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한성준의 조선음악무용연구회 공연 종목 중 하나로, 산대놀이와 해서 탈춤에서 내려오는 벽사의식무(辟邪儀式舞)적 〈상좌춤〉을 토대로 어린 상좌 중이 재주를 표현한 작품이다.
한성준(韓成俊, 1874~1941)이 《상좌무》 설명으로 일간지에 밝힌 민간 전래의 춤은, 산대놀이와 해서 탈춤에서 전승되어 온 <상좌춤>으로 파악된다. 가면극을 시작하는 첫 과장으로 벽사의 의식무를 통해 판을 정화하는 상좌춤 과장에서 춤 중심의 <상좌춤>이 추어졌다. <상좌춤>으로 벽사의 의식무를 시작하는 가면극은 서울·경기의 산대놀이 가면극과 황해도 탈춤이 있다. 《송파산대놀이》ㆍ《양주별산대놀이》ㆍ《퇴계원산대놀이》ㆍ《봉산탈춤》 등에서는 <상좌춤>이 있고, 《강령탈춤》ㆍ《은율탈춤》 등에서는 <사자춤>이 <상좌춤>과장에서 연행되고 있다. 《강령탈춤》 제1과장 <사자춤>에는 사자ㆍ마부ㆍ원숭이가 나와 춤을 추고, 제4과장에 <상좌춤>이 등장한다. 탈춤에서 <상좌춤>을 묘사한 사료로 강이천(姜彛天, 1769-1801)이 지은 한시 「남성관희자(南城觀戱子)」(1789)가 있다. 1778년 남대문 밖에서 연희된 본산대놀이를 보고 지은 것으로, 이중에 ‘평파갱전석(平陂更展席, 평평한 언덕에 새로 자리를 펼쳐) 승추무치소(僧雛舞緇素, 상좌 아이 깨끼춤 추는데)’라는 구절이 상좌춤을 묘사한 부분이다. 이 사료에서 산대놀이에 등장하는 어린 상좌승을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상좌중의 춤은 《퇴계원산대놀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상좌춤>과장에서 8-9세 정도의 어린 상좌중과 15-16세 가량의 상좌중이 나와 춤을 춘다. 대부분 하얀색의 탈과 고깔을 쓰고, 흰 장삼을 입고 빨간색의 가사를 어깨에 두르는데, 《은율탈춤》에서 상좌의 복식은 세 개의 꽃이 달린 흰 고깔을 쓰고 가사를 양쪽 어깨에 두르는 특징이 있다. 각 지역의 상좌춤은 의상과 춤꾼의 수, 장단과 춤사위 등에서 차이가 있으나, 동서남북 사방에 배례(拜禮) 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쳐 판을 정화하는 공통된 의미의 춤을 추고 있다. 상좌춤에 대한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한성준이 《상좌무》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7~8세의 천진스런 아이들의 재주를 설명한 한성준의 소개가, 단순히 재주 있는 아이들의 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 전래된 전통의 계승과 고증을 통해 아이들의 해학성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1938년 5월 2일 부민관 대강당에 올려진 ‘전조선향토연예대회(全朝鮮鄕土演芸大会)’ 중 ‘고전무용대회(古典舞踊大會)’에서 《상좌무》가 추어졌다. 『조선일보』 1938년 4월 23일자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공연 기사에서 《상좌무》에 대해 ‘민간에서 전해오는 춤에서는 가장 종교적 색채가 잇는 춤이다. 발과 팔의 놀림이 실로 기묘하다. 그런데 이 상좌무를 마터추는 세 소녀는 금년 일곱 살여덜살 난 어린아이들이다. 비록 나히는 어리지만 그 재조가 놀라워서 귀여웁고 영리하고 탐스러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번네번 찬타네할 것이다.’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이 실렸다. 이때 출연자는 조효금(趙孝金), 김재분(金再粉), 한입분(韓立粉)이었다. 두 달 뒤, 조광회 주최 부민관에서 개최된 ‘고전무용대회(古典舞踊大會)’에도 《상좌무》가 추어졌는데, ‘모다 일곱살난 천진스러운 아가씨들이 나삼(羅衫)을 길게 입고 송낙(송라(松蘿)을 기피 쓰고 법고를 치며’ 추는 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조선일보』 1938년 6월 19일) 이상의 설명과 사진을 통해 《상좌무》는 장삼에 가사를 둘렀는데, 한 명은 백색 장삼을 입고 두 명은 흑생 장삼을 입었다. 탈을 쓰지 않고 머리에 고깔을 썼으며, 법고를 치면서 추는 춤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세 명의 소녀가 나란히 춤추었는지 대형을 만들어 추었는지는 알 수 없다.
《상좌무》는 한성준이 일제강점기에 흩어졌던 산대놀이와 해서 탈춤의 고증과 더불어 민간 전래의 우리 춤을 집대성하여, 전통적 방법론으로 재해석하고, 창작한 작품으로 유추할 수 있다. 당대 뿐만 아니라, 후대에 이어지는 새로운 전통의 재창출로서 의미가 깊다고 여겨진다. 특히 전통적 해학성과 벽사진경의 의미를 어린 학생들의 재주와 흥을 통해 표현했다는 점에서 다양한 층위의 레퍼토리를 구성할 수 있었다.
전경욱, 『한국의 가면극』, 열화당, 2007. 김영희,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활동에 대한 연구」32, 『대한무용학회지』, 2002. 성기숙,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설립배경과 공연활동 연구」, 『한국무용연구』32·3, 한국무용연구학회, 2014. 윤중강, 「무척 잘했음에도 매우 안타까웠던 이유: 서울춤연구시리즈 1. 묵은 조선의 새 향기」, 『댄스포스트코리아』2024.09. 한성준, 「고수 오십년」, 『조광』, 조선일보사, 1937. 4. 「고전무용대회 조선특산품전람회기념 전조선향토연예대회」, 『조선일보』1938. 4. 23. 「현황(眩恍)․찬란(燦爛)한무아경(無我境) 고전무용대회 수재현(遂再現)」, 『조선일보』1938. 6. 19.
박선욱(朴羨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