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2년(순조 22년)에 박심학이 박연의 유고에 시장, 신도비명을 더하고, 김조순이 쓴 서문과 김노경이 쓴 발문을 붙여 교서관에서 금속활자본으로 간행한 책이다.
난계선생유고는 박연의 12세손 박심학(朴心學, 1764~1836)이 박연의 시 8수, 소 39편, 잡저 2편, 이재(李縡, 1680~1746)의 서문이 포함된 가훈 17칙의 유고(遺藁)에, 홍계희(洪啓禧, ?-1771) )가 쓴 시장, 황경원(黃景源, 1708-1787)이 쓴 신도비명을 부록으로 붙이고,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이 서문을 쓰고, 김노경(金魯敬, 1766~1837)이 쓴 발문을 써서 1822년(순조 22) 교서관[芸閣]에서 간행한 1권 1책의 금속활자본이다. 1903년(광무 7)에 학부(學部)에서 박경하(朴景夏)의 발문을 추가하여 중간본(重刊本)을 간행했다.
〈표 1〉 『난계선생유고』 비교 정리표
심학본(心學本) |
경하본(璟夏本) |
윤하본(允夏本) |
1822년(순조 22) |
1903년(광무 7) |
1979년 |
난계선생유고 |
난계선생유고 |
문헌공난계선생문집 |
문헌공난계선생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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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계사, 오봉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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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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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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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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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계추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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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계선생유고서 |
난계유고서 |
난계선생문집서 |
김조순 |
김학진, 송태헌 |
김조순 |
문헌공난계선생문집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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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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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계유고목록 |
좌동 |
시 8수, 소 39편, 잡저 2편 조하의절(군신 조하의절, 왕세자 조하의절), 가훈 17칙 |
방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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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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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적 |
연시절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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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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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명-병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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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 맹하 예각활인 |
광무7년 계묘 중하 학부활인, 초강서원정액소 |
초강서원정액소 |
김노경 근발 |
김노경 근발 |
김노경 근발 |
월성 김태제 근발 |
손희철 근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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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손 경하 근발 |
17세손 윤하 근발 |
〈표 2〉 『난계선생유고』의 서・발・명・장
『난계선생유고』의 서・발・명・장 |
글쓴이 |
간지 |
비고 |
서문 |
풍고 김조순 |
上之 二十二年 孟夏 |
순조의 장인 |
가훈 서문 |
도암 이재 |
乙丑 五月 |
인현왕후의 조카(이모) |
시장 |
담와 홍계희 |
1767년(영조 43) 시장 |
이재의 문인 |
신도비명 |
강한 황경원 |
대제학 |
이재의 문인 |
발문 |
유당 김노경 |
이조판서 |
김정희의 아버지 |
○ 서지사항
- 발행: 1822년(순조22), 한성(漢城) 교서관
- 판종: 금속활자본
- 형태: 불분권(不分卷) 1책(冊),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 21.5×14.3㎝, 유계(有界), 10행(行) 20자(字), 주쌍행(註雙行)
○ 구성과 내용
난계선생유고는 서(序), 시(詩), 소(疏), 잡저(雜著), 부록(附錄), 발문(跋文)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서는 영안부원군 김조순이 박심학의 부탁으로 작성한 것이며, 제목은 ‘난계선생유고서(蘭溪先生遺藁序)’이다. 시는 5언 혹은 7언으로 된 한시 8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는 39편이 수록되어 있고, 제례악, 조회악, 아악기, 악현, 악률, 율관, 일무, 복식, 연주자, 악보 등 대부분 아악(雅樂)에 관한 것이다.
잡저는 조하의절(朝賀儀節)과 가훈(家訓)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하의절은 ‘왕세자 조하의절’과 ‘군신 조하의절’의 의례와 악무의 절차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이다. 조하의절의 세주에 “의(儀)는 예의(禮儀)이고, 절(節)은 악절(樂節)이다.”’라고 밝혔다. 가훈은 17칙(則)으로 되어 있고, 맨 앞에 이재가 쓴 십칠칙부서(十七則附序)가 있다. 이재는 「난계집」에 수록되어 있는 박연이 쓴 가훈을 읽었고, 박사량(朴師良, 1708~1772)의 요청으로 가훈의 서문을 썼다고 밝혔다. 17칙은 가족의 교육, 예의, 상장례 및 제례, 예법 등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록은 시장(諡狀), 신도비명(神道碑銘), 발문(跋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연은 단종 원년인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 당시 수양대군에 의해 파직된 후 고향인 영동으로 돌아와 1458년(세조 4) 생을 마감했다. 1748년(영조 24) 그의 후손과 학자들은 그의 음악적 업적과 인품을 기리기 위해 신도비를 건립했다. 신도비명은 황경원이 썼다. 박연은 1767년(영조 43)에 문헌공(文獻公)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고, 이 시호를 청하기 위해 홍계희가 시장을 썼다. 발문은 박심학의 요청으로 김노경이 썼다.
