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무(佾舞)는 국가의 제례와 연례에서 일정한 수의 무원(舞員)이 가로와 세로 대열을 맞추어 추는 의례무이다. 문무(文舞)와 무무(武舞)의 두 갈래가 있으며, 주재자의 신분과 참석 여부에 따라 규모와 형식이 달라진다. 일무는 본래 고려 때 송(宋)에서 전래한 아악(雅樂)의 춤이다. 조선 초기 세종은 속부(俗部)의 음악에 맞게 일무를 새롭게 만들고 연행하게 하여 아악과 속악을 위한 일무가 각각 존재했다. 일무를 추는 것은 신과 사람, 임금과 신하가 질서 있게 소통하고 화합한다는 의례적 의미를 지닌다.
고대 주(周)에서 연원한 일무(佾舞)는 국가 제례와 의례에서 열 단위의 줄[佾] 구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주례(周禮)』와 『예기(禮記)』 「악기(樂記)」에는 팔일(八佾)·육일(六佾)‧사일(四佾)‧이일(二佾)의 일무가 국가 제례의 위계와 권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주나라 제례 춤의 체계와 의미는 당(唐)‧송(宋)을 거쳐 고려에 전해졌다. 고려는 예종(睿宗) 때 송에서 전래한 대성아악(大晟雅樂)을 통해 국가 의례에 필요한 문무(文舞)와 무무(武舞)의 체계를 정립했다. 특히 태묘(太廟)와 사직(社稷)‧원구(圜丘) 제사 등 대사(大祀)와 중사(中祀)에서 주로 일무를 연행하였다. 이를 통해 국가 의례에서 권위와 질서를 표현하는 기능이 계승되었다. 이러한 유입 과정을 통해 고려는 주나라 제례의 전통을 바탕으로 문무·무무 체계와 질서 있는 행렬 춤인 일무를 정착시켰다. 그리고 후대 조선으로 이어져 의례무 전통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 개요
일무는 고려부터 현재까지 국가 의례인 제례와 연례에서 연행되는 춤의 일종이다. 무원(舞員) 64명 혹은 36명(또는 48명)이 가로와 세로의 대열을 이루어서 추었다. 고려의 일무는 아악(雅樂) 체계의 외래 춤인데, 조선의 세종(世宗)은 속부(俗部)의 일무도 창제하여 연행하도록 했다. 일무는 문인(文人)으로서 갖춘 위엄과 덕망을 표현하는 문무(文舞)와 무인(武人)으로서의 전공(戰功)을 상징하는 무무(武舞)의 두 갈래의 하위 요소를 갖는다. 또한 제례를 주재하는 이(황제, 제후)의 신분과 그 주재자가 직접 참석하는지의 여부(친행, 섭행)에 따라서 무원의 규모를 달리 적용하였다. 일무는 국가 제례와 연례에서 신과 사람, 임금과 신하가 질서 있게 소통하고 화합한다는 사상적 의미를 담고 있다.
○ 개념 적용의 범주
일무 개념의 적용 범주는 의례, 형식, 음악·무용, 정치·이념, 현대적 영역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첫째, 의례적 범주에서 일무는 종묘·문묘 제례를 비롯한 국가적 제사에 사용되며, 팔일무[八佾], 육일무[六佾], 사일무[四佾], 이일무[二佾] 등으로 구분되어 제사의 격식과 위계를 드러낸다. 이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악학궤범(樂學軌範)』 등 제도적 문헌에 규정되어 있어 국가 의례의 핵심 형식으로 기능하였다. 둘째, 형식적 범주로서 일무는 가로 대열인 ‘일(佾)’을 기본 단위로 삼아 무원의 수와 배열(排列)을 정형화한다. 8×8, 6×6(8), 4×4(8), 2×2(8) 등 가로×세로 배열의 규모에 따라 무원 수가 달라지며, 이는 왕조의 권위와 제사의 격을 상징하였다. 또한 일무는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로 나뉘어 각각 문덕(文德)과 무공(武功)을 표현하였다. 셋째, 음악·무용 범주에서는 아악(雅樂)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걸음걸이[步], 손동작[作], 무구(舞具) 사용 및 장단이 통합되어 정형화를 이룬 춤으로서 예악사상(禮樂思想)의 실현을 보여준다. 넷째, 정치·이념 범주에서 일무는 군왕의 권위와 조종 숭배, 유교적 질서 구현을 상징하며, 중국 예제의 수용과 조선에서의 제도화 과정을 반영한다. 다섯째, 현대적 범주에서는 국가무형유산 제도 속에서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및 사직제례악(社稷祭禮樂),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과 함께 보존‧전승되고 있다. 특히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아울러 국가 행사나 국제 축전 등에서 집단미와 의례미를 강조하는 공동체 공연예술로 재해석되며, 전통예술 교육을 통해 정체성을 계승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이처럼 일무는 단순히 제례용 춤에 한정되지 않고, 예악사상과 정치적 이념, 그리고 현대적 공연예술과 교육적 가치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과 범주로 확장된다.
○ 용도 및 무용적 기능
일무의 본래 용도는 국가 제례와 연례에서 군왕과 조종(祖宗)의 위엄을 드러내고, 예악(禮樂)의 질서를 구현하는 데 있었다. 고려와 조선에서 일무는 종묘·문묘 제례를 비롯한 국가 제사의 핵심적 절차에 사용되었다. 제사의 규모와 격식에 따라 팔일무(八佾舞), 육일무(六佾舞)를 구분했다. 팔일무는 천자(天子)에 해당하는 황제에게, 육일무는 제후인 고려와 조선의 왕조를 위해 사용함으로써 예제(禮制)의 질서를 반영했다. 따라서 일무는 단순한 춤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의례적 상징을 체현하는 행위였다.
