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화전(赤壁火戰), 적벽대전(赤壁大戰), 죽고 타령
판소리 《적벽가》 중 주유(周瑜)가 공명(孔明)의 도움으로 적벽강에서 조조(曹操)의 백만 대군을 대파(大破)하는 내용의 대목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은 황개(黃蓋)가 조조의 진중에 화공(火攻)을 한 후 주유의 군사들이 조조의 백반 대군을 격파(擊破)하는데 방통(龐統)의 연환계(連環計)에 의해 조조 진영의 전선(戰船)들이 모두 불타면서 이름 모를 군사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다. 자진모리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창자에 따라 휘모리장단으로 변화를 주는 경우도 있다. 우조 ‘솔(sol)-라(la)-도(do′)-레(re′)-미(mi′)’의 선율이 주를 이루지만, 군사들이 죽는 장면은 내용의 이면에 맞게 계면조 ‘미(mi)-솔(sol)-라(la)-(시)-도(do′)-레(re′)’의 선율이 구성되기도 한다.
19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 방만춘(方萬春, ?~?)은 전기 팔 명창의 한 사람으로 《적벽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그 중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을 특히 잘 불렀다고 한다. 그가 이 대목을 부르면 소리판이 온통 불바다가 되는 듯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기록과 함께 이 대목의 내용 구성인 ‘황개 화공→죽고 타령→조조의 도망’이 거의 모든 창본과 필사본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은 《적벽가》 형성 초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음원은 1930년대 일본 폴리돌 레코드에서 발매된 〈화용도전집〉이 복각되어 전한다. 이 음원에는 이동백(李東伯, 1866~1949), 김창룡(金昌龍, 1872~1943), 정정렬(丁貞烈, 1876~1938), 조학진(曺學珍, 1877~1951), 임소향(林素香, ?~?) 등 당대 명창들의 소리가 녹음되어 있다. 이 중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은 조학진의 소리로 전해진다.
판소리 《적벽가》 중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은 원전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기인하여 형성된 것이지만, 판소리를 향유하던 당대 민중들의 인식을 반영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사설들이 첨입되어 있다. 이 대목의 내용 전개에 따른 상황묘사는 다음과 같다. 〈황개 화공〉 부분은 실감나는 포음과 악기 소리, 전선이 불타는 모습 등에서 의성어와 의태어를 활용하여 생동감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또한, 자진모리장단이 사용되어 전쟁의 긴박한 상황이 잘 표현된다. 이어지는 〈죽고 타령〉은 원전에는 간단히 서술되고 있지만, 판소리로 재창작되면서 군사들의 비극적 죽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부분이다. 이 장면에서는 ‘죽고’라는 서술어를 반복 사용하여 통일된 유형이 나타난다. 군사들이 죽는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풍자적인 묘사도 그려내고 있다. 〈조조의 도망〉 부분은 조조가 마초(馬超)에게 쫓기는 원전의 장면이 변형되어 수용된 장면이다. 황개의 호통에 조조가 홍포(紅袍)를 벗고 도망하는 모습이 해학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창본에 따라 조조가 급해서 말을 거꾸로 타고 달아나는 장면이 포함되기도 한다. ○ 음악적 특징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은 조조의 백만 대군을 격파하는 긴박하고 극적인 상황이 다양한 붙임새가 활용된 자진모리장단으로 표현되고 있다. 대부분 ‘솔(sol)-라(la)-도(do′)-레(re′)-미(mi′)’의 우조 선율로 구성되어 있지만, 군사들이 죽는 모습을 묘사한 〈죽고 타령〉 부분에서는 계면조 ‘미(mi)-솔(sol)-라(la)-(시)-도(do′)-레(re′)’의 선율이 활용되기도 한다. 이때는 모음을 길게 늘여 장단을 달아 놓고 도섭으로 연행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한편, 김연수는 〈죽고 타령〉 장면에서 휘모리장단으로 변화를 주고 〈조조의 도망〉 부분을 자진모리장단으로 연결하여 표현하는 차이점이 있다.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은 주유의 군사들이 조조의 백만 대군을 대파할 때의 긴박한 전쟁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 군사들이 죽어가는 장면은 〈죽고 타령〉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조조가 달아나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신재효본』은 ‘황개 화공→죽고 타령→군장 기계 사설→황개 호통→조조의 도망’으로 전개된다. 반면에 대부분의 창본은 ‘황개 화공→죽고 타령→조조의 도망’으로 짜여있다.