○ 역사적 변천
박심학의 할아버지 박사량은 박연이 1455년(세조 1) 7월 78살에 유배지 고산에서 후손에게 남긴 가훈만을 따로 수습하여 1745년(영조 21)에 도암(陶菴) 이재의 서문을 덧붙여 『가훈』을 간행했다. 『가훈』의 서문을 쓴 이재가 『난계집』을 읽었다고 했으나, 지금은 확인할 수 없고, 이를 통해 『가훈』 이전에 소략하게나마 이미 『난계집』이 집안에 전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박심학이 이를 토대로 서문과 발문을 붙여 1822년(순조 22) 교서관에서 금속활자본으로 난계선생유고를 간행했다. 그리고 1903년(광무 7)에 선생의 16세손 박경하(朴璟夏)에 의해 난계선생유고가 다시 간행되었다. 여기에는 김조순이 쓴 서문 대신 김학진(金學鎭)과 송태헌(宋台憲)이 각각 쓴 중간서(重刊序)가 있고, 권말에 박경하의 글이 추가되어 있다.
1979년 박윤하(朴允夏)에 의해 『문헌공난계선생문집(文獻公蘭溪朴先生文集全)』이 간행되었다. 이 책에는 난계선생유고에 수록되어 있는 글 외에 초상(肖像), 난계사(蘭溪祠) 및 오봉사(五峯祠) 전경, 효자비(孝子碑), 유묵(遺墨), 산도(山圖), 난계 추모가(蘭溪追慕歌), 연보(年譜), 사적(事蹟), 가장(家狀), 행적(行蹟), 연시절차(延諡節次), 초강서원청액소(草江書院請額疏)와 김노경의 발문 이외에 손희철(孫囍喆), 윤하(允夏)의 발문 등이 추가되어 있다.
〈표 3〉 『난계선생유고』 상소 39편
상소 제목 |
풀 이 |
실록에 실린 연월일 |
|---|---|---|
請頒行家禮小學三綱行實訓民五音疏 |
널리 가례와 소학 삼강행실을 가르치고 오음정성으로 풍속을 바로잡자는 상소 |
실록에 없음 |
請修 朝賀禮及禁用女樂疏 |
조하의 의례를 개수하고 아울러 여악의 사용을 금지하자는 상소 |
실록에 없음 |
請制律管疏 |
율관을 제작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定 廟朝正樂疏 |
종묘와 조회에 올바른 음악을 정하자는 상소 |
실록에 없음 |
請 祭享樂成告備疏 |
제향의 악을 완성하고 아악령을 두어 집례자에게 고하게 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正 祀享雅樂疏 |
사향의 아악을 바로잡자는 상소 |
세종 8년 4월 25일 |
請正 祀享樂律疏 |
사향의 악률을 바로잡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 廟樂用四成疏 |
묘악에 사성을 사용하자는 상소 |
세종 23년 1월 6일 |
請正 朝賀樂律疏 |
조하의 악률을 바로잡자는 상소 |
세종 13년 11월 5일 |
請 坐殿時樂備始終疏 |
전정의 예배에 왕이 의자에 앉고 설 때에 악을 시종 연주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21일 |
請石磬備造前姑用瓦磬疏 |
석경을 갖추기 전까지 잠시 동안 와경을 사용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笙匏依本制疏 |
생황의 재료인 박을 본래의 제도에 의거해 만들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加造方響疏 |
방향을 추가로 더 만들어야 한다는 상소 |
세종 13년 12월 25일 |
請改造塤制疏 |
훈을 옛 제도에 따라 바르게 고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改正祝制疏 |
축을 옛 제도에 따라 바르게 고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樂懸復古制疏 |
악현을 옛 제도대로 복수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舞佾依古制疏 |
일무를 옛 제도에 따르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擇登歌人疏 |
등가에 노래하는 사람을 가려 사용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武舞人勿雜以刑官之人疏 |
무무를 추는 사람 중 형관을 지낸 사람을 섞어 사용하지 말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用華樂及我 朝歌曲疏 |
당악을 화악속부로 고치고 아울러 우리나라의 가곡 가사를 사용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校正雅部樂疏 |
아부의 악을 교정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改正祭樂工人服飾疏 |
제사 때 입는 악곡의 복식을 개정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陶造土缶疏 |
토부의 악기를 분원에서 고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備造大鼓疏 |
대고를 고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易換雷鼓靈鼓疏 |
뇌고와 영고를 바꾸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改正雷鼓靈鼓路鼓之制疏 |
뇌고 영고 노고의 제도를 바로잡자는 상소 |
세종 23년 1월 6일 |
請堂上之樂用拊疏 |
당부의 악애 부를 사용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改造竹牘疏 |
대나무로 만든 독이란 악기를 고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改造建鼓疏 |
건고를 고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豫備樂架疏 |
악가를 미리 설비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21일 |
