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악보에서 윗줄의 선율은 앞서 제시한 아악부 피리보 〈삼현환입(三絃換入)〉의 제1장 두 장단 선율이며, 이는 《표정만방지곡(삼현영산회상)》 중 〈가락덜이〉에서 이어 연주할 때 연주하는 선율이다. 아랫줄의 선율은 정재 반주로 사용하는 《함녕지곡》의 도입 선율이다. 이처럼 도입부 선율에는 차이가 있으나, 《함녕지곡》의 개별 악곡의 장별 구성과 장단, 음계는 《삼현영산회상》과 동일하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연주된 《함녕지곡》은 연주 목적에 따라 악기 편성에 차이가 있었다. 1924년 이왕직아악부가 교토에서 공연한 궁중무용 《장생보연지무》와 《연백복지무》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된 《함녕지곡》은 피리, 대금, 해금, 장구, 북 등으로 구성된 여섯 명의 삼현육각 편성이었다. 반면, 1928년 유성기 음반(Victor49802A)으로 제작된 감상용 《함녕지곡》은 향피리 다섯 명, 대금 다섯 명, 당적 두 명, 해금 다섯 명, 장구 한 명, 좌고 한 명, 박 한 명으로 이루어진 큰 규모의 관악합주 형태였다. 이처럼 정재 반주와 감상 연주라는 목적에 따라 다양한 편성으로 연주되었던 《함녕지곡》은 오늘날에도 국립국악원 정악단을 통해 그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
◯ 역사적 변천 및 현황 《함녕지곡》은 《삼현영산회상》에 포함된 일부 곡을 단독 또는 연이어 연주할 때 사용된 아명이다. 《삼현영산회상》은 본래 《영산회상》의 한 갈래로, 피리 2인, 대금 1인, 해금 1인, 장구 1인, 북 1인으로 이루어진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되었다. 이 편성은 조선후기 군영 악대인 세악수의 편성에서 유래했으며, 궁중뿐 아니라 지방 관속기관(관아, 군영), 회갑연, 삼일유가 등 민간의 각종 행사에서도 행진ㆍ춤ㆍ노래 반주에 널리 활용되었다. 삼현육각 음악은 구전심수로 전승되어 문헌 기록이 드물고, 악곡 명칭도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8세기 말 편찬된 거문고 악보 『유예지』에는 〈군악유입타령〉ㆍ〈군악타령〉ㆍ〈삼현회입〉 등의 명칭이 등장하며, 이를 통해 현악기로 연주하는 《영산회상》은 활발히 연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현영산회상》은 18세기 무렵부터 궁중 연향의 정재 반주 음악으로 채택되며, 삼현육각 편성뿐 아니라 더 큰 편성으로도 연주된 것으로 보이며, 그 전통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로 이어진다.
다만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 악보에는 《함녕지곡》이라는 이름이 따로 수록되어 있지는 않다. 이는 《함녕지곡》이 《삼현영산회상》을 구성하는 악곡 일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한편 《삼현영산회상》은 이왕직아악부의 필률보(觱篥譜)ㆍ해금보(奚琴譜)ㆍ대금보(大笒譜) 등에서는 《표정만방지곡》이라는 아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함녕지곡》이라는 악곡명은 경성방송국의 방송곡 목록과 유성기 음반 그리고 이왕직아악부원의 공연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이른 시기의 관련 자료는 1928년 이왕직아악부원이 녹음한 유성기 음반〈Victor49802 宴禮樂 咸寧之曲(管) 三絃換入〉(1928)이다. 이 곡은 춤 반주 음악으로도 널리 연주되었으며, 이왕직아악부 소속 연주자뿐 아니라 민간의 삼현육각 악사들에 의해서도 연주되었다. 예를 들어, 1935년 11월 15일, 피리 연주자 강학수가 대금의 이충선, 해금의 김인호와 함께 라디오 방송에서 〈삼현도드리〉, 〈타령〉, 〈취타〉, 〈군악〉을 연주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연주에서는 《함녕지곡》이라는 아명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이는 《함녕지곡》이라는 명칭이 이왕직아악부 내부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된 용어였음을 보여준다.
진윤경(秦潤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