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사〉는 굴원이 정계에서 쫓겨나 강남에 머물며 집필한 작품이다. 창강(滄江)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깨친 바를 집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정에서 추방되어 초조히 강가를 방황하는 굴원이 어부의 물음에 답하여 이 세상의 오탁(汚濁)에 물들지 않으려는 깨끗한 자기의 의지를 말하는데, 은자(隱者)인 어부는 이 세상의 청탁(淸濁)에 구애받지 마라 하며 〈창랑가(滄浪歌)〉를 부르면서 떠나간다는 내용이다.
굴원의 〈어부사〉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송서로 불렸는지는 알 수 없고 『청구영언』 등 기록에만 남아 있고 현재는 거의 불리지 않는다.
○ 개요
〈어부사〉는 중국 초나라 시인 굴원이 지은 〈어부사〉를 소리하듯이 읽는 송서이다. 송서는 산문으로 된 글을 낭송조로 부르는 것을 이르며, 오언이나 칠언으로 된 한문시를 낭송조로 부르는 시창(詩唱) 혹은 율창(律唱)과 대비된다.
○ 음악적 특징
송서는 주로 경기와 서도지역에서 많이 부르는데, 경기지역에서는 경기민요 창법과 서도식 창법이 혼재되어 있고, 서도지역에서는 서도식 창법으로 부른다. 오늘날 송서 형태로 〈어부사〉가 거의 불리지 않기 때문에 음악 형식이나 선법, 장단 등을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긴 사설로 된 가사 내용을 슬픈 느낌을 주는 간단한 곡조에 얹어서 불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이유로 서도식 창법으로 글 읽듯 읊조렸다고 본다. 송서는 시김새도 절제된 형태로 쓰이고, 일정한 형식이나 장단이 없고 자유롭게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송서는 반주가 필수적이지 않다. 반주를 곁들일 때에는 주로 대금과 같은 관악기 하나만 사용하고, 정해진 가락 없이 소리에 맞춰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방식으로 반주한다.
○ 역사 변천 과정
송서는 20세기 전반기에 전문 음악인들에 의해 불리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되었다. 당시 출판된 가사집이나 잡가집, 그리고 유성기 음반 목록 등을 살펴보면 현재는 전승되지 않은 다양한 송서가 수록되어 있어 당시 유행하던 가창 양식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만 하더라도 송서를 즐기는 향유층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는데, 전통사회가 붕괴되면서 송서 문화도 약화되었다. 1960년대까지도 면면히 이어져왔으나 최근에는 전문 음악인들에 의해 연주회장에서 불리는 경우조차 흔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양한 송서 악곡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삼설기〉ㆍ〈짝타령〉ㆍ〈등왕각서〉ㆍ〈추풍감별곡〉 등이 불리고, 〈어부사〉는 불리지 않는다.
○ 노랫말
원문 |
해설 |
굴원(屈原)이 기방(旣放)에 유어강담(遊於江潭)하고 |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가와 못가에서 노닐며 |
어부 견이문지왈(見而問之曰) |
어부가 그를 보고 물으며 말하기를 |
굴원(屈原)이 왈(曰) 거세개탁(擧世皆濁)이어날 |
굴원이 말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흐려 있는데 |
어부왈(漁夫曰) 성인(聖人)은 |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
굴원(屈原)이 왈(曰) 오문지(吾聞之)니 |
굴원이 말하기를 내 들으니 |
어부(漁夫) 완이이소(莞爾而笑)하고 |
어부는 빙그레 웃으며, |
※ 노랫말 출처: 하응백, 『창악집성』, 휴먼앤북스, 2011.
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