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동이 여러 정재에 착용하는 예복용 치마의 하나로 붉은 색 바탕에 남색 선단이 옆단과 아랫단에 둘러지고 앞치마가 앞뒤로 두 장이 달린 형태의 치마다.
< 적상(赤裳):속악의 문무·무무와 의물을 잡는 공인이 입는 것이다. 상은 홍주(紅紬)를 꿰매어 만들며, 조주(皂紬, 검은 명주)로 선을 둘렀다. ©국립국악원 >
의례용 상(裳)은 예복을 구성하는 일습의 하나로 면복, 조복, 제복 등 의례복에 반드시 포함된다. 무동은 세종대에 회례연을 계기로 설치되었고, 무동의 복식에 대에서는 1431년(세종 13)에 처음 언급되어 있으며, 『악학궤범』에 무동이 착용하는 상(裳)의 형태와 재료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 상(裳):경오년에 다시 무동을 썼는데, 상은 홍초(紅綃)로 만들며 절화문을 가득 그리고, 안은 홍주(紅紬)를 쓰고, 선은 흑초를 쓰고 자황색 도다익을 박으며, 여름에는 흰모시로 만들고선은 흑색 모시를 쓴다. 사은 홍단(紅段)으로 만들고, 선은 흑단(黑段)을 쓰며, 안은 홍초(紅綃)를 쓴다. ©국립국악원 >
○ 용도
홍질남선상은 이름 그대로 홍색 바탕천에 남색 선이 더해진 상으로, 조선후기 궁중 연향에서 무동이 정재복식의 일습으로 착용하였다. 주로 표의(表衣)와 중단(中單) 사이에 착용했다.
○ 형태
남자가 착용하는 상(裳)은 예복의 일종으로 전삼후사(前三後四)의 앞 세 폭ㆍ뒤 네 폭으로 이루어진 앞ㆍ뒤가 분리된 치마 형태이다. 이는 각각 음과 양을 상징하며 고대 예서에 따르면 예복에 착용하는 상은 원래 전상ㆍ후상에 각각 허리말기와 끈을 달아 각각 따로 착용하였으나 후대에 하나의 말기에 전ㆍ후상을 함께 달아 한 번에 착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하였다. 또한 전ㆍ후상에는 각각 허리부분을 제외한 세면에 선단을 두르며 허리부분에만 주름을 잡는 방식과 허리부터 도련까지 주름을 잡아 고정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 홍상남선 ©국립국악원 >
< 홍화주상 ©국립국악원 >
○ 재질 및 재료
숙종 45년(1719) 『(기해)진연의궤』에는 숙종의 기로소 입소를 경하하기 위해 설행된 외진연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무동의 상으로 남색 노주주(潞洲紬)로 만든 남상 4건과 다홍색 노주주로 만든 홍상 12건의 기록이 있다. 노주주는 중국 노주(潞州)에서 만든 비단이며 선단의 기록은 나와 있지 않지만 『악학궤범』의 무동 상의 기록으로 미루어 남상에는 홍색선을, 홍상에는 남색선을 둘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조 20년(1744) 『(갑자)진연의궤』의 기록에 의하면 무동복식은 기해년과 똑같이 남색 노주주로 만든 남상 4건과 다홍색 노주주로 만든 홍상 12건의 기록이 있는데 그 소용물품으로 남상에는 홍색 끈과 선단이 남상에는 홍색 끈과 선단이 포함되어 있어 홍상에는 남색의 선단이 둘러져있고 남상에는 홍색선이 둘러져 있으며 선단과 같은 색의 허리말기와 끈이 달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을유)수작의궤』는 영조 41년(1765) 영조의 망팔(望八)을 기념하기 위해 거행된 수작을 기록한 의궤이다. 소용된 물품 목록에 의하면 무동의 홍상은 홍화방주(紅花方紬) 바탕에 남화화주(藍禾花紬)로 선단을 두르고 백화방주(白花方紬)로 끈을 만든 것으로 되어 있어 홍상에는 남색선을 두르고 남상에는 홍색선을 둘렀으며 흰색의 허리말기와 끈을 달았음을 알 수 있다.
○ 역사적 변천
무동이 착용하는 상의 형태와 제작 재료 등에 관한 내용은 『악학궤범』에 처음 나타난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1450년(세종 32)에 무동을 다시 썼을 때의 상은 바깥쪽은 절화문이 있는 홍초(紅綃)로 만들고, 안쪽은 홍주(紅紬)를 썼으며, 테두리의 선은 자황색 도다익을 박은 흑초(黑綃)를 썼다. 또 여름용 상은 흰모시[白苧布]로 만들고 선은 흑색 모식[흑저포]를 쓴다고 했다. 이와같은 조선 초기 무동의 상은 계절에 따라 재료를 달리 사용하고 그림을 그리고 자황색 금박까지 부금하여 화려하게 장식했음을 알 수 있다. 『악학궤범』(1493) 당시 무동의 상은 홍단(紅緞)으로 만들고, 안에는 홍초를 쓰고, 선에는 흑단을 써서 만든다고 했다.
『(무자)진작의궤』는 순조 28년(1828)에 순조비인 순원왕후 김씨의 보령 40 세를 기념하여 그해 2월과 6월에 올린 진작의식에 관한 기록으로 당시 새롭게 창제된 다양한 정제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무동 복식의 기록에 홍질남선상, 남질홍선상 외에도 남질흑선상(藍質黑縇裳), 옥색질흑선상(玉色質黑縇裳), 백질흑선상(白質黑縇裳) 등이 나오는데 새로 창작한 정재가 많아지면서 각 정재에 따라 상에 다양한 색상이 적용되기도 하였고 상이 생략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상은 표의와 중단사이에 입는데 『영조병술진연도병(英祖丙戌進宴圖屛)』(1766) <숭정전진연도(崇政殿進宴圖)>와 『화성능행도병(華城陵幸圖屛)』(1795) <낙남헌양로연도(洛南軒養老宴圖)>에 그려진 무동은 상을 표의 겉으로 입은 것으로 보여 착장 방법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전승되지 않는다.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77.
최연우, 『면복-군주의 덕목을 옷으로 표현하다』, 문학동네, 2015.
『韓國音樂學資料叢書, 제35집 : 조선시대진연진찬진하병풍』, 국립국악원, 2000.
박민재(朴民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