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변천
고종의 칭경예식 주무였던 장봉환이 예인들을 모아 1902년 12월 4일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戲)’라는 이름으로 첫 유료 공연을 개최했다. 소리광대들이 참여해 창극 위주의 공연을 펼쳐 대중들의 관심은 모았지만, 경영난과 사회적 비판으로 인해 1904년 폐지되었다. 2년후인 1906년에 김용제, 최상돈 등이 일본인의 자본을 유치해 복설했으나, '음란패속' 및 황실 소속 기관의 사적 영리 추구를 지적한 이필화의 상소로 혁파되었다. 1907년에는 관인구락부가 연희장으로 사용했고, 1908년 이인직 등 3인이 인수해 원각사(圓覺社)로 이름을 바꿔 창극 공연 및 신연극 『은세계』를 공연했으며, 1909년에 문을 닫았다.
한편, 이 시기 ‘협률사’라는 명칭은 서울의 극장과 별개로 순수하게 공연을 위한 전통연희단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이들 민간 협률사는 송만갑, 김창환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단장이나 출연자로 참여하여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공연했다. 이들은 명창들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예인들을 모아 조직되었으며, 일정한 거점을 두기보다는 전국의 장터를 찾아다니며 유랑극단의 성격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활동은 음반 취입과 더불어 판소리 등 전통 예술의 전국적 확산과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민수(金珉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