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1930년대부터 모든 연구자는 한결같이 만석중놀이는 사월초파일에 노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것이 저녁에 그림자극으로 놀던 것인지, 시간과 관계없이 낮에도 놀던 것인지와 관련해서는 진술이 엇갈린다. 또한 이것이 절에서 벌어진 것인지 시장과 같은 공개적인 공간인지 그 자세한 기록은 없다. 다만 김재철의 기록에 따라 “대개 담(垣) 구석에 붕(棚)을 설(設)하고 연출하는 것이지만, 어느 때에는 시장 중앙에서 꼭두각시극과 병연”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절차와 구성
1983년 복원한 만석중놀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1) 등의 행렬(장면의 시작과 끝에 만석중의 몸짓), 2) 십장생 등장 → 퇴장(화청), 3) 다시 등의 행렬, 4) 용과 여의주의 겨룸(운심게작법), 5) 등의 행렬(범종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공연시간에 따라 이 구성에 가감이 있을 수 있다. 1), 2), 5)번만으로 구성할 수도 있고, 1), 2), 4), 5)로 구성할 수 있다. 1990년대의 영상을 보면 1), 2), 4), 5)의 구성으로 연행되는데, 이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등의 행렬
〈범종소리〉가 들리면 우측 편에 만석중 인형이 뚝딱거리며 손을 낸다. 이 소리를 시작으로 탑등이 무대의 가운데에서 떠오르고, 그 양옆으로 연등, 원등, 각등이 등장한다. 이내 《화청》이 들리면서 각각의 등들이 퇴장한다.
2) 십장생 등장 → 퇴장(화청)
계속해서 《화청》이 불리면서 모든 연등이 퇴장하면, 우측 가장자리에 서 있던 만석중의 ‘딱딱’ 거리는 소리를 신호로 십장생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먼저 해가 등장한다. 다음으로 달ㆍ물ㆍ바위ㆍ구름ㆍ소나무ㆍ불로초ㆍ거북ㆍ학ㆍ노루가 차례대로 등장한다. 잠시간 《화청》만 들리며 정지했다가 만석중의 ‘딱’ 소리를 신호로 하나씩 사라진다.
4) 용과 여의주의 겨룸(운심게작법)
《화청》이 끝나면 범종이 울리고, 만석이 ‘딱’ 소리를 낸다. 이후 〈범종소리〉에 목어가 등장하고, 이내 〈목어소리〉가 들린다. 목어의 형상물 2개가 좌, 우에 각각 등장하여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이내 독창으로 ‘〈운심게〉’의 첫구절인 “운심공양진언(運心供養眞言)”을 부르면 곧 큰 잉어가 헤엄치듯 돌아다닌다. 〈운심게〉의 첫 구절이 끝날 무렵 용이 등장하며, 2구 “원차향공편법계(願此香供遍法界)”는 계속해서 독창으로 길게 빼서 부른다. 그러나 3~5구 “보공무진삼보해(普供無盡三寶海) 자비수공증선근(慈悲受供證善根) 영법왕세보불은(令法往世報佛恩)”은 제창으로 길게 빼지 않고 일음일자식으로 읽듯이 부른다. 소리가 끝나면 태징과 태평소 연주가 이어지고, 1인이 나와서 막 앞에서 〈작법무〉를 춘다. 〈운심게〉의 〈작법무〉이므로 ‘〈운심게작법(運心偈作法)〉’이라 부른다. 흰장삼, 가사, 고깔을 쓰고 양손에는 연꽃을 한 송이씩 들어 소위 〈나비춤〉을 춘다. 〈나비춤〉이 끝나면 〈바라춤〉이 이어진다.
5) 등의 행렬(범종소리)
놀이의 처음처럼 법종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만석중 인형이 내는 ‘딱’ 소리에 맞추어 탑등, 연등, 원등, 각등이 등장하며, 모든 등이 등장하면 탑등을 중심으로 다른 등들이 탑돌이를 하듯 원형으로 돈다.
