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선도무(獻仙桃舞), 헌반도(獻蟠桃), 반도(蟠桃), 천도(天桃), 여무(女舞), 선관무(仙冠舞)
고려 시대부터 전하는 당악정재의 하나로, 신선의 복숭아를 바치며 장수를 송축하는 춤
헌선도는 신선의 복숭아를 바친다는 뜻으로, 고려 시대부터 전하는 당악정재이다. 선도(仙桃)는 삼천 년에 한 번 열리는 신선의 복숭아를 상징하는데, 이를 은쟁반에 담아 잔치의 주빈에게 올려 장수를 송축하는 춤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왕실의 생신잔치 때나 각종 연향에서 기녀와 무동이 공연했다.
헌선도의 기원에 관한 『(을묘)정리의궤』(1797)의 기록에 따르면, 중국 송나라 때의 사곡(詞曲) 중에 〈선려궁왕모도(仙呂宮王母桃)〉라는 곡명이 있었는데, 고려조에서 모방하여 <헌선도곡(獻仙桃曲)>을 지어 송축의 음악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고려 시대 왕의 생일잔치 때에 헌선도가 공연되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1167년(의종 21) 4월 11일에 의종의 생일잔치가 연흥전(延興殿)에서 열렸을 때, 헌선도와 <포구락(抛毬樂)> 등을 공연하였고, 연등회 때에도 헌선도가 공연되었다. “십오일에 등불놀이를 구경하니…일천 년에 한번 맺는 열매는, 선모가 드리는 벽도(碧桃) 일곱 알이로다”라는 치어를 최자(崔滋, 1188~1260)가 지었는데, 십오일 등불놀이는 연등회이며 선모가 드리는 벽도 일곱 알은 헌선도 정재를 의미한다. 선도는 서왕모 여신이 관리하는 반도원이라는 복숭아 정원에서 딴 것으로, 이곳의 복숭아나무는 3천 년 만에 꽃이 피고 다시 3천 년 만에 열매를 맺으며 그것을 한 개라도 먹으면 1만 8천 살까지 살 수 있다고 전해졌다. 고려 시대에는 정월 7일에 집집마다 서왕모의 초상을 그려 장수를 기원하는 풍속이 있었다. 헌선도는 조선 시대를 거쳐 대한제국 때까지 일부 변화만 있을 뿐 거의 그대로 전승되었고, 장수를 기원하는 왕실의 잔치에서 자주 공연되었다. 지방관아에서는 헌반도(獻蟠桃), 반도(蟠桃), 천도(天桃), 여무(女舞), 선관무(仙官舞)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20세기 초반에는 기생조합을 통해 헌선도가 전승되었다. 1912년에 단성사(團成社)에서 강선루 일행의 공연에 헌반도가 포함되었고, 1913년 9월 8일에 고종의 62세 생신을 축하하여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 잔치에서 광교기생조합과 다동기생조합의 기생이 헌선도를 공연했다. 『조선아악(朝鮮雅樂)』에 따르면, 이때의 춤 지도는 아악사인 김영제(金甯濟, 1883~1954)와 함화진(咸和鎭, 1884~1948)이 맡았다. 현대에 와서 헌선도 정재는 무대 예술로 재탄생했다. 김천흥은 헌선도를 안무 및 지도했는데, 1979년 3월 6일-29일까지의 김매자무용발표회를 위해서였다. 국립국악원 주최로 1981년 10월 27일에 열린 ‘궁중무용발표회’에도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이 재현하여 구성한 헌선도가 공연되었으며, 이후 국립국악원 무용단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내용
헌선도는 좋은 시절에 선계에서 궁궐로 내려온 서왕모가 잔치의 주빈에게 불로장생을 얻을 선도를 바치는 내용이다.