請管絃之工幷許除職疏 |
관현의 음악을 맡은 악공에게 벼슬을 주자는 상소 |
세종 13년 12월 25일 |
請堂下加設琴瑟歌工疏 |
당하에 금슬과 노래하는 공인을 설치하자는 상소 |
세종 14년 9월 3일 |
請 宗廟樂改用六句黃鍾疏 |
종묘악에 6구 황종을 고쳐 사용하자는 상소 |
세종 15년 1월 9일 |
請用軒架依古制疏 |
헌가의 악을 옛 제도에 따라 사용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21일 |
請 校正鍾磬疏 |
종경의 소리를 올바르게 교정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備鑄編鍾疏 |
편종을 주조하자는 상소 |
세종 12년 2월 19일 |
請使臣宴享勿用女樂疏 |
사신연향에 여악을 사용하지 말자는 상소 |
문종 즉위년(1450) 11월 22일 |
請復設歌童疏 |
다시금 가동을 설치하자는 상소 |
문종 즉위년(1450) 11월 22일 |
請印行樂譜疏 |
악보를 간행하자는 상소 |
문종 즉위년(1450) 11월 22일 |
〈표 4〉 『난계선생유고』의 「가훈」 –십칠칙-
순번 |
주요 내용 |
비고 |
|---|---|---|
1 |
생후 3〜4세가 되면 학업에 힘쓰게 하라. |
치가 |
2 |
형제, 친족 간에 후덕하게 하라. |
|
3 |
가정에서 처신은 화평하고 유순하게 하라. |
|
4 |
아내가 죽고 재취할 경우 전‧후실의 아들 다툼을 경계하라. |
|
5 |
후사가 양자할 경우 반드시 본종(本宗)에서 양자하라. |
|
6 |
집안 일가들 중에 가난하여 출가가 늦거든 서로 도와라. |
|
7 |
상례와 장례는 『주자가례』를 따르도록 하라. |
|
8 |
부모의 장사 지내는 일과 삼년상을 치르는 일은 유가의 법을 따르라. |
|
9 |
효도, 충성, 신의, 예의, 염치를 가정의 법을 삼고, 착한 일을 하라. |
|
10 |
가정에서는 삼현 가무를 가르치거나 소리 내지 마라. |
|
11 |
매나 개를 기르고 사냥하는 것을 삼가라. |
|
12 |
입은 화와 복의 출입구이니 항상 조심하라. |
|
13 |
집안 일가나 친구의 소첩 집에는 경솔히 드나들지 마라. |
|
14 |
여색은 명예와 절조에 관계되는 것이니 신중히 하라. |
|
15 |
연희나 환락 장소에 오래 머물지 말라. |
|
16 |
사헌부의 재판을 맡거든 신중하고 특별히 사족의 일은 말조심하라. |
근신 |
17 |
청렴하고 소박하게 하라. |
청렴 |
난계선생유고는 박연이 지은 시와, 후손에게 남기는 가훈 등 사적인 글과,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올렸던 소와 같은 공적인 글이 모두 수록되어 있어, 이를 통해 공사(公私)를 막론하고 그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소는 악무 관련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이 주로 수록되어 있어, 박연에 대한 평가 중 음악 이론가로서의 비중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인품이나 업적에 대한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시장과 신도비명 등이 수록되어 있어 사후 그가 어떻게 평가되었는지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난계선생유고는 박연의 사적인 측면과 공적인 측면, 사후에 그에 대한 평가 등 박연에 대한 전반적이고 다양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인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국조보감(國朝寶鑑)』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의(五禮儀)」
『의례경전통해시악(儀禮經傳通解詩樂)』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진씨예서(陳氏禮書)』
『춘관통고(春官通考)』
난계기념사업회, 『악성 난계선생』 제1집, 1994.
김세종·권오성 역주, 『난계선생유고』 서울:국립국악원, 1993.
성경린,《세종시대의 음악》 서울:세종대왕기념 사업회, 1985.
송망송, “세종대왕의 음악업적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21세기를 앞두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세종대왕탄신 600돌 기념학술대회, 1997.
송혜진, “세종조 음악문화를 통해 본 현대 국악의 미래”, 『세종대시대 문화의 현대적 의미』 성남: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
이장원, “관직으로 본 난계 박연의 음악 업적 연구-난계의 관직생활 중심으로-”,『한국음악연구』 제67집, 2020.
이재숙 외,『조선조 궁중의례와 음악』 서울: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이혜구, “세종조 음악문화의 현대사적 재인식”, 『세종조문화의 재인식』, 성남: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이혜구, 『한국음악논집』, 서울:세광음악출판사, 1985.
이혜구, “박연의 율관제작의 년대”, 『한국음악논총』 289〜301쪽.
장사훈, 『세종조음악연구』, 서울:서울대출판부, 1982.
한만영, “세종의 음악적 업적” 『세종조문화의 재인식』, 성남: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朝鮮王朝實錄音樂記事資料集(1)』, 1996.
김세종(金世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