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창극(女性唱劇), 국극(國劇)
여성 배우가 남녀 배역을 모두 소화하는 창극(唱劇) 또는 가무악극(歌舞樂劇)
여성국극은 출연 배우의 성별이 여성에 한정되는 창극 또는 가무악극으로, 여성 공연 집단의 전통 및 창극 공연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여성 공연 집단이 한국 전래의 춤과 노래를 토대로 연극을 해온 전통에 신파극 및 외국극의 영향이 더해지며 출현한 양식인 것이다. 1940년대 중반 남녀 혼성 창극에서 이루어진 남장여역(男裝女役) 시도는,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창극이 언제든 무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1940년대 후반 성립된 여성국극은 195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여성국극 재도약의 움직임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여성국극 배우의 삶과 예술, 주요 작품의 레퍼토리, 음악, 연출, 무대 등이 동시대 예술 및 콘텐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국극(女性國劇)은 ‘여성(女性)’만 출연하는 ‘국극(國劇)’을 지칭하는 용어로, ‘국극(國劇)’에는 1950년대에 우리 문화에 대한 애착과 정통성을 강조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해방 직후 아악과 민속악을 통틀어 ‘국악(國樂)’이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창극을 ‘국극’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에 여성국극을 ‘여성창극’이라고도 칭한다. 여성국극의 연원은 여성 공연 집단의 전통 및 창극 공연의 흐름과 연결된다. 농악의 잡색놀이나 가면극, 꼭두각시놀음 등 본래 전통극의 연행자는 대개 남성 광대였다. 솟대장이패, 굿중패, 남사당패 등 전문 연희패나 유랑예인집단의 인적 구성도 남성에 국한되었으며, 판소리 역시 19세기 중반 기생 금향선(錦香仙, ?~?) 같은 사례가 있기는 했으나 진채선(陳彩仙, 1847~?)의 등장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여성의 참여가 불가한 영역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무당ㆍ여사당패ㆍ관기 등이 여성 공연 집단의 전통을 계승해 왔으며, 근대 이후에는 각종 기생조합(권번)이나 극장에 소속된 기생이 그 뒤를 이었다. 광교기생조합ㆍ다동기생조합ㆍ신창기생조합ㆍ한남기생조합ㆍ평양기생조합 등이 주도한 기생조합연주회의 레퍼토리는 무용ㆍ음악ㆍ연극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판소리를 연극화한 〈춘향전〉ㆍ〈심청전〉이나 고소설을 각색한 〈홍문연연의〉ㆍ〈구운몽연의〉 같은 신작도 그 일부였다. 기생조합(권번)은 역사극이나 신파극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공연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점차 비중이 약화되었다. 다만 여배우로서의 기생이 남녀 배역을 모두 도맡아 하는 가무악극이라는 공연 양식의 측면에서 볼 때, 기생조합(권번)의 연극이 여성국극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1920년대 후반부터 신파극이나 유행가의 인기에 부응해 가극(歌劇)이 새로운 연극 양식으로 자리 잡았는데, 일본의 소녀가극단을 모방한 삼천가극단ㆍ소녀가극단ㆍ낭랑좌 등 여성가극단이 조직되었다. 이들 여성가극단은 기생조합연주회가 쇠퇴하는 틈을 메우며 여성 연극 단체의 맥을 이었고, 역시 여성만으로 구성된 여성농악단도 비슷한 시기에 조직되었다. 