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립(黑笠)은 입(笠)의 한 종류이며, 조선 시대 남자의 관모를 대표한다. 조선 시대 성인 남자는 집에 기거하거나 외출할 때 자신의 지위와 상황에 맞는 모자를 착용했고, 통칭하여 입자(笠子)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흑립은 평량자에서 초립을 거쳐 나타났으며, 직령, 도포, 창의 등의 편복포에 쓰는 남성의 기본적인 관모였다. 소재와 양태의 크기, 수식을 달리하여 폭넓게 착용되었다. 흑립의 종류에는 진사립, 음양사립, 음양립 등 이 있는데 대우와 양태를 싸는 종류에 따라 차별을 두었다. 흑립 위에는 꼭지처럼 꾸밈새를 하였는데, 이를 정자라고 하며 품위에 따라 금, 은, 옥, 돌 등으로 장식하였다.
○ 쓰임 및 용도
흑립은 외출할 때 뿐만 아니라 집에 기거할 때에도 직령, 도포, 창의 등과 같은 일상적인 포와 함께 착용하는 관모로 소재, 양태의 크기, 수식을 달리하여 폭넓게 착용되었다. 흑립의 기본적인 색은 검은색이지만 붉은 옻칠을 한 주립(朱笠)은 문신 당상관의 융복에 착용하였고, 흰색 포로 싼 백립(白笠)은 상복(喪服)에 착용하는 관모로 국휼(國恤)에 국민이 사용하여 상(喪) 중임을 나타냈다. 또한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士人)가 3년 상을 치르고 담제(禫祭)까지 가는 동안에 평량자 대신 쓰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도상 자료에는 세악수가 흑립을 착용한 것이 보이고, 남성 사당패는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흑립을 착용했다. 현재는 판소리나 산조 등 민속음악 공연이나 가면극 중 포도부장, 신주부 등이 착용하는 연주복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 구조 및 형태
흑립은 대우와 양태를 기본 구조로 하며, 흑립 위에 정자를 장식하고 다양한 재료의 갓끈을 아래에 부착하였다. 흑립의 구조는 대우와 양태로 되어 있다는 큰 틀에 있어서 변화는 없었으나, 대우의 고저(高低), 양태의 넓고 좁음[廣狹]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대우와 양태 위에 정자라는 장식품을 부착했으며, 갓을 고정하기 위한 역할을 기본으로 했던 갓끈도 장식적인 역할이 더해지면서 다양한 길이와 재료로 구성되었다. 또한 관직자의 경우는 옥성 등 귀한 재료로 된 입영을 착용하여, 갓끈의 재료에 따라 신분과 품위를 구별하기도 하였다.


○ 재질 및 재료
흑립을 구성하는 재료는 대나무(竹), 포(布)나 사(紗), 말갈기(馬鬃) 등이 있으며, 대나무를 아주 가늘게 쪼개어 대우와 양태를 만들고 그 위에 포(布)나 사(紗), 말갈기(馬鬃) 등으로 덮어 씌워 검정 옻칠을 했다. 흑립의 기본 형태 위에는 옷칠을 했고, 이 때문에 칠립(漆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흑립은 대우를 만드는 재료에 따라 말총이나 말갈기로 만든 것은 총모자(驄帽子), 죽사(竹絲)로 만든 것은 죽사립(竹絲笠) 이라고 했다. 죽사(竹絲)는 재료의 특성상 뻣뻣하여 흑립의 대우가 훼손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대나무보다 부드러우면서도 형태 고정이 잘 되는 말총으로 흑립 제작 재료가 점차 바뀌었다. 또한 흑립은 대우와 양태의 기본구성 위에 덧씌우는 재료와 색에 따라 진사립(眞絲笠), 마미립(馬尾笠), 저모립(猪毛笠), 죽사립(竹絲笠), 포립(布笠), 죽저모립(竹猪毛笠), 음양립(陰陽笠), 주립(朱笠), 백립(白笠) 등으로 나누어진다. 진사립(眞絲笠)은 대우와 양태를 최상품으로 하여 머리카락 보다 가는 두께의 말총이나 죽사를 4겹으로 엮은 후 대우와 양태를 고정시키는 것이며, 음양립(陰陽笠)은 말총으로 대우를 만들고 죽사(竹絲)나 견사(絹絲)로 양태를 만들어 이를 고정시키는 것이다. 포립(布笠)은 흑립 중 가장 하품에 해당되는 것으로 죽사(竹絲)로 양태를 만들고 그 위에 명주 천을 입힌 것이다. 흑립 위에는 꼭지처럼 꾸밈새를 하였는데, 이를 정자라고 하며 품위에 따라 금, 은, 옥, 돌 등으로 장식하였다.
○ 역사적 변천
흑립은 상고 시대부터 이어져오던 입(笠) 형태가 다양한 재료, 형태, 장식적 요소 등이 더해지면서 조선시대 흑립의 틀이 만들어졌다. 흑립의 형태 변천을 보면, 조선초에는 대우가 높고 양태가 좁았는데, 연산군(1495-1506) 대에는 대우가 둥글고 양태가 넓어졌다. 중종(1506-1544) 대에는 입제가 문란해지면서 대우가 높아졌고, 양태는 좁아졌다. 명종(1545-1567) 대에는 대우가 낮아지고, 양태는 매우 넓어졌다. 선조(1568-1607) 대에는 대우는 높고, 양태가 좁아졌으며, 인조(1623-1649) 대에는 다시 대우가 높고 양태가 넓은 모양의 입자인 큰 갓이 유행하였다. 숙종(1675-1720) 대에는 대우가 다시 낮아지고, 양태가 좁아졌으며, 정조(1777-1800) 대에 이르러 적절한 흑립의 크기가 정착되었다. 수평을 이루는 대우의 형태는 원형보다 완벽하고 위엄 있어 보이며, 완만한 곡선의 양태는 가장 이상적으로 발전한 입자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순조(1800-1834) 대에 와서는 양태가 다시 넓어져 직경이 70~80cm에 이르게 되었다가 개화기 시대에는 양태와 대우가 매우 좁고 작아졌다.
흑립은 우리 민족 고유의 입제이자 조선 시대 남자의 대표적인 관모로써, 남성용 전통복식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복식문화 유산이다.
배리듬(裵리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