무용적 기능의 측면에서 보면, 일무는 대열을 중시하는 집단무로서 균형·정제·합일의 미학을 구현한다. 무원(舞員)들은 가로줄 단위인 ‘일(佾)’을 따라 정연하게 배열되고, 일사불란하게 발과 손동작 및 공간적 신체 방향을 맞추어서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표현보다는 집단의 조화를 중시한다. 이는 곧 예악사상(禮樂思想)의 핵심 가치인 질서와 조화를 춤으로 가시화하는 것이다. 또한 일무는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로 나뉘어, 문무는 덕과 학문을, 무무는 무공과 위엄을 상징한다. 이처럼 춤사위 하나하나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음악과 함께 제례의 장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현대적으로는 특히 종묘제례 일무가 국가무형유산 및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전승과 교육의 측면에서 무용적 기능이 확장되었다. 제례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엄숙한 의례무로 기능하지만, 공연무대에서는 집단적 조형미와 상징성을 강조하여 전통예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 역사적 변천 및 현황
일무는 중국 주(周)나라의 제례 의식에서 기원하여 고려 예종(睿宗) 11년(1116)에 송(宋)나라로부터 도입된 뒤, 조선과 대한제국을 거쳐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고려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아악(雅樂)으로 연주되는 악장(樂章)에 맞추어 춤을 추었으며, 6열 6행의 36인의 일무를 춘 것이 시초였다. 의종(毅宗) 대에 이르러서는 6열 8행, 즉 48인의 육일무(六佾舞)로 변화되었고, 이러한 형식이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일무는 종묘대제(宗廟大祭), 사직대제(社稷大祭), 석전(釋奠) 등 국가 제사의 핵심 의례로 정착하였다. 고려의 전례를 계승하여 6행 8열의 육일무가 사용되었으나, 1464년(세조 10) 정월부터는 종묘와 영녕전에서 6행 6열의 육일무로 정비되었다. 사직 및 석전에서는 아부(雅部)에서 아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일무를 추었다. 문무(文舞)인 <열문지무(烈文之舞)>와 무무(武舞)인 <소무지무(昭武之舞)>로 짝을 이루어 아부 제사에 두 춤[二舞]를 올렸다. 이는 유교적 덕성과 무공을 상징하는 의례적 장치로 기능하였다.
세종(世宗, 1418~1450)은 종래의 아악 일무가 중국적 색채가 강하여 조상들이 생전에 향유하던 음악과는 괴리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향악(鄕樂)과 고취악(鼓吹樂)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제례악과 일무를 제정하였다. 이때 마련된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와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는 속악 계통의 일무로, 오늘날 종묘제례악 연행 전통의 기원이 되었다.

조선 초기 <보태평>과 <정대업>은 제사에 사용되기에 앞서 회례연(會禮宴)·사신연(使臣宴)·음복연(飮福宴) 등 국가 연향에서 의례의 춤으로 연행되었다. 1464년 세조(世祖)의 시책에 따라 종묘제례에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말 대한제국 시기에는 국가 제사의 위계에 따라 일무의 규모가 달라졌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적 격식에 맞추어 종묘·영녕전·사직대제·원구단 제사에서 팔일무(八佾舞)를 추었다. 다만 석전제에서는 중사(中祀)의 위계에 맞추어 육일무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1908년(순종 2) 일본의 강압으로 사직단과 원구단 제사가 금지되었다. 1910년 병합 이후 종묘와 영녕전 제사에서의 일무는 육일무로 격이 낮추어졌다. 반면 석전제는 1928년 가을부터 팔일무로 격을 높여 연행되는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제도적 변동은 일제가 조선의 제례를 축소·왜곡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이왕직아악부의 전통을 잇는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국악사양성소와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 일무를 전승하였다. 그리고 국가무형유산 제도 아래에서 (사)일무보존회 등의 단체가 주체가 되어 활발히 전승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일무는 종묘대제, 사직대제, 석전대제 등 국가무형유산 공개행사 때 모두 팔일무를 연행하고 있으며, 각 의례의 격식과 상징을 드러내는 춤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한 종묘제례 일무는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시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국제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울러 공연예술과 교육 현장에서도 집단적 합일미 또는 통일미와 의례적 상징성을 전승하는 중요한 매개로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일무는 고려 도입 이후 시대적 변천을 거쳐 국가 의례의 상징적 춤으로 정착하였으며, 일제강점기의 시련을 넘어 오늘날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제례무로서 의례적·문화적 의미를 확장하며 전승되고 있다.
종묘, 사직, 석전 등 국가 제례에서 추어지는 일무는 천지인(天地人) 사상 중 ‘사람’의 역할을 상징한다. 제례 대상인 신(神)이 강림하여 사람들의 정성을 받아 즐기고 되돌아가기까지의 제례 공간에서의 일들은 질서를 중요시하는데, 여기에는 국가와 백성의 태평안락(太平安樂)의 복(福)을 기원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일무는 질서와 조화를 중시하는 집단적 춤으로서 유교적 세계관과 국가적 의례 문화로서의 의의와 상징적 가치를 지닌다.
『고려사(高麗史)』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대한예전(大韓禮典)』
『세조실록(世祖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
『예기(禮記)』
『주례(周禮)』
이종숙(李鍾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