○구성
헌선도는 창사의 비중이 크며, 창사를 부르는 사이에 춤이 삽입되었다. 도입부에서 왕모, 좌우 협무(左右挾舞)와 각종 의물을 든 무용수가 등장하고 죽간자를 든 무용수가 진구호를 한다. 진행부에서 선도를 바친 선모가 창사를 하고 춤춘다. 이어서 잔치 주인공이 불로장생을 얻은 기쁨을 좌우 협무가 춤으로서 표현한다. 종결부에서는 죽간자를 든 무용수가 퇴구호를 하고 모두 퇴장한다.
○구조
헌선도의 주요 무용수는 선모의 역할을 하는 왕모(王母)와 좌우에서 협무의 역할을 하는 두 명, 등장과 퇴장을 이끄는 죽간자 두 명이다. 그 밖에『악학궤범』의 초입배열도에 의물을 든 기녀는 스물한 명으로, 개 세 명, 인인장 두 명, 용선 두 명, 봉선 두 명, 작선 두 명, 미선 두 명, 정절 여덟 명이었다.
○주요 춤사위
헌선도 정재에서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춤사위는 선도를 바치는 동작이다. 『고려사』「악지」에서는 악관이 선도반을 받들어 어린 기녀 한 사람에게 주고, 어린 기녀가 그것을 왕모에게 전하였다. 『악학궤범』에는 기녀가 선도반을 받들고 왕모의 오른쪽으로 나가 서쪽을 향해 꿇어앉아 왕모에게 드리는 내용이 더해졌다. 헌선도의 왕모는 서쪽 선경에서 온 서왕모라는 것이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악학궤범』의 왕모헌도도(王母獻桃圖)에 그 대형이 그려졌다.
선모가 선도를 바치고 〈일난풍화사〉를 창사한 다음에 본격적인 춤이 진행된다. 선모는 대열을 벗어나지 않고 빙빙 돌며[周旋] 춤추다가 다시 북향하고, 이어 좌우협무가 북향하여 춤추는데, 선도를 얻은 즐거움이 춤으로 나타났다.
헌선도 창사는 큰 변화 없이 고려부터 대한제국까지 지속되었고, 부분적인 변화만 있었다. 무동이 공연할 때는 죽간자의 구호가 생략되기도 했다.
헌선도의 악장은 아홉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① 죽간자가 부르는 진구호(進口號), ② 왕모가 부르는 치어, ③ 왕모와 협무가 부르는 「일난풍화사(日暖風和詞)」, ④ 왕모와 협무가 부르는 「낭원인간사(閬苑人間詞)」, ⑤ 왕모가 부르는 「여일서장사(麗日舒長詞)」, ⑥ 협무가 부르는 「동풍보난사(東風報暖詞)」, ⑦ 왕모가 부르는 「해동금일사(海東今日詞)」, ⑧ 협무가 부르는 「북포동완사(北暴東頑詞)」, ⑨ 죽간자가 부르는 퇴구호이다. 진구호에서는 천년 만에 열리는 아름다운 과실인 선도를 받들고 만복의 상서를 바치고자 이곳에 왔다고 했으며, 창사에는 선도를 받을 만한 조건에 관해서도 언급되었다. 나날이 덕을 밝히는 임금이어야 하고, 순임금처럼 팔장끼고 있어도 태평하게 나라를 다스릴만한 통치력이 있어야 했다.