1940년대에는 일본의 소녀가극단을 대표하는 다카라즈카의 내한 공연이 이루어졌는데, 이들의 레퍼토리와 공연 방식이 당시 국내 공연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정리하면, 여성국극의 양식이 정립되는 데 노래와 춤의 화려한 쇼가 중심이 되는 일본의 다카라즈카 또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오페라ㆍ뮤지컬 등 서구식 음악극이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나, 전근대 시기부터 여러 여성 공연 집단이 축적해 온 예술적 역량이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기존의 남녀 혼성 창극에서 여성 배우가 남장을 통해 남성 배역을 소화하는 방식을 시도한 것도 여성국극의 연원과 연결된다. 박귀희(朴貴姬, 1921~1993)가 동일창극단의 1944년 〈일목장군〉 공연에서 일목장군 역을, 1945년 〈춘향전〉 공연에서 이도령 역을 맡아 호응을 얻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일창극단에서 남역을 소화한 경험이 있는 박귀희를 포함해 박녹주(朴綠珠, 1905~1979)ㆍ김소희(金素姬, 1917~1995)ㆍ임춘앵(林春鶯, 1924~1975) 등이 1948년 9월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고, 같은 해 10월 여성국극 〈옥중화〉를 공연했다. 판소리 명창인 박녹주와 김소희가 각각 작곡과 안무를, 일본에서 연극을 공부한 김아부와 김주전(金主傳, ?~?)이 각각 연출과 진행을 맡았으며, 전문 무대미술가였던 원우전도 제작에 참여했다. 성춘향은 김소희, 이몽룡은 임춘앵, 변사또는 조유색(趙柳色, ?~?)이 맡았다. 〈옥중화〉는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으나 여성국극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족오페라’라는 이름을 내걸었다는 점에서는, 여성국극을 민족주의적 전통 예술로 각인시키고 민족예술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했던 의도가 감지된다.
○ 역사적 변천 1949년, 여성국악동호회가 〈옥중화〉의 후속작으로 올린 〈햇님과 달님〉의 대대적인 성공은 여성국극이 기존의 남녀 혼성 창극을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 음악극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서양 오페라 〈투란도트〉를 번안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 대중의 시선을 끌었으며, 웅장하고 화려한 의상, 환상적인 무대 장치 등을 통해 시각적인 화려함을 제공하고 춤과 연기를 강화한 것도 판소리 위주의 기존 남녀 혼성 창극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었다. 여성국극의 흥행 가능성을 확인한 김주전은 같은 해 11월, 그 후편으로 〈황금돼지〉를 공연하며 여성국극동지사를 설립했다. 한편 여성국악동호회에서 독립한 임춘앵은 김주전으로부터 여성국극동지사를 인수해 임유앵(林柳鶯, 1913~1964)ㆍ박초월(朴初月, 1917~1983)ㆍ한애순(韓愛順, 1924~2014)ㆍ김진진(金眞眞, 1933~2022)ㆍ김경수(金敬洙, ?~?)ㆍ조영숙(曺英淑, 1934~ ) 등과 함께 1950년대 본격적인 여성국극의 시대를 열며 그 화려한 전성기를 주도하였다. 