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도
각 전(殿)과 궁(宮)의 별감, 사복시 거달(巨達, 마부)가 착용했다. 연주자 가운데는 조선전기의 가동(歌童)이 융복에 착용했고, 조선후기 내취가 황철릭에 착용했다.
○ 구조 및 형태
립(笠)의 기본 형태는 머리를 덮는 모자와 챙 부분인 양태로 구성된다. 초립의 모정은 평평하며 위는 좁고 아래가 넓은 원통형이며, 양태 부분은 흑립과 달리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며, 비교적 좁고 위로 약간 올라간 형태이다. 조선시대 갓의 발달 과정 중 패랭이에서 흑립으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에 위치한다.
○ 재질 및 재료
립(笠)은 소재나 색에 따라 명칭을 달리한다. 1447년(세종 29) 일품 양반 자제는 모두 진초립(眞草笠)을 쓰는데 정수리의 죽수(竹數)는 30 이하이고 평죽(坪竹)의 수는 14 이하로 하였으며, 그 외 양천은 모두 상초립(常草笠)을 쓰는데, 정죽의 수는 15이하이고 평죽은 7이하이며 감투를 쓴다고 함으로써 죽수가 신분을 구분하는 단서가 된다. 초립의 구조를 보면 모자 부분이 차양 부분보다 더 정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제작방법
초립은 기본적으로 대우와 양태로 구분된다. 초립은 정수리 부분이 평평하고 오히려 살짝 들어가 있으며 양태가 약간 올라가 있고, 특별한 수식은 없으며, 패영이 아닌 끈을 단다. 가동의 초립은 둥근 발립(鉢笠)의 형태이며 정수리에는 정자가 달려 있고 모정과 양옆에 조우(鳥羽) 두 개씩을 꽂고, 끈은 구슬로 되어 있다. 일반 초립과 가동이 착용하는 초립은 명칭이 같고, 대우와 양태로 구분된 형태는 같지만, 모정부분과 수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 착장법
조선 후기 내취가 황철릭과 함께 쓴 초립에는 호수를 꽂기도 하고 빼기도 하였으며, 영자가 끈으로 된 것도 있고 구슬로 된 것도 있다.

○ 역사적 변천
초립은 상고시대부터 사용되었다. 조선초기에는 사족부터 양천(良賤)까지 모두 착용하였다. 『경국대전』에는 선비의 초립은 50죽, 서인의 초립은 30죽으로 제한함으로써 신분에 따라 초립의 곱고 거침을 나타내는 날의 수를 달리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입제변증설’을 보면, 초립은 동자가 관례를 할 때 처음 쓰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조선 말에는 관례를 치른 어린 남자아이가 혼례를 올리기 전까지의 관모로 착용한다고 하여 ‘초립동(草笠童)’이라고 불렸다. 초립은 패랭이와 함께 상민의 쓰개로 착용하였다. 황초립은 『성호전집』에 따르면, 고려 말 자제위(子弟衛)에서 처음 사용하였으며, 지금 대내 별감이 황초립을 쓰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유제라고 하였다.
한편 악인(樂人)도 초립을 착용하는 경우가 있다. 『악학궤범』에 가동(歌童)이 융복에 주황초립을 쓴다고 했다. 이후 1778년(정조 2) 『일성록(日省錄)』에는 액정서 하례의 복식을 정하면서 무예별감은 전좌(殿座)와 거둥ㆍ능행과 교행에서 모두 철릭을 입고 황초립을 쓰며 호수를 착용하라는 하교가 내려졌다. 황초립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은 1650년(효종 즉위) 『(인조)국장도감의궤』 「반차도」에서 확인되며, 이후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반차도」에서도 확인된다. 조선후기 내취도 황초립을 착용했으며, 현재 <대취타>를 연주복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민주(李民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