(아니리) 히히히 해해해 대소하니 정욱이 여짜오되, “군량(軍糧) 실은 배 같으면 선중(船中)이 은중(隱重)할듸 둥덩실 높이 떠 요요(搖搖)하고 범류하니 만일 간계(奸計) 있을진대 어찌 회피 허오리까.” 조조 이 말 의심내어, “그래 그렇겄다. 네 말이 당연하니 문빙 불러 방색하라.” 문빙이 우뚝 나서, “저기 오는 배 어디 뱁나.” (자진모리) 이 말이 지듯마듯 뜻밖에 살개가 파르파르 문빙 맞아 뚝 떨어지며 황개 화선(火船) 이십척 거화포(擧火砲) 신기전(神機箭)과 때때때 나팔소리 두리둥둥 뇌고(雷鼓) 치며 좌우 각선부대가 동남풍에 불을 모아 불을 들고 달려들어 조조 백만대병 군병에다가 한 번을 불이 버썩 천지가 떠그르르 강산이 무너지고 두 번을 불이 버썩 우주가 바뀌는 듯 세 번을 불로 치니 화염이 충천 풍성(風聲)이 우루루루 물결은 출렁 전선 뒷동 돛대 외직끈 용총 활대 노상 욱대 우비 삼판다리 족판 행장 망어 갑부대가 물에 풍 기치(旗幟) 펄펄 장막 쪽쪽 화전(火箭) 궁전(弓箭) 당파 창파 깨어진 퉁노구 거말장 마란쇠 나팔 큰 북 징 꽹과리 웽기령 젱기령 와그르르 철철 산산히 깨어져서 풍파강상에 화광이 훨훨 수만 전선이 간곳 없고 적벽강이 뒤끓으니 불빛이 난리가 아니냐. 가련할 손 백만대군은 날도 뛰도 오도 가도 오무락 꼼짝 달싹도 못하고 숨막히고 기막히어 살도 맞고 창에도 찔려 앉아 죽고 서서 죽고 웃다 울다 죽고 밟혀 죽고 맞어 죽고 애타 죽고 성내 죽고 덜렁거리다 죽고 복장(腹臟) 덜컥 살에 맞아 물에 풍 빠져 죽고 바사져 죽고 찢어져 죽고 엎어져 죽고 자빠져 죽고 무서워 죽고 눈빠져 죽고 등터져 죽고 오사(誤死) 급사(急死) 몰사(沒死)하야 다리도 작신 부러져 죽고 죽어보느라고 죽고 무단히 죽고 함부로 덤부로 죽고 땍때그르르 궁굴러가다 아 낙상사(落傷死)하여 죽고 가삼 쾅쾅 뚜다리며 죽고 실없이 죽고 가엾이 죽고 꿈꾸다 죽고 한 놈은 떡 큰 놈을 입에다 물고 죽고 또 한 놈은 주머니를 부시럭 부시럭 끄르더니 어따 이 제기를 칠 놈들아 나는 이런 다급한 판에 먹고 죽을라고 비상(砒霜) 사 넣더니라 와삭와삭 깨물어 먹고 물에가 풍. 또 한 놈은 돛대 끝으로 뿍뿍뿍 기어 올라가더니마는 아이고 하나님 나는 삼대독자 외아들이요 제발 덕분 살려주오 뚝 떨어져 물에가 풍. 또 한 놈은 뱃전으로 우루루루 퉁퉁퉁퉁 나가더니 고향을 바라보며 아이고 아버지 어머니 나는 한 일 없이 죽습니다 언제 다시 뵈오리까 물에 가 풍. 또 한 놈은 그 통에 한가한 치라고 시조(時調) 반장 빼다가 죽고 직사몰사 대해 수중 깊은 물에 사람을 모두 국수 풀 듯 더럭더럭 풀며 적급조총 괴약통 납날개 도래송곳 돛바늘 적벽풍파에 떠나갈 제 일등명장 쓸데가 없고 날랜 장수가 무용지물이로구나. 화전 궁전 가는 소리 여기서도 피르르르 저기서도 피르르르 허저(許褚) 장요(張遼 ) 서황(徐晃) 등이 조조를 보위(保衛)하야 천방지축 달아날 제 황개 화염 무릅쓰고 쫓아오며 웨는 말이, “붉은 홍포 입은 것이 조조니라. 도망말고 쉬 죽어라.” 조조가 겁을 내어 입은 홍포 훨씬 벗고 군사 전립 앗아 쓰고 다른 군사를 가리키며, “참 조조 저기 간다. 남다려 조조란 놈 제가 진정 조조니라.” 황개가 쫓아오며, “저기 수염 진 게 조조니라.” 조조가 황겁(惶怯)하야 진 수염을 걷어 잡아 와드득 와드득 쥐어 뜯고 꾀탈장탈 도망헐 제 장요 활을 급히 쏘아 황개 맞아 물에 가 풍 꺼꾸러져 낙수(落水)허니, “공의(公義)야, 날 살려라.” 한당(韓當)이 급히 건져 살을 빼어 본진(本陣)으로 보내랼 제, 좌우편 호통 소리 조조 정욱 기겁하야 말을 거꾸로 잡어타고, “가자 가자 어서 가자 까딱하면 나 죽겄다. 여봐라 정욱아, 주유 노숙이 축전 축지법(縮地法)을 못하는 줄 알었더니마는 오늘 보니 축지법을 허나부다. 이 말이 왜 퇴불여전(退不如前)이 되야 앞으로는 아니 가고 적벽강으로만 그저 뿌드득 부드득 들어가니 이것이 웬 일이냐.” “어따 승상이 말을 거꾸로 탔소.” 조조 듣고, “급한대로 언제 옳게 타겄느냐. 말 모가지만 쑥 빼다가 얼른 돌여다 뒤에다 꽂아라. 나 죽겄다. 어서 가자. 아이고 아이고.”
박봉술 창 《적벽가》 중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 김진영 외 편저, 『적벽가 전집1』, 박이정, 1998.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은 판소리 《적벽가》의 정점(頂點) 부분에 해당하며, 백만 대군을 격파하는 긴박하고 극적인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원전인 『삼국지연의』에서 근원하여 형성된 것이지만, 당대 민중들의 의식이 반영되어 이름없는 군사들의 비극적 죽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판소리에서 재창작된 부분이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구전무형유산걸작(2003)
김진영 외 편저, 『적벽가 전집1』, 박이정, 1998. 박황, 『판소리소사』, 신구문화사, 1976. 이기형, 『필사본 화용도 연구』, 민속원, 2003. 김기형, 「적벽가의 역사적 전개와 작품세계」,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3. 김용화, 「판소리 《적벽가》 중 〈적벽대전〉 분석 -박봉술제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양옥경, 「판소리 《적벽가》 添入대목의 音樂的 具現 樣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이보형, 「적벽가의 명창 牟興甲」, 『판소리연구』 5, 판소리학회, 1994. 이성권, 「적벽가 사설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8.
서정민(徐玎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