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선계까지 임금의 덕이 훌륭하다는 소문이 날 정도가 되어야 서왕모가 태평성대에 대한 보답으로 선도를 주는 것이었다. 즉, 불로장생을 얻을만한 훌륭한 인물이 되시라는 뜻이 창사 안에 내포되었다. [죽간자 구호] 邈在鰲臺, 來朝鳳闕. 막재오대, 내조봉궐. 奉千年之美實, 呈萬祿之休祥. 봉천년지미실, 정만록지휴상. 敢冒宸顔, 謹進口號. 감모신안, 근진구호. [죽간자 구호] 멀고 먼 오대(鰲臺, 신선이 사는 곳)에 계시다가 대궐 찾아와 안부 여쭐 적에 천년에 한 번 여는 아름다운 열매 받든 것은 만 가지 복의 좋은 상서(祥瑞)를 바치고자 함이라, 감히 용안을 뵈옵고서 삼가 구호(口號)를 올립니다. [선모 치어] 昌辰嘉會賞春光, 盛事當年億上陽. 창신가회상춘광, 성사당년억상양. 堯顙嘉瞻天北極, 舜衣深拱殿中央. 요상가첨천북극, 순의심공전중앙. 歡聲浩蕩連韶曲, 和氣氤氳帶御香. 환성호탕연소곡, 화기인온대어향. 壯觀太平何以報, 蟠桃一朶獻千祥. 장관태평하이보, 반도일타헌천상. [선모 치어] 태평성세, 아름다운 잔칫날 봄빛을 즐기나니 성대한 행사에 그 옛날 상양궁(上陽宮, 당 고종 때의 연회용 궁궐)이 떠오르네. 우리 임금님, 요임금 같은 용안이라 백성들 기뻐 하늘의 북극성처럼 바라보고 우리 임금님, 순임금 같이 입으시고 대궐에서 팔짱을 끼고 앉으셔도 나라가 다스려지네. 환호성 울려 퍼져 아름다운 음악을 잇고 온화한 기운이 어려 향기를 품고 있으니 태평성세의 거룩한 광경을 무엇으로 보답하리오? 반도(蟠桃,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복숭아) 한 가지로 온갖 상서를 바칩니다. [창사] 「미전사(尾前詞)」 日暖風和春更遲, 是太平時. 일난풍화춘갱지, 시태평시. 我從蓬島整容姿, 來降賀丹墀. 아종봉도정용자, 내강하단지. 「미전사(尾前詞)」 따스한 날 바람 부드럽고 봄날 길어지니 태평시절이지요. 나는 봉래도(蓬萊島, 신선이 사는 섬)에서 맵시를 가다듬고 대궐 뜰에 내려와 하례를 올립니다. 「최자사(嗺子詞)」 東風報暖到頭, 嘉氣漸融怡. 동풍보난도두, 가기점융이. 巍峩鳳闕起鰲山, 萬仞爭聳雲涯. 외아봉궐기오산, 만인쟁용운애. 梨圓弟子齊奏新曲, 半是塤篪. 이원제자제주신곡, 반시훈지. 見滿筵簪紳, 醉飽頌鹿鳴詩. 견만연잠신, 취포송녹명시. 「최자사(嗺子詞)」 봄바람 이르는 곳마다 따뜻함을 전하니, 아름다운 기운이 갈수록 무르녹네. 높디높은 궁궐에 산대(山臺) 우뚝 솟아 그 높이 만 장이라 구름에 닿을 듯. 이원(梨園)[掌樂院] 악공들 일제히 새 곡을 연주하니, 흙으로 만든 나팔과 대나무로 만든 젓대, 소리가 잘 어울리네.* 자리 가득 고관(高官)들 보았더니 취하고 배불러 녹명시(鹿鳴詩)[임금과 신하가 잔치할 때 부르는 노래]를 읊조리네.
* 원문의 훈(塤)은 흙으로 만든 나팔, 지(篪)는 대나무로 만든 젓대. 서로 소리가 잘 어울린다.
