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리 위에 덧입는 소매 없는 상의.
조끼는 개화기 이후 마고자ㆍ두루마기와 함께 남자 한복의 일습을 이루는 상의로 장식적ㆍ실용적 목적으로 착용하였다. 조끼의 형태는 서양식 조끼와 같지만 전통적 봉제방법과 한복 옷감을 사용하여 한복화된 대표적인 복식 중의 하나이다.
○ 쓰임 및 용도
조끼는 남자, 여자, 아동 등이 착용하는 중간 겉옷이다. 두루마기 대신 외출복으로도 입은 조끼는 남자복식의 경우 거의 필수복으로 자리 잡았다. 조끼는 마고자와 함께 신랑한복으로 착용되어 오다가 현재는 주로 농악복식, 무속복식 등 특수복식의 형태로 착용되고 있다. 또 현대 무대화 과정에서 조끼가 자주 활용되었다. 국립무용단의 창작공연인 ‘춘앵전 변주’에서는 전통 배자 형태를 모티브로 한 조끼형 상의를 도입, 움직임의 실용성과 미적 대비를 동시에 구현했다.
○ 형태
조끼의 형태는 서양복의 조끼와 거의 비슷한 형태로 앞길에 총 세 개의 주머니가 달렸고, 은이나 호박 같은 재료의 단추를 달았다. 여성은 남성과 다른 형태의 조끼를 착용하였는데, 겨울에는 토끼털이나 동물의 털을 댄 것을 입기도 하였다. 아동용 조끼는 주로 남아용이 많고 돌복으로도 착용되었으며, 길복을 기원하는 무늬나 문자로 금박을 하여 장식하기도 하였다.
조끼는 우리나라 고유의 복식에는 없었지만 실용성에 의해 새로 등장한 옷으로, 양복이 들어오면서 양복 조끼의 형태를 본떠 만들어 입게 되었다. 따라서 조끼에는 전통복식에 없는 주머니가 달려 있고, 서양식 단추가 복식에 더해지게 되었다. 조끼는 전통 복식과 양복을 잘 절충한 개량 상의로서 실용적인 개화 복식이며, 활동상의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한 개량이 이루어진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에 들어온 양복은 어떤 면에서 실용적인 면을 갖추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조선 사람들은 양복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으로 양복을 받아들였고 그런 내용이 조선옷의 개량에도 반영되었다. 즉 근대의 서양복 조끼는 폐쇄되었던 조선의 강제적 개국과 더불어 서양문물과 함께 소개되었다가 단추와 주머니의 실용성과 편리성으로 우리옷에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기능적 가치가 있다. 이처럼 조끼는 조선 시대부터 일상복과 예복의 중간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복식문화의 구조적 정교함과 계층적 질서를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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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리(馬兪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