○ 악·가·무 특징
만석중놀이에 등장하는 음악은 2막에서 십장생 등장했다 퇴장할 때 부르는 《화청》(회심곡)과 4막에서 용과 잉어의 여의주 다툼에 〈운심게(運心偈)〉의 두 가지이다. 사실 1930년대 기록들에서는 실제 어떤 음악이 존재했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심우성이 복원한 음악은 바로 양산 통도사 경봉 스님의 증언에 의한 것이며 실제 1983년 복원공연에서는 《화청》과 〈운심게〉를 일응 이재호 스님이 맡았다.
만석중놀이에서 부르는 《화청》은 회심곡류 《화청》으로 “걸청걸청 지심 걸청”으로 시작하는데, 1983년 일응 스님이 부른 가사를 심우성이 채록해놓은 바가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주로 ‘왕생극락’을 비는 내용이다.
○ 복식·의물·무구
1983년 심우성이 복원한 만석중놀이의 무대는 가로 6m, 세로 3m 50cm였다. 이중 영화의 스크린처럼 그림자가 비추는 곳은 가로가 4m, 세로는 1m 80cm이다. 지면으로부터 1m 50cm 정도에 그 스크린의 하단이 위치하도록 하여 그림자를 조정하는 사람이 서서 공연할 수 있게 했다. 전통시대에 광원으로는 횃불을 이용했지만, 이 당시에는 무대공연이었기에 후면과 양 측면에 조명기구를 배치하였다.
만석중놀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구는 만석중인형이다. 1933년 김재철은 만석중 인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삽화 또한 남겨서 그 이해를 도왔다. 얼굴은 호류(瓠類)로 만들고 몸은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무릎, 허벅지, 몸통, 팔이 분리된 것을 끈 장치로 연결하여, 그 끈을 잡아당기면 다리가 말리며 머리를 치고, 팔은 몸통을 쳐서 ‘딱딱’하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린다는 점이다. 현재도 이와 원리는 똑같이 구현되고 있다. 다만 옛날과 달리 얼굴 부분도 나무로 만든다.
1983년 심우성이 복원한 만석중놀이는 5막 구성으로 현재까지도 그 구성이 이어지고 있다. 이때 막마다 등장하는 모형물들이 있는데, 1, 3, 5막에는 탑등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원등, 각등, 연등의 모형물이 등장한다. 각 모형물의 모양은 검은색 두꺼운 종이를 이용하여 만들고, 빛이 투과될 곳은 오려내어 색지를 바른다. 그리고 각 상단에는 장대를 연결하여 이를 통해 움직임을 만든다. 2막에서는 십장생이 등장한다. 해ㆍ달ㆍ구름ㆍ소나무ㆍ불로초ㆍ노루ㆍ학ㆍ물ㆍ거북이ㆍ바위가 그것이다. 큰노루의 경우에는 뒷다리를 분리제작 하여 움직일 수 있도록 부착한 뒤 장대를 하나 더 연결하여 뛰노는 형상을 연출하기도 한다. 4막에서는 용과 잉어가 등장한다. 용의 경우는 가로 길이가 매우 길기 때문에 4개의 장대로 연결하여 두 명의 사람이 조종한다.
○ 역사적 변천 과정
이 놀이의 기록은 1933년 발간된 김재철의 『조선연극사』부터 나타난다. 심우성이 1970년대 남사당패 출신의 남형우, 양도일, 그리고 통도사의 경봉 스님이 목격했던 만석중놀이를 종합하여 1983년 문예회관(현재의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4월 24일부터 5월 3일까지 1일 1회로 1차 발표회를 하였다. 2차 발표회는 1984년 5월 8일 해인사 대강당에서, 3차 발표회는 1985년 국립극장 야외무대에서 했다. 1986년에는 오사카 국제인형극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오사카 국립분라쿠극장[國立文樂劇場]에서 공연을 하였다. 현재 만석중놀이는 (사)만석승희보존회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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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金亨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