1952년 2월, 여성국극동지사 창단 공연 〈공주궁의 비밀〉 이후 〈반달〉ㆍ〈바우와 진주목걸이〉ㆍ〈청실홍실〉ㆍ〈산호팔찌〉ㆍ〈선화공주〉ㆍ〈여의주〉ㆍ〈무영탑〉ㆍ〈구슬과 공주〉ㆍ〈견우와 직녀〉ㆍ〈원본 춘향전〉ㆍ〈연정칠백리〉ㆍ〈귀향가〉ㆍ〈열화주〉 등을 꾸준히 발표하고 인기를 얻었다. ‘여성국극의 왕자’로 불렸던 임춘앵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만큼, 여성국극동지사는 ‘여성국악단 임춘앵과 그 일행’ㆍ‘임춘앵 여성국악단’ 등의 단체명을 사용했으며, 여성국극동지사 출신의 많은 배우들이 이후 독립하여 여러 여성국극 단체를 창립하였다. 1950년 김주전이 조직했다고 알려진 햇님국극단은 1952년 창립 3주년 기념 공연으로 〈쌍동왕자〉를 올리며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구슬공주〉ㆍ〈햇님과 달님〉ㆍ〈서동과 공주〉ㆍ〈진실로〉ㆍ〈금수레〉ㆍ〈바보온달〉ㆍ〈선화공주전〉ㆍ〈아라리〉ㆍ〈마의태자〉ㆍ〈쌍쌍곡〉 등이 주요 공연작이다. 김주전 사망 후에는 임춘앵과 더불어 남역 배우로 유명했던 김경애(金敬愛, 1928~?)가 대표로서 극단을 운영했으며, 김경애의 남편인 이원경(李原庚, 1916~2010)이 주로 연출을 맡았다. 한편 햇님국극단 단원이었던 박보아(朴寶娥, 1921~2013)ㆍ박옥진(朴玉珍, 1934~2004) 자매와 올케 조양금(趙良錦, ?~?)은 1953년 삼성여성국극단을 함께 창단하고, 1954년 〈꽃과 나비〉를 첫 공연으로 올렸다. 〈옥가락지〉ㆍ〈옥좌와 두 공주〉ㆍ〈야광주〉ㆍ〈태자궁〉ㆍ〈호동과 꽃신〉ㆍ〈사랑 실은 꽃수레〉ㆍ〈두견새 우는 시절〉ㆍ〈춤추는 쌍용도〉ㆍ〈동심초〉 등을 발표했으며, 박옥진의 남편인 김향이 이 여성국극단의 작가이자 연출가로 활동했다. 1954년에는 조금앵(曺錦鶯, 1930~2012)ㆍ조농선(趙弄仙, ?~?)ㆍ조농옥(曺弄玉, 1920~1971)ㆍ조농월(趙弄月)ㆍ조정례(曺錦禮) 등 다섯 자매가 중심이 되어 신라여성국극단을 조직했다. 여기서는 여성국극동지사, 햇님국극단 단원 출신으로 남역 배우로 활약했던 조금앵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주요 공연작은 〈해바라기〉ㆍ〈비취거울〉ㆍ〈일월고〉ㆍ〈새신랑〉ㆍ〈삼천궁녀〉 등이다. 1957년에는 임춘앵의 조카인 김진진과 김경수가 여성국극동지사에서 독립하여 진경여성국극단을 조직했다. 〈사랑탑〉을 창립 기념 공연으로 올린 후, 〈꽃이 지기 전에〉ㆍ〈언약〉ㆍ〈기약 없는 이별〉 등을 공연했다. 우리국악단의 경우 1951년 김연수가 조직한 남녀 혼성 단체이나, 1956년 조금앵을 영입하면서 여성국극 단체로 전환해 〈꼽추〉ㆍ〈남매별〉ㆍ〈무정 유정〉ㆍ〈신라의 별〉ㆍ〈원앙무〉 등을 발표했다. 그 외에도 새한국극단ㆍ낭랑여성국극단ㆍ화랑여성국극단ㆍ낭자국극단ㆍ여협ㆍ동명여성국극단ㆍ송죽여성국극단ㆍ아랑여성국극단ㆍ신신여성국극단ㆍ새봄여성국극단 등 다수의 여성국극 단체가 부침을 거듭하며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다수 여성국극 단체의 이합집산과 난립이 지속되는 상황은 결국 1960년대에 이르러 여성국극이 급격한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배경이 되었다. 그 외에 레퍼토리의 빈곤과 진부함, 전문적인 배우 양성 시스템의 미비, 영화 산업의 활성화와 대중 매체의 발달 등 내외부적인 요인도 여기에 영향을 주었다. 1962년 국립극장 산하의 전속 단체로 국립국극단이 창설되고 국극정립위원회가 결성됨에 따라, 여성국극이 남녀 혼성 창극의 ‘아류 혹은 변종’으로 취급되었던 문제도 있다. 이후 여성국극 재건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물론 그 사이 여성국극이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1970년에 녹음ㆍ제작한 성음제작소의 창극 〈콩쥐팥쥐〉, 1970~1971년 도미도 레코드사에서 녹음ㆍ제작한 국극 〈춘향전〉ㆍ〈장화홍련전〉, 국악창극 〈흥보전〉ㆍ〈심청전〉, 그리고 1982년에 녹음된 국극 〈바보온달과 평강공주〉ㆍ〈선화공주〉ㆍ〈콩쥐팥쥐〉 등을 통해 매체를 달리한 여성국극의 전승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라디오나 TV를 통해 여성국극 〈햇님달님〉ㆍ〈옥가락지〉ㆍ〈콩쥐팥쥐〉ㆍ〈춤추는 쌍용도〉ㆍ〈춘향전〉ㆍ〈선화공주〉ㆍ〈언약〉ㆍ〈달님〉ㆍ〈석동백〉ㆍ〈아라리〉ㆍ〈숙종과 장희빈〉ㆍ〈이차돈〉 등을 송출했던 것이 이와 같이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음반이나 방송이 아닌 무대로의 여성국극 복귀가 본격화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이다. 