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모양의 관모는 조선전기 처용무를 구경하는 행사인 관처용(觀處容)에서 무동은 착용하는 구리[銅]로 만든 동연화관(銅蓮花冠)이 먼저 있었다. 19세기 이후 연화대무를 추는 동기가 착용한 연화관은 관처용 때 무동이 착용한 동연화관과 착용시기와 상황 뿐 아니라 연꽃의 방향, 형태, 재료도 다르지만, 어린 무용수의 머리 위에 연꽃을 씌워 장식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 쓰임 및 용도
연화대(蓮花臺)를 추는 동기가 착용하는 관모는 1887년 『(정해)진찬의궤』까지는 조선 전기부터 이어져오던 방식대로 합립을 썼으나, 5년 뒤인 1892년 『(임진)진찬의궤』부터는 연화관으로 바뀌었다.


이후 1901년 『(신축)진찬의궤』ㆍ1902년 4월과 11월의 『(임인)진연의궤』의 복식도(服飾圖)에서도 연화관으로 그려져 있고, 《신축진찬도병》 등의 궁중기록화에서도 연화관의 착용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893년과 1901년에 간행된 『여령각정재무도홀기(女伶各呈才舞圖笏記)』에서도 연화대무 동기는 “蓮花冠”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개항기와 대한제국기에는 연화관을 머리에 썼다. 최근의 공연에서는 조선전기 『악학궤범』과 조선후기 의궤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합립을 쓰고 붉은색 단의 혹은 초록색 단의에 보로를 입은 차림으로 연화대를 공연하고 있다.
○ 구조 및 형태
연화대무 동기의 연화관은 머리 위에 연꽃을 얹은 모양이고 관의 양쪽 옆으로 잔잔한 무늬가 있는 끈 장식을 드리웠다.
○ 재료 및 제작방법
동기의 연화관 재료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지만 『(임진)진찬의궤』 악기풍물 기록에 의하면 연화관 한 개를 만드는 가격은 10냥이었다. 당시 동기의 화관(花冠) 한 개 제작비용은 50냥으로, 연화관의 다섯 배가 들었다. 그리고 연화대무 동기 복식은 연화관 한 건, 은개구리비녀를 갖춘 첩지[接只銀蛙簪具] 한 건ㆍ자적색 비단 댕기[紫的禾紬唐只] 두 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부터 연화관의 좌우에 좁고 길게 늘어뜨린 끈은 자적색 비단으로 만들고 금박으로 무늬를 장식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역사적 변천
궁중잔치에 관련된 의궤를 보면, 19세기 말부터 <연화대>를 추는 동기들이 장미꽃을 꽂은 합립 대신 연꽃 모양의 연화관을 착용하였다. 그러나 현재 연화대 동기 역할을 하는 무용수는 연화관 대신 『악학궤범』부터 1887년 정해진찬 때까지 착용되었던 합립을 쓰고 단의를 입은 차림으로 공연하고 있다.
궁중정재에서 연꽃은 정재의 주제나 무대배경으로 사용될 뿐 아니라 복식에 있어서도 자주 나타난다. 무동의 복식 중 부용관(芙蓉冠)은 연꽃을 그린 쓰개이고 동연화관은 연꽃의 형태를 그대로 표현한 쓰개이다. 고려시대에도 연행된 연화대는 연꽃으로 세상에 나온 아리따운 동녀(童女) 둘이 군왕의 덕(德)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머리에 연화관을 쓴 동기가 큰 연꽃 속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면 연꽃의 색과 형태가 연결되는 효과가 있다.
박가영(朴嘉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