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변천 과정
『옥중화』는 ‘옥(獄) 안[中]의 꽃[花]’이라는 뜻으로 옥에 갇힌 춘향을 비유한다. 『옥중화』는 이해조가 연재한 판소리 사설 가운데
장단 표기가 없는 작품이다. 일반적인 ‘창본’으로 분류하기에 어려우나, 사설에 내재하는 율격이나 구성 원리의 측면에서 판소리 음악과의 관련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옥중화』는 『매일신보』 연재 후 박문서관, 보급서관 등에서 단행본으로 나오기 시작해 1950년대 초까지 지속해서 간행되었으며, 20세기 전반에 출판된 활자본 『춘향전』의 약 85%가 『옥중화』 계통본에 해당할 만큼 그 영향력이 컸다.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의 영역본 『Choonyang』(1917),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1886~1934)의 일역본 『춘향전』(1921) 등 외국어 번역본이나, 이광수(李光秀)의 소설 『춘향전』(1925), 유치진(柳致眞, 1905~1974)의 희곡 『춘향전』(1936) 등 현대문학 작품의 저본이 되기도 했다. 김연수는 그의 《춘향가》 사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옥중화』의 내용을 주요하게 참고하였는데, 『옥중화』의 사설에 음악을 입히는 방식으로 《춘향가》를 확장한 것이다. 김연수는 배역을 구분하는 『옥중화』의 연극식 대사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춘향가와 판소리 사설을 정리했다.
한편, 〈옥중화〉는 1948년 10월 24일부터 일주일 동안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여성국악동호회의 창립 기념 공연으로 상연되었던 여성국극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여성국극 〈옥중화〉가 시기상 더 뒤에 나온 만큼, 신문 연재본 또는 활자본 『옥중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최초의 여성국극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옥중화〉 공연에서 성춘향 역은 김소희, 이몽룡 역은 임춘앵, 변사또 역은 정유색, 방자 역은 김경희가 맡았으며, 각색은 김무하, 작곡은 박녹주, 안무는 김소희, 연출은 김아부, 미술은 원우전(元雨田, 1895~1970)이 담당하였다.
○ 음악적 특징
이해조가 정리한 『옥중화』는 창과
아니리가 구분되어 있지 않고 별도의 장단 표기도 없으므로 판소리 창본과 동일하게 취급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박기홍조’라는 기록이 명확하게 남아있는 만큼, 이를 간과할 수도 없다. 이해조가 『옥중화』의 구술자로 소개한 박기홍은 『조선창극사』의 ‘박기홍(朴基洪, ?~?)’ 항목에 행적이 나타난다. 정노식(鄭魯湜, ?~1965)은 『조선창극사』에서 박기홍을
동편제 명창으로 분류하였으며, 이덕창(李德彰, ?~?)은 『일동타임쓰』라는 잡지 기사에서 그를 중고조(中古調)의 마지막 대가라고 평하였다. 박기홍이 《춘향가》에 특히 뛰어났으며 당대 국창(國唱)의 칭호를 들었던 명창이라는 점에서 이해조가 『옥중화』의 저본으로 ‘박기홍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비교 텍스트로 거론되었던 필사본 『박기홍조 춘향가』도 『옥중화』 전사본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박기홍조’가 실제 명창 박기홍이 부르는 《춘향가》를 참고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최근 일본 도쿄대 오구라문고(小倉文庫) 소장 『옥중화[춘향가 강연]』가 발굴됨에 따라 ‘박기홍조 춘향가’ 모본의 존재 가능성도 있다.
『옥중화』 텍스트에 판소리 사설 특유의 4․4조(또는 3․4조, 3․5조) 율격이 나타나는 데서도 독서물로서의 일반 소설본과 차별화되는 『옥중화』의 음악적 성격을 볼 수 있다. 등장인물의 대화가 “(도(道))”(이도령), “춘(春)”(춘향), “방(房)”(방자), “모(母)”(춘향모) 등으로 배역을 구분한 방식은 판소리 구연의 현장감을 높이는 효과를 발한다.
(春) 아니 그것 내사 싫소.
(道) 그러면 네 무엇 먹으려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꼭지 뗏뜨리고 강릉백청(江陵白淸) 주르르 부어 은사비(銀射匕)로 뚝뚝 찍어 씰랑은 버리고 붉은 점 한 점을 먹으려느냐?
(春)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매일신보』 1912.1.24.)
배역에 따른 대사 제시가 희곡의 일반적인 형식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판소리 분창 또는 창극 공연과의 관련성을 짐작해 볼 여지도 있다.
한편, 여성국극 〈옥중화〉의 경우, 여성국악동호회 회장이었던 판소리 명창 박녹주가 음악을 담당했던 데서, 작품의 음악적 기반을 전통 판소리에 두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판소리의 기존 창법을 보다 부르기 쉽고 듣기 편한 여성국극만의 창법으로 바꾸고, 전통 판소리 음악을 계승하기보다 춤, 연기, 무대 연출, 무대 매너 등 쇼나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볼거리를 극대화하였던 것은 여성국악동호회를 나와 여성국극동지사를 설립한 임춘앵이 새롭게 추구한 공연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공연 광고에서 홍보 문구로 내세웠던 ‘민족오페라’라는 수식어에는 여성국극을 민족주의적인 전통예술로 각인시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하고자 하였던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오페라’라는 서양 음악극의 명칭은, 〈옥중화〉의 차기작으로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번안한 〈햇님과 달님〉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그에 부합하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