「서자고사(瑞鷓鴣詞)」 海東今日太平天, 喜望龍雲慶會筵. 해동금일태평천, 희망용운경회연. 尾扇初開明黼座, 畵簾高犈罩祥煙. 미선초개명보좌, 화렴고권조상연. 梯航交湊端門外, 玉帛森羅殿陛前. 제항교주단문외, 옥백삼라전폐전. 妾獻皇齡千萬歲, 첩헌황령천만세. 封人何更祝遐年, 봉인하갱축하년. 「서자고사(瑞鷓鴣詞)」 우리나라 오늘 태평시절 아니런가? 기쁨에 차서 용운(龍雲, 임금과 신하)의 경사로운 잔치를 바라보네. 미선(尾扇)[정재(呈才)에 쓰이는 부채처럼 생긴 물건]이 좌우로 열려 임금님 자리를 밝히고 화렴(畵簾, 그림을 그린 발) 높이 걷자 상서로운 연기 피어나네. 산 넘고 바다 건너 사람들 대궐 문 앞에 몰려들고 섬돌 앞에는 옥이며 비단이 무더기무더기 쌓여 있네. 첩(妾, 이 노래를 부르는 仙母)이 임금님 천만년 장수를 비오니 옛날 화(華) 땅 지키던 사람 요임금의 장수 빌던 일 어찌 다시 필요하리오? [죽간자 구호] 蘞霞裾以小退, 指雲路以言旋. 염하거이소퇴, 지운로이언선. 再拜階前, 相將好去. 재배계전, 상장호거 [죽간자 구호] 구름과 노을로 지은 옷을 여미고 조금 물러나 구름길을 따라 돌아가려 하나이다. 섬돌 앞에서 두 번 절하고 함께 어울려 떠나렵니다. - 원문 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1』 번역: 강명관
『고려사』「악지」에서 헌선도의 반주음악은 〈회팔선인자(會八仙引子)ㆍ〈헌천수만(獻天壽慢)〉ㆍ〈헌천수령최자(獻天壽令嗺子)〉ㆍ〈금잔자만(金盞子慢)〉ㆍ〈금잔자령최자(金盞子令嗺子)〉ㆍ〈서자고만(瑞鷓鴣慢)〉ㆍ〈서자고만최자(瑞鷓鴣慢嗺子)〉ㆍ〈천년만세인자(千年萬歲引子)〉등 당악을 연주했다. 고종대의 『정재무도홀기』에서 헌선도의 반주음악은 당악과 향악을 함께 썼는데, 〈보허자령(步虛子令)〉ㆍ〈여민락령(與民樂令)〉ㆍ〈향당교주(鄕唐交奏)〉를 연주했다.
고려 시대 헌선도 기녀는 검은 장삼[黑衫]에 붉은 띠[홍대(紅帶)]를 둘렀으나, 조선전기에는 큰 잔치에서는 붉은 옷[단장(丹粧)]을 입고 여러 장식을[잡식(雜飾)] 했으며, 소규모 잔치에서는 흑장삼에 남저고리를 입었다. 조선후기 『(을묘)정리의궤』에서 헌선도의 복식은 화관을 쓰고, 황초단삼(黃綃單衫)에 홍초상(紅綃裳)을 입고, 흑단금루수대(黑緞金鏤繡帶)를 두르고, 양손에 오색한삼을 끼었다.
선도반(仙桃盤)과 선도탁(仙桃卓)은 주요한 무구이다. 복숭아[도(桃)] 세 개는 나무로 만들고, 가지와 잎은 구리로 만들어 은반(銀盤)에 담는다. 선도반을 올리는 탁자는 나무로 만드는데 6각이며 굽은 다리의 형태로, 주홍칠을 한다.
헌선도는 생명을 관장하는 서왕모가 잔치의 주빈에게 불로장생의 선도를 바치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춤에 담았다. 도교적 색채가 강한 춤이지만 생명이 유한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장수를 염원했기에 헌선도는 고려 시대뿐만 아니라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 시대에도 꾸준히 공연된 정재로서 의의가 있다.
성무경, 이의강 번역,『완역집성 정재무도홀기』, 보고사, 2005. 국립국악원, 『궁중무용무보: 7집』, 1994. 이흥구ㆍ손경순, 『한국궁중무용총서: 1』, 보고사, 2008. 정재서, 『불사의 신화와 사상』, 민음사, 2005. 심숙경, 「당악정재 헌선도를 통해 본 고려, 송시대 악무 교류」, 『무용예술학연구』 10, 2002. 조경아, 「정재의 가무악 요소에 담긴 상징과 비유Ⅰ: 헌선도」, 『무용예술학연구』 32, 2011.
조경아(趙京兒)