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안지악(肅安之樂)
《경모궁제례악(景慕宮祭禮樂)》 중 진찬(進饌)에 사용하던 음악과 노래(악장)
〈혁우곡(赫佑曲)〉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正祖)의 생부(生父)인 사도세자(思悼世子)와 그 부인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신위(神位)를 모신 경모궁(景慕宮)의 제례에서 세 번째 절차인 진찬에 사용했던 음악과 악장(樂章)이다. 〈숙안지악(肅安之樂)〉 이라고도 한다. 악장은 사언(四言) 4구이며, 음악은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진찬악인 〈풍안지악(豊安之樂)〉을 축소하여 만들었다. 악현(樂懸)은 헌가(軒架)를 쓰고, 일무(佾舞)는 추지 않는다
정조는 즉위 원년(1776) 생부인 사도세자의 사당을 수은묘(垂恩廟)에서 경모궁(景慕宮)으로 이름을 바꾸고 개축을 명하였으며, 그 사당에 사용할 제례를 위하여 《경모궁제례악》을 제정하였다. 《경모궁제례악》의 세 번째 진찬 곡인 〈혁우곡〉의 악장은 대제학(大提學) 이휘지(李徽之)가 사언(四言) 6구로 처음 지었으며, 순조 9년(1809) 대제학 남공철(南公轍)에 의하여 현재와 같은 사언 4구로 개작되었다. 음악은 《종묘제례악》의 《보태평》 중 〈풍안지악〉을 축소하여 만든 것으로, 〈유분곡(有芬曲)〉 및 〈아례곡(我禮曲)〉과 음악은 같고 악장만 다르다.
○ 역사 변천 과정
고종(高宗) 때인 광무(光武) 3년(1899) 사도세자와 홍씨가 장조(莊祖)와 헌경왕후(獻敬王后)로 추존(追尊)되며 신위가 종묘(宗廟) 영녕전(永寧殿)으로 합사(合祀)되어, 〈혁우곡〉을 포함한 경모궁 제례는 더 이상 거행하지 않는다. 《경모궁제례악》을 감상용 악곡으로 축소하여 연주할 때 〈혁우곡〉은 네 번째 곡으로 연주한다.
○ 악대 및 악기 편성 〈혁우곡〉을 포함한 《경모궁제례악》의 악대(樂隊)는 당상(堂上)의 등가와 당하(堂下)의 헌가(軒架)로 나뉘어 배치되었고, 절차에 따라 헌가와 등가가 번갈아 연주하였다. 그중 〈혁우곡〉은 헌가가 연주하였다. 일무는 추지 않는다. ○ 음악적 특징 《경모궁제례악》은 당악(唐樂) 양식인 《종묘제례악》을 발췌해 만들었으므로 기준음인 황종의 음높이는 C4이다. 〈혁우곡〉은 《종묘제례악》의 〈풍안지악〉을 축소해 만들었으므로 음계는 〈풍안지악〉과 같은 황(黃:C4)ㆍ태(太:D4)ㆍ고(姑:E4)ㆍ중(仲:F4)ㆍ임(林:G4)ㆍ남(南:A4)ㆍ응(應:B4)의 황종궁 7음음계이다.
(1) 『경모궁의궤』(1783)에 수록된 이휘지의 〈혁우곡〉 악장(사언 6구) 아성기비(我牲旣備) 우리의 희생(제물)을 준비해 두어 우등우두(于登于豆) 등과 두에 담았나이다. 유번유적(有燔有炙) 번과 적을 갖추고 소관화주(簫筦和奏) 소와 관을 조화롭게 연주합니다. 시향시선(是享是宣) 이를 흠향하시고 마땅히 여기사 자손기우(子孫其佑) 우리 자손을 도우소서. (2) 『금릉집(金陵集)』(1815)에 수록된 남공철의 〈혁우곡〉 악장(사언 4구) 아성기비(我牲旣備) 우리의 희생(제물)을 준비해 두어 우등우두(于登于豆) 등과 두에 담았나이다. 시향시선(是享是宣) 이를 흠향하시고 마땅히 여기사 자손기우(子孫其佑) 우리 자손을 도우소서.
〈혁우곡〉을 포함한 《경모궁제례악》은 국왕으로서 정조의 음악관과 생부를 추모하는 마음이 담긴 악가무(樂歌舞)이며,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 초기까지 제례악의 양상과 변화를 보여 주는 무형문화유산이다. 〈혁우곡〉은 《종묘제례악》 중 〈풍안지악〉을 축소하여 만든 것이어서, 기존 악곡에서 새로운 악곡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 중 하나를 보여 준다.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 『경모궁의궤』 『금릉집』 『속악원보』 『시악화성』 『정조실록』
김영운, 『국악개론』, 음악세계, 2015. 김종수, 「경모궁 제례악 연구」, 『동양음악』 18, 1996. 김종ㆍ·이숙희, 『역주 시악화성』, 국립국악원, 1996. 서인화, 『역주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 립국악원, 2009. 송지원, 『정조의 음악정책』, 태학사, 2007. 임미선, 『조선조 궁중의례와 음악의 사적전개』, 민속원, 2011. 장사훈, 『증보 한국음악사』, 세광음악출판사, 1986.
홍순욱(洪淳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