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천 대금산조
대금연주자 강백천이 육자배기 허튼가락을 토대로 구성한 시나위더늠 대금산조
강백천류 대금산조는 남도계면조를 기반으로 한 대금산조이다. 강백천이 박종기와 교류하며 남도민요를 기초로 대금시나위를 구성하였고, 점차 산조의 형식을 갖춰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하였다. 조나 청의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계면조 시김새가 발달되어 시나위더늠 대금산조로 분류된다.
산조는 〈심방곡〉이나 〈시나위〉라고 했던 기악곡이 독주형태로 발전한 음악이다. 19세기 『금옥총부(金玉叢部)』에 〈퉁소심방곡〉과 〈가야금심방곡〉을 연주했다는 기록을 토대로 산조가 독주시나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지금과 같은 산조형식은 19세기 말 김창조에 의해 가야금산조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거문고·대금·해금 등 여러 악기의 산조음악이 오늘날의 형태로 정립되었다. 대금산조는 1920~30년대 강백천과 박종기에 의해 형성되었다. 강백천은 시나위를 바탕으로 대금산조를 구성한 반면, 박종기는 판소리를 기반으로 산조를 만들었다. 시나위 가락을 모태로한 강백천의 시나위더늠 대금산조는 김동진·김동표·조철현에게 전해졌다. 소리더늠 대금산조는 박종기에 의해 다음세대인 한주환·한범수를 거쳐 이생강·서용석에게 전해졌고 현재 활발하게 연주되고 있다.
○ 역사적 변천 과정 강백천(姜白川, 1898~1982)은 1898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출생하였다. 강백천의 사촌동생이 판소리 명창 강도근이고, 가야금 명인 강순근, 강정렬과도 친척관계인 것을 보면 국악집안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백천은 17세에 익산출신 박준필에게 대금과 정악 풍류를 배우고, 추산 전용선에게 단소, 가야금, 양금, 시조 등을 배웠다. 강백천은 대금연주자 박종기(朴鍾基, 1880~1947)와 교류하면서 남도민요에서 터득한 시나위풍의 가락을 근거로 하여 대금산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강백천의 초기 산조가락은 알 수 없으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971년 전후의 녹음자료에 다스름으로 시작하여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의 20여 분 산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산조가 현재 강백천류 대금산조로 전승되고 있으며 김동표·김동진 등에 의해 선율이 추가되면서 분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 음악적 특징 강백천류 대금산조의 특징은 네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 강백천류 대금산조는 남도계면조를 기반으로 한다. 강백천은 《남도민요》 <육자배기>를 대금으로 불기 시작하였고, 살풀이장단에 맞추어 불다보니 대금시나위가 되어 이 가락이 강백천류 대금산조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둘째, 강백천류 대금산조는 조를 바꾸는 변조나 중심음을 바꾸는 변청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진양조장단에서 우조로 시작하여 계면조로 진행하는 점은 다른 산조와 동일하나 이 부분을 제외하면 조나 청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아 시나위더늠 대금산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셋째, 강백천류 대금산조의 시김새는 음의 뒷부분을 꾸미는 긴 퇴성과 오른손의 화려한 잔가락처리가 돋보인다. 고음에서부터 저음까지의 긴 퇴성은 대금의 넓은 음역을 활용하며 슬픈 계면조의 느낌을 표현한다. 넷째, 강백천류 대금산조는 현재 사용되는 산조대금(전폐음 c)보다 장2도 높은 시나위 대금(전폐음 d)으로 연주한다.
○ 악기편성 대금 독주로 연주하며 장구 반주가 따른다.
강백천류 대금산조는 남도음악의 계면조 성음과 대금산조의 다양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육자배기>나 <흥타령>과 같은 계면조로 구성된 시나위 더늠의 강백천류 대금산조는 산조의 음악적인 모체가 되는 시나위의 영향력을 가장 많이 보여주는 음악이다. 이 산조는 변청·변조와 같은 음악적인 변화가 많지 않지만, 산조와 시나위가 분화되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강춘화, 「박종기와 강백천의 대금산조 비교」,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4. 김동표·최삼범·강백천, 『강백천류 대금산조』, 은하출판사, 1995. 김가람·이진원, 『대금산조』,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안성우, 「강백천 대금산조에 관한 연구」, 『한국전통음악학』 4, 2003.
정소희(鄭小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