조금앵ㆍ조영숙ㆍ김진진ㆍ김경수ㆍ박미숙ㆍ이군자ㆍ홍성덕ㆍ김진수ㆍ이옥천ㆍ이소자ㆍ김금미 등이 한국여성국극예술단ㆍ서라벌국악예술단ㆍ한국여성국극협회ㆍ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ㆍ햇님여성국극보존회 등의 여성국극 단체를 조직하여, 〈바보온달과 평강공주〉ㆍ〈사랑도둑〉ㆍ〈설무랑의 비련〉ㆍ〈성자 이차돈〉ㆍ〈뺑파전〉ㆍ〈햇님 달님 별님〉ㆍ〈춘향전〉ㆍ〈별 헤는 밤(윤동주)〉ㆍ〈내 뜻은 청산이요(황진이)〉ㆍ〈서동왕자〉ㆍ〈자유부인〉ㆍ〈고구려의 혼〉 등을 공연했다. 한편, 조영숙의 제자인 박수빈과 황지영이 창립한 여성국극제작소는 현대 대중의 성향을 고려한 새로운 감각의 작품을 통해 여성국극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여성국극은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대중극이자 음악극 또는 가무악극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음악의 장단과 선율을 사용했으며, 반주음악도 아쟁ㆍ대금ㆍ가야금ㆍ거문고ㆍ피리(세피리)ㆍ양금ㆍ단소ㆍ장고ㆍ북 등 국악기 위주로 편성했다. 여성국극의 음악은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들뜬 듯한 소리 대목이 많고, 탁성과 무겁게 내는 발성을 하지 않으며, 계면조에서 꺾는 소리를 강하게 표현하지 않고, 잦은 클라이맥스 처리를 통해 선율 진행이 극적이고 다소 선동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러난다. 판소리 음악을 모체로 한다는 점에서는 창극과 유사하나, 정통 판소리 음악을 고수하기보다 대중의 취향을 고려한 ‘연극소리’를 지향했다는 차이가 있다. 남녀 혼성 창극에서 제기되는 ‘청’의 문제가 없기에, 그 소리가 더욱 곱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기도 했다. 일반 관객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사 전달력, 호소력이 뛰어난 것도 여성국극 ‘연극소리’의 특징이었다. 다만 이는 단체의 이합집산이 가속화된 시기, 출연진의 인적 구성에 기인하는 변화이기도 했다. 판소리 훈련이 거의 안 된 상태에서 연습생으로 단체 생활을 시작한 배우가 많았고, 연극 배우 출신으로 여성국극 단체에 들어간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판소리의 유통 기반이 약화된 상태였기에, 이러한 변화는 판소리 청취 훈련의 기회가 없거나 제한되었던 새로운 관객층을 여성국극으로 유입시키는 구실을 하기도 했다. 한편, 최근 여성국극은 소설, 만화ㆍ웹툰, 미디어아트,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대 문화의 창의성 발현에 기여하고 있다. 여성국극의 레퍼토리와 음악은 물론, 의상, 분장, 연출, 미술, 무대 등 여러 독자적인 요소도 다채롭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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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宋美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