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전(殿)과 궁(宮)의 별감, 사복시 거달(巨達)과 내취 등이 착용한 가는 풀이나 대오리를 엮어 만든 모자.
요약
초립은 누런 빛깔의 가는 대를 결어 만든 모자이다. 날의 수에 따라 사족은 50죽, 서인은 30죽을 사용하였으며, 흑립을 쓰기 전에 초립을 쓰므로 초립동(草笠童)이라고 불렀다. 『악학궤범』에는 가동(歌童)이 융복에 쓰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때 초립은 주황초로 만들고 끈이 있다고 하였다. 『만기요람』에도 무예청 소속 별감이 황초립에 호수를 꽂는다고 하였으며, 1650년(효종 즉위) 『(인조)국장도감의궤』 「반차도」에서 확인되며, 이후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반차도」에서 내취들이 황초립을 쓰고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 역사적 변천
초립은 상고시대부터 사용되었다. 조선초기에는 사족부터 양천(良賤)까지 모두 착용하였다. 『경국대전』에는 선비의 초립은 50죽, 서인의 초립은 30죽으로 제한함으로써 신분에 따라 초립의 곱고 거침을 나타내는 날의 수를 달리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입제변증설’을 보면, 초립은 동자가 관례를 할 때 처음 쓰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조선 말에는 관례를 치른 어린 남자아이가 혼례를 올리기 전까지의 관모로 착용한다고 하여 ‘초립동(草笠童)’이라고 불렸다. 초립은 패랭이와 함께 상민의 쓰개로 착용하였다. 황초립은 성호전집에 따르면, 고려 말 자제위(子弟衛)에서 처음 사용하였으며, 지금 대내 별감이 황초립을 쓰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유제라고 하였다.
한편 악인(樂人)도 초립을 착용하는 경우가 있다. 『악학궤범』에 가동(歌童)이 융복에 주황초립을 쓴다고 했다. 이후 1778년(정조 2) 『일성록(日省錄)』에는 액정서 하례의 복식을 정하면서 무예별감은 전좌(殿座)와 거둥ㆍ능행과 교행에서 모두 철릭을 입고 황초립을 쓰며 호수를 착용하라는 하교가 내려졌다. 황초립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은 1650년(효종 즉위) 『(인조)국장도감의궤』 「반차도」에서 확인되며, 이후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반차도」에서도 확인된다. 조선후기 내취도 황초립을 착용했으며, 현재 <대취타>를 연주복으로 전승되고 있다.
의의 및 가치
초립은 가는 풀의 줄기나 대오리로 엮어 만든 평량자(平凉子)형의 관모이다. 별감이나 가동의 경우 모정과 양옆에 삽우를 하고 있으며, 끈도 구슬 모양의 패영을 달고 있어 일반적인 초립보다는 장식이 많으며, 황초립의 특성상 눈에 잘 띄므로 의식이나 행사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