, 죽부, 포부, 토부, 혁부, 목부로 나누고, 악기별로 창작 연대, 창작인 이름 및 시대, 아악ㆍ속악별, 용별(제례, 연례, 군악 등), 비고의 항목으로 서술하고 있다.
「조선악곡의 약력」은 제례악 32종과 연례악 39종 총 71종을 창작기, 연대, 용별(등가ㆍ헌가), 악장 및 가사, 비고 항목으로 구분하여 기입하고 있으며, 「조선정재의 약력」에서는 궁중무 52종을 무명(舞名), 창작 시기 및 창작자, 무원(인원), 악곡, 비고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가부(歌部)」는 우조(초수대엽~우편), 계면조(초수대엽~태평가), 시조(중거시조~농시조), 가사의 명칭만 적고 있다. 종묘제례와 문묘제례는 각각 악기 진열도, 주악 순서, 악장문(樂章文)을 기재하고 있다. 「아악부의 연혁」은 태조부터 일제강점기인 1926년까지 음악 기관의 변천과 구성원의 직위, 인원 등을 14쪽에 걸쳐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아악서, 전악서, 장악서, 장악원, 대한제국기의 교방사, 장악과로의 변천에 이어 일제강점기가 되어 아악대로 바뀌고 국악사장이 아악사장, 국악사가 아악사로 바뀌고 아악사장 이하 모두 임시직인 고원(傭員)으로 한다고 적혀 있다. 인원은 광무 원년(1897)에 772인이었던 것이 융희 원년(1907)에는 국악사장 이하 305인, 1911년에 189인, 1913년에 105인, 1915년에 57인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아악요람』은 1920년대 중반 조선아악에 관해 음악사부터 악기, 악곡, 정재, 음악 기관의 변천, 이왕직아악부의 현재 인원까지 간략하지만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 특징이 있다. 특히 장악원부터 이왕직아악부까지의 변천을 기록하고 있는 「아악부의 연혁」에서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이래로 현격하게 축소되는 궁중 악사의 규모와 처우를 확인할 수 있다.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국립국악원, 1991. 田邊尙雄, 『東洋音樂史』, 雄山閣, 1930.
이지선(李知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